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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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김미숙/ 불교학부 강사

땅 위에 내려앉은 수미산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가사의한 것, 세계 7대 목록 중 하나이다.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놀랍고 감탄할 만한 것, 그래서 불가사의한 것이라 한다. 단일 건축물로는 세계 최대라는 이 거대한 건축물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지금은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대의 첨단 건축 기술로도 온전히 해명 못할 만큼 신비로운 인공 건조물이 보로부두르이다. 마치 이 땅의 중생들에게 수미산을 보여 주기 위해서 축소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그 곳에는 불교의 우주 세계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입체적 만달라의 양식으로 고스란히 구현되어 있다.

보로부두르가 자리한 인도네시아는 13,000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섬나라로서 1949년에야 겨우 통합되어 공식 명칭을 단 신생 국가이다. 하지만 인구가 가장 밀집된 중심 섬인 자바에는 세월 깊은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는 5세기경에 인도와 교류했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그 시기에 힌두교와 불교 문화도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보로부두르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고도(古都) 요그야카르타에서 북서쪽으로 약 42킬로미터를 지난 곳에 있는 마겔랑 마을 근처에 자리한다. 흔히 자바 동산이라 불리는 그 곳은, 인도에서 성스런 순례지가 그렇듯이 두 강의 합류점에 자리해 있다. 그래서 보로부두르의 입지는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곳 중의 하나로 꼽힌다.

자바 동산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열대의 풍치는 메라피 화산과 케두 평원이 짝을 이루어 특유의 정취를 자아내고 순례객의 경쾌한 흥분도 가라앉혀 준다.

775년경에 힌두 건축가가 설계하고 힌두 왕실의 지원으로 축조를 시작했다는 보로부두르는 본래 쉬바 사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쇠미해 가던 힌두 왕조는 더 이상 사원의 축조 경비를 댈 수 없었고, 거대한 기초 테라스를 만들다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어서 등장한 불교계의 샤일렌드라 왕조가 790년부터 835년까지 공사를 계속하여 마침내 거대한 불교 성지로 완성시켰다.

832년에는 힌두계의 산자야 왕조가 자바 섬 중앙부를 다시 통일한 뒤 불교 건축물도 점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보로부두르는 약간의 장식만 힌두식으로 변형되었을 뿐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런데 950년경에 왕조의 중심이 자바의 동부로 옮겨가게 되었고, 보로부두르는 자바 중심부의 다른 건축물들과 함께 밀림 속에 방치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시기에 인근에 있던 메라피 화산이 분출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그로부터 보로부두르는 세월의 흙 속에 묻혀 수세기 동안 잊혀지고 말았다.

보로부두르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14년이었다. 그 당시 자바의 통치자였던 영국인 토마스 래플스 경이 보로부두르를 재발견하고 나서, 다시 자바를 점령하게 된 네델란드 인들이 그 거대한 건축물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델란드가 주도하여 복원 공사를 하던 도중, 1885년에는 땅 속에 숨겨진 기단 부분을 찾아내기도 했다. 아마도 건축 도중 지반이 약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밑부분을 돌로 보강한 뒤 묻어 버렸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계속되던 재건 작업은 1960대에 두 차례의 지진으로 지연되었고 재정 문제에 봉착하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1973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공사가 재개되었다. 그 후로 10년 동안 완전히 해체한 뒤 재건하는 괄목할 만한 작업 성과 끝에 지금 보로부두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숨은 기단 부분의 조각들은 모두 촬영한 뒤에 다시 묻었고, 지금은 동남쪽의 한 모서리만을 예시용으로 드러내 놓았다.

그 어떤 표현으로도 온전히 담아 낼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압도하는 보로부두르는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위용 넘치는 외관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렇지만 보도부두르가 불가사의한 것으로 꼽히는 첫째 이유는 그런 외면이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해체 복원 당시 밝혀진 바대로, 광대한 불교의 우주도가 보로부두르 한 곳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점이 전무후무한 것이다. 인류 문화사 어디에도 이처럼 심오하고 복합적인 교리를 시공간에 체현해 낸 인공 건축물은 없었다.

먼저 완전한 사방 대칭의 조화를 이룬 구조물은 크게 3단계, 즉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나누어지고, 다시 그 각각은 대승 불교의 보살 수행의 계위와 합치한다. 또 보로부두르의 본디 이름이 ‘보살의 10단계 수행으로 쌓은 공덕의 산’이었다는 점도 이 곳이 단순한 불탑 사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정방형의 기단 한 변은 120미터인데, 총 6개의 방형 단과 3개의 원형 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흔히 9층 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9층의 외면은 모두 안산암을 방형으로 다듬어서 총 100만 개를 쌓아 올려 만들었고, 그 내부는 흙무덤으로 채워져 있다.

차츰차츰 상승하는 나선형 구조로 되어 있는 회랑의 총 길이는 4킬로미터에 달한다. 동쪽으로 난 계단 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돌아가면 점차로 상승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지혜도 차츰 늘어나서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인 열반에 이르는 구조이다.

회랑에서 회랑으로 이어지는 수행 길의 여정에는 돋을새김으로 이어지는 붓다의 전생과 일대기가 도반이 되어 준다. 남방 예술 특유의 육감적인 묘사 덕분인지 부조의 얼굴들은 지금도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을 건네고, 종 모양의 탑 속에 안치된 불상의 그윽한 모습은 수행의 여독을 위무해 준다.

이와 같이 욕계와 색계를 거쳐서 무색계에 이르면 최상의 경지인 적정 열반의 세계에 들어간다. 진흙탕 속 욕망의 사바 세계로부터 몸 가벼이 수행하여 차츰 상승하면 마침내 성취하는 깨달음의 세계. 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부조와 탑과 불상 등으로 빚어진 갖가지 하계(下界)의 정경들이 직경 16미터의 대탑 속에 무음(無音)으로 녹아들어 다만 아련한 적막뿐……. 정상에 올라서 보면, 눈앞에 펼쳐진 열대의 녹수(綠樹)가 몽환의 세계로 이끌고, 눈을 들어 바라보면 메라피 화산의 위용만이 가슴에 고동 친다.

지금은 이슬람 교도가 국민의 89%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는 옛날과 같이 정신적 구심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1985년 1월 21일에는 이슬람 급진 세력이 주도하여 보로부두르 폭파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입지 않아서 4개월의 공사 끝에 복구되기도 했지만, 보로부두르의 앞날이 순탄할는지 걱정만이 앞선다. 하지만 아직은 붓다의 탄생절을 국경일로서 기념하고 있으며, 보로부두르를 중심으로 하여 성대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얀마의 파간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으로 꼽히는 보로부두르. 불교의 우주 세계의 고갱이가 한 자리에 모아져 있는 보로부두르는 길이 보전해야 할 불교 문화의 진정한 금자탑(金子塔)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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