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피력 신관호 / 홍보실장
오래전에
김정현의 장편소설 ‘아버지’를 읽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가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가족 사랑이다.
특히
고3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아버지가 택했던
방법은 무력감과 자조에 빠진 바로 우리
이웃들의 ‘아버지상’으로 비쳐졌다.
고3 딸이 지원하고자 하는 학과의 정원이
35명이라는 것을 알고난 뒤부터 그 아버지는
한해동안 꼬박 ‘35’라는 숫자에 묶여버렸다.
가령 버스를 탈 때 35번이후 좌석에는
앉지를 않는 일, 출퇴근의 지하철 개찰구를
35번째안에 빠져나오는 일, 심지어 버스를
타도 1번부터 35번까지의 버스는 괜찮고
36번 이후의 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에서는 35번째
안으로 출근했으며, 택시나 동료의 승용차에
편승할 때도 번호판의 끝 두자리가 ‘35’내의
숫자가 아니면 절대 타지를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딸이 지원하고파
하는 캠퍼스를 찾았다. 그리고 간절히
빌었다. “부디 내 딸을 당신의 학생으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부모들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그 방법이나 내용에
약간 차이는 있을지언정 엇비슷한 것 같다.
자신은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자식만은
잘되길 바라는 것이 부성애고 모성애다.
나의
경우도 그 예외는 아니다. 특히 아내는
자식을 위한 기도에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를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인근 사찰에 나가
새벽예불에 동참한다. 그리고 가끔씩 멀리
상원사 적멸보궁에까지 가서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 기도의 중심에는 항상 우리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기도때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사회를 위한 큰 사람이
되어달라”고 서원하고 108배도 올린다.
어쨌든 그러한 기도가 영험을 받아서일까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 하나 있었다.
얼마전에
집아이가 운전미숙으로 2m정도되는
언덕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자동차사고를
냈었다. 밤 10시쯤 길이 익숙하지 않은
시골국도를 달리다가 커브길에서 그만
도로를 이탈해 차가 전복되고 만 것이다.
날이 밝은뒤 견인된 자동차를 확인해 보았더니
앞유리와 운적석옆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이
나고 지붕도 심하게 구겨지는등 그야말로
흉물이었다. 견인했던 사람들에 의하면
사고중에서도 대형사고라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이랄까. 집아이가 손끝하나
다치지 않았었다. 모두들 천운이고 천행이라고
했다. 그렇게 큰 사고였는데도 사람이
안 다친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지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집아이에게 물어보면 아직까진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한다. 사고가 있고나서
아내가 나가는 사찰의 스님께 그 정황을
말씀드렸더니 “보살님의 지극한 정성이
아들을 무사히 보호해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피력이다”라고 위로해주셨다고 했다.
아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고 불제자가 된지는 10여년
정도이다. 그런데 믿음의 강도는 30여년이
된 나보다 훨씬 높다. 물론 불교상식이나
사찰방문 횟수 같은 것도 나보다 훨씬
앞서 있다. 또 인근 사찰에 함께 예불에라도
참석하게되면 예불의식이나 기도법 등을
내가 아내에게서 배우는 입장이다. 아내의
불교에의 입문도 따지고 보면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종교를 하나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면
기왕이면 가족 모두가 한 종교여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대답이다. 또 부모가 먼저
종교생활을 열심히 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의 종교와 종교생활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 한 것이다. 나아가 아내는 종교생활이든,
다른 무슨 일이든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생활 신조로 하고 있다.
이제
아내는 가족중심의 기도에서 불우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정해놓고 있지 않다. 틈나는대로, 형편
되는대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조금씩 선업을 쌓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나자신이다. 내 자신이 해야할 불자생활을
집사람이 대신해줄 것이라는, 우리 가족의
안녕을 집사람이 다맡아 기도하고 있지않느냐는
착각등이 그것이다. 내가 선업을 쌓는
만큼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불자생활을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은 비록
‘35’이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지라도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을 몰랐었고
또 그것을 지켜내는 하루하루가 더없이
행복했다. 나 또한 자식으로 인해 부처님의
법력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으니 그것도
인연이리라. 그래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지켜냄으로써 참된 불자의 길을
가겠다고 서원해본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호하겠다는 것(不殺生),
다른 이의 인권과 소유물을 탐내지 않겠다는
것(不偸盜), 삿되고 음란한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는 것(不邪淫), 남을 속이거나 이간질하지
않겠다는 것(不妄語), 술이나 음식으로
인해 맑은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것(不飮酒)등의
오계부터 생활화하는 것이 나의 우선의
목표이다. 이미 수계를 받으면서 약속했던
지계를 이제야 새삼 깨달은 것 같아 부끄럽기는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