미경
언니에게 보내는 축원문(버금상) 정희선/
문과대 2년
미경
언니는 올해 서른 아홉 살의 대학 3학년생.
늦깎이 대학생 치고도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언니는
서초동에 삽니다. 서울 고등학교 뒤편,
언젠가 언니를 졸라서 따라가 본 집의
부엌에서는, 벽에 동그랗게 뚫린 구멍
너머로 사람이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조용한
빌라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언니네
집에서 자고 일어난 우리의 코끝은 한뎃잠을
잔 사람모양 빨갛게 얼어 있었습니다.
추워서 전기장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일어날
생각을 않는 저에게 미경 언니는 말했지요.
이래서 겨울에 놀러오지 못하게 한 거라고.
여름에 와야 보일러 없는 이 집에서 고생하지
않고 잘 수 있다고.
언니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랍니다. 한신대 사복과 3학년 학생,
미경 언니. 언니는 사회복지사가 돼서
제대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치고 다시
수능의 산을 넘어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꾸 불안합니다. 이대로 가다가
언니가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언니가
도와 주고 싶다던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
보기도 전에, 가다가 쓰러져서 못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언니는
이미 많이 변했습니다. 전화를 걸면 예전의
그 힘찬 목소리가 없고 피곤과 우울에
찌든 목소리가 들립니다. 언니를 만나도
그 눈을 마주보기가 가슴아픈 것이, 그
활활 타는 것같이 의욕적이고 당차던 눈빛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언니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엔 다녀야
하고 아르바이트는 해야겠고, 나이가 걸려
보통의 아르바이트는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언니는 직업소개소에 등록해 놓고, 거기서
금요일에 연락이 오면, 주말 이틀간은
그때그때 가라는 식당으로 가 설거지나
청소를 합니다. 그렇게 받아 오는 일당은
언니의 일주일 차비가 되고 밥값이 되지요.
학과 공부에 욕심이 많은 언니지만 주말을
모두 반납하고 쫓기다 보면 공부도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 듯 하고.
방학엔
아예 모든 시간을 식당에서 보냅니다.
두달, 하나도 안 쓰고 안 먹고 설거지를
하면 등록금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이 손에
쥐어지는데. 방학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새 학기 책값이 여전히 걱정되는 되풀이를
해야 하는 언니 앞에서 뭐라고 딱히 위로할
말을 찾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삶의
힘겨움이 사람을 얼마나 좀먹을 수 있는지,
그 당당하던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할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키는
제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지만 항상 큰
나무같던 언니. 여름에 비가 심하게 오면
혹시 무너져 버리는 건 아닐까 저를 조마조마하게
하는- 뻘건 흙길 위에 선 판잣집에 살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젊은 시절을 후회하지도
않던 언니였는데.(젊은 시절에 벌었던
돈은 모두 구로공단 노동자들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지금도 그 날들을 후회하는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만.)
돈이
없어 밥을 굶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언니의 목을 조여드는 것을 저는
그저 지켜보며, 참담한 심정이 되곤 합니다.
그것은 거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모욕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일입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을 때가 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싶습니다. 언니에게
조금만 더 곧은 길이 열리기를. 때로 언니의
정신력까지도 흔들리게 하는 그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끊어지는 날이 오기를.
예전의 그 당당한 빛이 다시 언니의 것이
될 수 있기를. 언니가 언니 스스로의 정신과
육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언니가 원하던 대로, 다른 이의 기둥으로
굳건하게 설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부디,
언니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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