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도영 큰스님

더불어 살아가는 길 ☞▷

정각도량/ 이법산 스님

불교병원 ☞▷

특집/민족화합과 불교

탈북자 문제와 불교 /고유환☞▷

제대로 된 선택을 하자 /윤세원☞▷

경전의 말씀/ 전해주 스님

육근청정☞▷

수행의 길 / 김재성

수행이란 무엇인가☞▷▷

불심의 창 / 곽대경

어머니의 불상☞▷

세계문화유산/ 신성현

깨침의 땅, 보드가야☞▷

인터넷의 세계 불교/ 김성철

평화를 호소하는 불교인의 목소리 ☞▷

일주문/ 법념스님

달력이야기 ☞▷

詩心佛心/ 이임수

제망매가(祭亡妹歌), 누이노래 ☞▷

열린마당/ 최진재

불교와의 인연 ☞▷

교계소식 ☞▷

동국동정 ☞▷

 
달력이야기
법념 스님/ 불교문화대학 강사

해마다 연말이 되면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걷고 새 달력을 걸게 되는데 그때마다 아쉽고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 다. 아직도 연말이 멀었건만 음력 칠월보름 백종(百種)이 지나자마자 2003년도 달력을 맞추라고 유인물이 날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더러는 절에 찾아와서 주문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내년도 달력을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은데 올해는 유난히 빨리 서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위가 가시지 않아 9월이라 해도 초가을의 선선한 기운을 별로 느낄 수 없는데 달력이야기가 오고가니까 한해가 거의 다 간 것 같아 공연히 마음이 초조해지고 세월을 앞당겨 빨리 가도록 재촉하고 있는 것 같다. 전에는 달력을 봐도 지금처럼 예민하지 않고 예사로 여겼었는데 왠지 자꾸 신경이 쓰여지는 건 나이보다도 마음자세에 원인이 있다고 여겨진다. 지나간 세월만큼 뭔가 이렇다 하고 내놓을 것이 없기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텅 빈 항아리 같이 허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2002년은 지구촌의 최대 축제인 “한일월드컵축구”가 열린다고 정초부터 6월이 오기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년도 달력이야기가 나오니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백락천(白樂天)은 ‘세월은 사람을 가다리지 않는다.’고 했다. 익히 들어온 말이지만, 몇 년 전부터는 세월이 그전보다 더 빨리 가는 걸 직접 피부로 느낀다. 우리 은사스님도 항상 나에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월의 빠름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된다면서 “오십까지는 그런 대로 지낼만한데 오십부터는 세월이 화살과 같이 빨라져서 언제 지나가는지 느낄 새도 없이 후딱 가 버린다.”하시고는, 꼭 이어서 “너는 지금 젊으니까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너도 오십이 넘으면 내가 한 말을 느끼게 될 것이다.”하셨다. 이제 내 나이도 오십을 훨씬 넘어 육십을 바라보다 보니 세월이 화살과 같이 빠르다고 한 스님의 말을 뼛속깊이 느끼게 되었으니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절감할 뿐이다.

벌써 9월이라 일 년의 삼분의 이가 지나갔다. 내년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아있는 삼분의 일을 보람 있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나 허둥대다가 지나가기 일쑤여서 그런지 달력 날짜에 괜히 민감해진다. 나이가 드는 만큼 수행자로서 가야할 길을 바로 찾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만 한 것이 아니라 뒷걸음도 쳤기 때문에 더욱더 후회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흔히들 시간은 금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시간을 금처럼 아끼고 소중히 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해놓은 일없이 쓸데없이 시간을 흘러 보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달력을 보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반성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져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은 달력도 다양화되어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운문사(雲門寺)에서 만든 소형달력은 작으면서도 매우 편리해서 수첩대용으로 상당히 요긴하게 쓰고 있다. 사찰에서는 주로 음력행사가 많은 편이라 양력(陽曆)과 음력(陰曆) 둘 다 있으므로 자주 보게 된다. 어느 날 이 달력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자그마한 물건도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데 과연 나는 남에게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을까?’하고 뒤돌아보니, 아무런 도움도 못 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던 달력이었는데 올해는 이래저래 달력에 대해서 느끼는 의미가 크다.

여고 일 학년 때, 교실 벽에 시가 한편 걸려있었다. 시의 제목은 [동화(童話)]로 ‘옛날에 한 아이가 있어 오늘은 내일과는 다르리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라는 짤막한 내용의 시였는데, 아쉽게도 너무 오래되어 누구의 시였는지 잊어버렸다. 정말로 사람들은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영국의 시인(詩人) 셀리(Shelley)도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라고 읊었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봄이 곧 오리라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셀리의 시처럼, 오늘이 있기 때문에 좀 더 나은 내일이 있음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는 달력이 나에게 주는 무언의 교훈을 거울삼아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오늘보다는 내일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 불퇴전(不退轉)의 길을 바르게 가야겠다.’고 나 자신에게 새롭게 다짐을 하면서, 달력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본다.

 

 | 표지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