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信行) 이법산
스님/ 정각원장
신념이란
확고한 자신(自信)이며 자기의 의지다.
이는 양심이며, 이 양심은 가장 존엄한
것으로서 신성불가침이며 청정무구한 본원
자성이다. 신앙은 양심을 우러러 믿고
의지하는 위대한 신념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참된 자아의식이 없고, 강한
듯해도 어느 순간 자신을 의지할 안식처를
갖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감, 초조함으로
생활에 확신이 없어진다. 소위 소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앙이 꼭 어떤 절대적인 신이나 특정한
대상을 믿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기 의지가 약한 사람이 어떤 대상을
간절히 믿는 방법으로 자기의 의지를 개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앙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자신의
의지가 없는 신앙,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성의 신념이 없는 신앙은 오히려 점점
더 불안하여 편협되고 외골수적인 신앙관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자성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은 곧
자신의 확고한 양심을 믿고 자기 의지를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위대한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에게 있어서 신앙은
마음의 뿌리이고 의지이므로 반드시 필수적인
것이다. 확고한 신앙의 힘은 자신의 힘을
배가시키고 그동안 숨겨진 능력까지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엄경』
「현수품(賢首品)」에는 “신(信)은 도(道)의
근원이며 공덕(功德)의 어머니이니, 항상
일체 모든 선근(善根)을 길러 준다”라고
하였다. 선근이란 밝고 맑은 마음 본원의
능력이다. 마음의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도(道), 즉 모든 사리에 능통한
지혜를 갖출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성취할
수 있는 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자성(自性)에 선근종자를 본래
구족하고 있지만 번뇌의 망상이 덮여 있는
까닭에 능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여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올바른 믿음으로 신근(信根)을 잘
성숙시킴으로서 참된 자아완성의 길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법구경』
「독신품(篤信品)」에는 “믿음을 나의
수레로 삼아, 얼마나 실린 것을 알려 하지
말고 마치 큰 코끼리를 다루듯 하라. 자기를
다루는 것이 가장 훌륭하리라” 하였다.
자신이 확신하고 믿는 신앙은 곧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자기의 의지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실을 수 있는 수레와 같은 것이므로,
이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마치 큰 코끼리를
다루듯이 조심조심 다스리며 활용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를 다루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자기 자신을 잘 다룰 수 있다면
비로소 성인에 견줄 훌륭한 지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를 다룰 수 있는
지혜인이라면 이 세상 어느 것이든 지배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요즘은 되는 일이 없다”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불평하고 막연하게 대상 없는
남을 원망한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다. 남이 아닌 자신이
세상에 따라가야 하는데 막연한 대상인
세상이 자기를 따라와 주기만을 기다리고
불평하니 어찌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기 마음대로 되기만을
바라고 고집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없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다.
아만과 고집은 철벽같은 망상일 뿐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물건일
따름이다. 신념이 투철한 사람은 절대적인
고집이 있을 수 없다. 누구와 더불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밝은 지혜로 모든 사람이
공존하며 공용하고 공생할 수 있는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잘 살고 자신만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소아(小我)를 탈피하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고사하고 말 것이다. 이 세상은
대자연의 모든 생명과 더불어 할 때 진정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이
어느 곳에 살든지 소속감이 분명해야 한다.
소속감이 없으면 자기 위치를 확인 할
수 없고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과 단체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공동체 의식을 인식하지
못하고 천방지축 세상 모르고 자기 망상심에
이끌려 허둥대고 고집 피우며 고해바다를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는
인도(人道)가 있고, 사회에는 도덕(道德)이
있고, 가정에는 가풍(家風)이 있고, 직장에는
직장에 따른 사훈(社訓)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校訓)이 있다. 이러한 정신적 목표는
거기에 소속된 구성원이 설립 목적이나
공동체적 합의(合意)를 근본 이념으로
삼아야 된다는 의무이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되는 서약이다. 이것은 개인의 인성을
구속하거나 행동을 제한하고 개성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 단체의 공동체적
이념이며 그 단체에 소속하게 된 것은
자의적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맞지 않을 때는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부부도 처음 만날 때는 누구나
백년해로(百年偕老)할 것을 맹세하지만
어떤 불의의 인연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헤어 질 수도 있다. 현실 극복이란 불가항력적인
경우도 많지만 자신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기 노릇을 할 때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고
더불어 함께 하는 모든 존재가 아름다워지고
행복해 질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잘 극복하는
사람은 가정·직장·사회,
즉 중요한 자리와 중요하지 않은 길거리에서조차
모든 질서에 순응하며 항상 밝은 마음
미소가 넘치는 표정을 잃지 않으므로 자신이
가는 곳은 상황이 어떻든지 진정한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신념은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는 실행의 의지를
준다. 이 세상에 어떤 일이든 안 된다는
가정을 한다면 성공할 수 없는 인생이다.
자신이 건강할 때 생의 보람을 가질 수
있고, 가정이 화목할 때 삶에 활력이 넘치고,
직장이 건실할 때 생의 긍지를 느낄 수
있고, 사회가 안정될 때 생활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 모든 성취는 결코 나 자신의
신념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신념의
의지를 실행하는 참된 신행인(信行人)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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