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호 표지

이달의 법문/ 월운 큰스님

불자들의 공동체 생활 ☞▷

정각도량/ 이법산 스님

신행(信行) ☞▷

특집/ 불교와 2002 월드컵

월드컵대회와 한국불교/이학종☞▷

축구에 필요한 불교적 훈련/남수영☞▷

수행의 길/ 이만

한 잔의 차를 마시며☞▷

고승의 향기 / 정유진 스님

희비에도 동요하지 않는 신회☞▷▷

제 4회 연등 축원문(사연)공모

성불사로 올라가는 길/송옥연☞▷

미경 언니에게 보내는 축원문/정희선☞▷

송주하를 축원합니다/김소민☞▷

사랑하는 부모님께/박주현☞▷

일주문/ 진광 스님

나는 누구인가☞▷

세계 문화 유산/ 김미숙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

인터넷의 세계 불교/ 서재영

선(禪)과 호스피스의 만남 ☞▷

詩心佛心/ 이임수

예경제불가(禮敬諸佛歌)  ☞▷

신간 안내/ 편집부

붓다의 깨달음  ☞▷

교계소식 ☞▷

동국동정 ☞▷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이만/ 불교문화대학장

어느 때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주변에는 다방이 많이 생겼고, 각 가정에서는 손님이 오면 간단한 접대로 커피를 끓여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그 구수하고 향기로운 맛과 간단한 조리법이 커피를 애호케도 했지만, 아마도 진짜 이유는 그것을 마시면서 느끼는 분위기가 좋아서 일 것이다.

필자도 전부터 누구 못지 않게 커피를 즐겨 마셔서 하루에 대여섯 잔은 보통이었다. 그러다가 녹차를 애호하던 지인을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커피 맛을 잃고 차 맛에 길들어져서, 요즘은 오히려 녹차를 옛날의 커피의 양 못지 않게 마시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맹물과 같이 담백한 맛이었지만 이제는 혀끝에서 우러나는 은근하고 향기로운 미각을 느끼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항상 마시는 녹차의 향기는 난초 잎 위의 이슬과 댓닢 바람 끝의 차가움처럼 상쾌한 마음을 때때로 가져다주는 한편으로 신선한 생동감마저 느끼게 한다. 한 잔의 차이지만 차를 통해서 내면이 순화되고, 조용히 자기를 성찰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다도 정신은 꽃향기와도 같은 것으로서 다생활은 진, 선, 미의 생활이고, 마음의 번뇌와 정신의 혼미함을 씻어준다고 한다. 다인의 깊은 사념은 우리를 향기롭고 그윽한 정신세계로 이끌어서 여유 있는 경지에 이르게도 한다고 들었다. 무념과 무상의 법열에 들었다가 차 한잔을 마시면서 바라보는 삼라만상은 마음을 평온하고 청정한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행다는 의례를 통한 수행법이지만, 그 형식을 뛰어넘어 형식이 없는 세계에서 걸림 없이 무애자재함을 얻기 위해서 쌓는 예법이다. 다도를 하나의 도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선 선의 수행과 구도자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지극한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茶禪一味의 경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또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순간은 자기와의 최고의 만남을 이루는 시간이며, 차를 마시는 공간인 다실은 대자연을 함축한 작은 우주이므로 소박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사치도 멀리한 간소하고 정결한 장식이 마치 겨울의 山寺처럼 한적해서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득함과 고요함, 화기로움과 경건함, 그리고 검박한 다실에서 차를 마시면, 저절로 겸허해지고 자비로워지며 덕성스러워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일찍이 초의 선사는 차를 혼자서 마시는 것을 神의 경지라 했고, 둘이서 마시는 것을 勝이라고 하였으며, 서넛이 마시는 것을 趣라 하고, 대여섯이 마시는 것을 泛이라고 하여 賓客이 적은 것을 으뜸으로 여겼다. 즉,

 

차를 마시는 법도는 객이 적은 것을 귀하게 여겼다.

객이 많으면 시끄럽고 수선스러우며, 청정한 아취가 사라진다.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이라 하고, 둘이 마시는 것을 승이라 하며,

서넛이 마시는 것을 취라 하고, 대여섯이 마시는 것을 범이라 하며,

칠팔 명이 마시는 것을 시라고 한다.

飮茶之法 (以客少爲貴) 客衆則喧 喧則雅趣索然

獨叉曰神 二客曰勝 三四曰趣 五六曰泛 七八曰施也

 

다시 말하자면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의미가 ‘신령스럽다’ 하거나 ‘그윽하다’, ‘離俗한 경지’ 및 ‘신선이 누릴만한 고상하고 청아하며, 담아한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혼자서 마시는 것을 신의 위치로까지 표현한 것이다. 자기를 찾는 소중한 시간 속에서 고아한 풍미와 정적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이서 마시는 것을 승이라고 한 것은 그 의미가 ‘좋다’거나 ‘한적하다’ 또는 ‘勝景하다’는 경지를 말하며, 서넛이 마시는 것을 취라고 한 것은 ‘취미적이다’, ‘재미있다’, ‘즐겁다’ 혹은 ‘유쾌한 것’ 등을 표현한 것으로서, 뜻이 맞는 서너 명이 세속의 시비를 놓아버리고 함께 모여서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며, 즐겁게 노는 경지를 말한 것이다. 대여섯 사람이 차를 마시는 것을 범이라고 한 것은 ‘담담하고’, ‘평범하고’, ‘범사스럽고’, ‘일상적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서, 얼마간은 세속이라는 말이다. 칠팔 명이 마시는 것을 시라고 한 것은 ‘나누어 먹는 자리’ 또는 ‘베푸는 자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마시는 데서는 맑고 고상한 정취를 느낄 수가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행다는 너무 激해도 안되고 급해도 안되는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행다법은 작위적이지 않고 여유롭고 조용하며,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의 연륜과 격조가 쌓여서 품격 있고 자연스러운 다생활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생활을 기다림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도는 글로서 표현되는 문자나 언어가 아니고, 오직 자기 스스로 체득해서 이루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다인들은 타인의 행다법에 대하여 어떠한 비난도 삼가하고, 오직 마음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만을 향하여 순간 순간을 오롯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동서양의 고전들을 섭렵하며, 언제나 조용하고 검박한 생활을 통해 마음을 안심입명하여, 어떠한 곳에 머물더라도 평화로움 속에서 잔잔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다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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