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에
대한 탐욕은 실로 허망하니 박경준
/ 불교대학 교수
불전(佛典)을
읽다 보면 가끔 충격적인 내용을 접할
때가 있다. 그 충격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
문화의 차이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부처님의 ‘진리에 대한 열정’, ‘제자와
사람들을 바르게 이끌려는 사랑’이 너무
뜨거운 데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소개하려는 경전의 말씀 또한 필자의
마음 속에 너무 인상깊게 새겨져 있는
충격적인 이야기로서 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오늘
소개하려는 말씀은 저 유명한 초기경전인
『법구경』의 말씀이지만, 우선 부처님이
그 가르침을 설하시게 된 배경 이야기를
거해스님이 편역하고 고려원이 출간한
『법구경(1)』(엄밀하게 말하면 『법구경
주석』)에서 인용해 보고자 한다.
부처님이
웰루와나 수도원에 계실 때였다. 그 때
왕사성에는 ‘시리마’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비구스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공양을 올렸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도반 스님에게 자신은 매일같이
음식 솜씨가 뛰어나고 용모도 빼어난 시리마로부터
공양을 받는다고 자랑하였다. 그 도반
스님은 그 이야기만 듣고서도 시리마를
연모하게 되었다. 다음날 그 스님들은
함께 시리마의 집으로 탁발하러 갔는데,
그 날따라 시리마가 몸이 아파 공양을
올리지는 못하고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방 밖으로 나와 잠깐 스님들께 인사하였다.
시리마를
처음 본 도반 스님은 “병석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 아름답다면 건강할 때 잘 치장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하면서
그녀를 몹시 갈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리마는 그날 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부처님의
주치의이기도 한 명의 ‘지바카’의 누이인
시리마의 죽음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왕에게 당분간 그녀의 시신을 땅에 묻지
말고 그대로 보존하되, 까마귀·독수리·들짐승들이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의 청을
받아들였다.
시리마가
죽은 지 사흘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제자들을
시리마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그녀의
시신을 관찰케 하셨다. 빔비사라 왕도
신하들과 함께 자리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다. 몸은
변색되고 부풀어 올랐으며, 별처럼 빛나던
두 눈에는 구더기가 끓기 시작하였고,
아홉 구멍에서는 더러운 물이 흘러내렸다.
시리마를 갈망했던 스님도 시리마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고, 자신의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쳤다.
부처님은
왕에게 부탁하여, 이제 누구든 일천 냥을
내고 시리마와 하룻밤을 함께 지낼 사람은
나와보라고 광고케 하셨다. 왕은 그렇게
하였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왕은
오백 냥, 이백 냥, 오십 냥 등으로 금액을
낮추었지만 역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타이르셨다.
“그대들이여,
죽어 썩어가는 저 시리마의 시신을 보아라.
그녀가 살아있을 때에는 재산가들이나
그 아들들, 그리고 고관들이 그녀와 함께
하룻밤만이라도 즐기려고 천 냥도 아끼지
않고 앞다투어 나섰으며, 그러고도 차례가
돌아오지 않아 애를 태웠었느니라. 하지만
이제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해도 시리마를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제자들이여, 사람의
몸이란 실로 이와 같나니, 마침내 늙게
되어 있으며, 일단 숨이 끊어지고 나면
썩어서 저와 같이 되고 마느니라. 그러니
이 무상한 육신을 탐착하여 무엇하겠느냐?”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셨다고 한다.
“치장과
분장으로 가려진 이 몸의 참모습을 잘
살펴보아라.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이 몸은 영원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으며 더러운 상처와 고름과 질병뿐이로다.”
시리마를
연모했던 비구는 이 게송을 듣고 수다원과(예루과)라는
성인의 첫 지위를 성취하였다 한다.
부처님은
왜 이리도 충격적인 방법을 택하셨던 것일까.
아름다운
여인 시리마, 그녀를 둘러싸고 제자들의
마음에는 육체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세속의 욕망을 끊고
영혼의 대자유를 얻기 위해, 특별한 삶의
길을 택한 출가수행자란 점이다.
사람에게
있어 육체는 육체 그 자체로서뿐만 아니라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서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과 깊이를 확철대오하여
해탈과 열반의 거룩한 목표로 나아가야
할 수행자들이,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육체에 발목이 잡혀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관념이나
상상이 아니라, 썩어가는 육신의 추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게 해서, 그것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부처님. 육체에 대한
열병을 앓는 제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극적인 방법이 도대체
있을 수 있겠는가.
번뜩이는
순발력과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부처님의
제자사랑에 우리는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된다.
지금도,
시리마의 시신을 둘러싼 제자들의 가슴을
울렸던 부처님의 그 간곡한 사자후가 가슴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육체에
대한 탐착은 실로 허망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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