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민가,
백성노래 이임수/ 인문과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
백성은
어린 아이라 한다면/ 백성이 사랑을 알
것입니다.
배가
큰(꾸물거리며 사는) 중생들/ 이들을 먹여
다스려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까’ 할 때/ 나라가
유지됨을 알 것입니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
삼월
삼짇날 경덕왕이 귀정문 누상(樓上)에
올라 신하들에게 영험 있는 스님을 모셔
오라고 한다. 그 때 마침 위풍이 당당하고
좋은 옷을 입은 스님이 지나기에 모시고
왔더니 왕께서 내가 말한 스님이 아니라고
물리치셨다. 다시 한 스님이 헤어진 장삼에
앵통(櫻筒: 앵두나무 통)을 지고 남산자락에서
오고 있었다. 왕이 기뻐하여 불러 이름을
물으니 충담(忠談)이라고 한다. 매년 삼월
삼일(重三日)과 구월 구일(重九日)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공양을 올리는데
오늘이 삼짇날이라 차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왕께서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얻어 드시고는 그대가 유명한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지었다고 하니 짐(朕)을 위해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는 노래를 지어 달라고 부탁한다.
왕의 명을 받아 스님이 지은 노래가 이
안민가(安民歌)다.
왕은
아버지, 신하는 어머니, 백성은 아이처럼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치리(治理: 다스림)의 방법을
말하고 있다. 신라 8세기 중엽 경덕왕
때엔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나는 변괴가
생기고 왕권 다툼으로 정치가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그러기에 경덕왕은 대덕(大德)을
불러 그에게 국가를 다스릴 방법을 묻고
귀정문 누상에 단을 만들어 국가의 태평을
비는 의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 장소는
궁(月城)의 서쪽이니 지금 반월성 서편
벚꽃이 핀 곳에서 향교 사이로 추정된다.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스님의
뜻을 받들어 경주에서는 매년 삼짇날 전후
일요일, 계림 숲이나 월성(반월성) 인근에서
차(茶) 축제를 중심으로 한 충담재를 올리고
있다. 오늘도 스님의 말씀에 양심이 부끄러운
정치인, 공무원, 교육자, 학생 등 많은
중생들은 깊이 참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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