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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서웅 큰스님/ 전 조계종 종정

참사람이란 자각한 사람의 참 모습입니다. 자아를 초월한 본성자리요, 인간의 진실성을 근원적으로 드러낸 본래의 자기자신입니다. 무명(無明)과 욕망의 장애를 벗어버리고 분별과 아집(我執)을 타파하여 “참나”를 되찾으면 나와 남의 대립, 시간과 공간의 일체를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참사람은 참으로 자유자재하고 절대평등하며 대자대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참사람임을 믿고 역행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류는 전부가 참사람인데 그걸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참사람인데 환경에, 과학문명에 끄달려서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주가 모두 조화해서 서로 의지하고 힘과 은혜를 입고 사는데 인간들은 대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환경을 파괴,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죽이고 사람도 못살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간은 여러가지로 무한하고 훌륭한 능력이 있는데도 끝없는 욕심과 욕망 때문에 타락하고 싸우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과학만능주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이 문명의 바탕에는 인간이 대자연을 지배한다는 욕망이 깔려 있습니다. 그 결과 이성적 인간에서 욕망적 인간으로 전락해 비극적 종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싸움 뿐인 아수라장과도 같습니다. 신문이나 각종 매스컴에서도 온통 싸우는 이야기일뿐 인간다운게 별로 없습니다. 지금 인간들이 온 인류를 다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있는데 투쟁철학과 과학기술이 만나면 인간도 대자연도 다 멸망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맹수들도 자기들 끼리는 싸우지 않습니다. 모두가 참사람이 돼서 자유자재함과 자비심으로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견성(見性)이나 확철대오한 경지는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했느니 안했느니 하는 것도 초월해버리기 때문 입니다. 그것은 다 분별일 뿐입니다. “나”라는 아집이 없어지면 무아(無我)가 되고 모두 우주와 통해버립니다. 나라는 것을 고집, 대립시키지 않으므로 아주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시공이 없고 자유자재하므로 우주가 모두 한 생명체가 되는 까닭에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나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을 수 있고, 하면 되는데 눈앞의 일에 끄달려서 하지 않으니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불도(佛道)의 길에 있어서는 올바르게 살려는 마음을 내는 발심(發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상의 일은 모두 행복이 있으니 불행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니 고통이 있으므로 모두다 관계하는 인연 속에 붙어 있습니다. 악하고 선하고 즐겁고 고통스러운걸 초월해서 자유자재한 그 자리에 살면 현실은 그대로 있는데도 아무데도 걸리지 않는 무애(無碍)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사랑은 유물(唯物)에도 유심(唯心)에도 무의식에도 하느님(God)에도 불조(佛租)에도 구속받지 아니하며 전연 상(相)이 없이 일체상(一切相)을 현성(現成)합니다. 이 현성은 현성한 것에나 현성하는 자체에도 걸리지 아니하여 공간적으로는 광대무변한 세계를 형성하고 시간적으로는 영원무한한 역사를 창조하는 절대주의의 자각(自覺)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욕망적 인간이나 이성적 인간은 생사(生死)를 면할 수 없는 생사적(生死的) 생명으로 봅니다. 이 생사적 생명이 절대부정되어 크게 죽어서 다시 절대 긍정되어 크게 살아나는데에서 영원의 생명이 소생하는 참사람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이 경우 크게 죽음이나 크게 살아남은 모두의 자각적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시간적, 공간적 경험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서 시공의 근원이 그 스스로 이룩하는 경험이니 주체적 선험적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참사람은 일체의 한정(限定)을 끊고 형상을 절(絶)할 뿐만 아니라 무한의 자기 부정을 자유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근원적 주체인 참사람은 세계를 형성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작용을 합니다. 능동적 주체로서 참사람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참사람으로 살 때에 이 참사람은 현대과학 문명의 노예로 전락한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이 참사람은 사심과 사리사욕이 없어, 진실하고 공명정대하면서 한량없는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 나옵니다. 삼조증찬 스님은 『신심명』에서 말씀하시기를 “진실 여여한 진리의 세계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어라. 빨리 상응하고자 한다면 오직 둘이 아니라고 말하리. 둘이 아니고 모두 한가지이니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조사 스님께서는 참사람에게 있어서 인간과 대자연은 불이일체요, 영원의 한 생명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입장에서 인간이 대자연을 잘 보호하고 존중한다면 지구 환경파괴와 생태계오염을 막을 수 있고 전 지구를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로 장엄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참모습은 본래로 참사람이니, 모든 인간이 자비로 행위할 때 이 지구는 종횡무진하게 자비의 망(網)으로 포용된 세계가 됩니다. 이 현실세계의 폭력성ㆍ잔악성 등 실로 극악살벌한 공기를 일전하고 절대애(絶對愛)인 자비로써 서로 포용하는 우애로운 세계를 건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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