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뵈러가게 감기야 물렀거라 강지숙/ 작가
우리
집은 수락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바로
코앞에 물 맑고 공기 좋은 수락산을 뒷마당처럼
두고 살지만 사시사철 등산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떼를 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길에 지레 겁먹어
그 행렬에 동참한 적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 나온 사람들까지 수락산
계곡 전체가 북새통을 이루는 통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곡을
끼고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염불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많은 등산객들 중에 염불사에 들러
부처님을 뵙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정작 염불사는 늘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가끔씩이나마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산책 삼아 가는 곳이 이 염불사였다.
그러다
아이를 갖게 되면서 염불사에 가는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자주 갈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교라고 생각했고, 뱃속의
아이에게도 부처님을 만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교학을 전공할 만큼 불심이
깊었던 나도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계로
날라리(?) 불자로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그렇게
뱃속에서부터 부처님을 만나온 아이는
어느 새 17개월에 접어들었다. 지난 겨울,
아이가 한창 걸음마를 배워 바깥 세상에
관심이 많을 때였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겨우내 집안에만 있어야 했다. 걸음마
전이던 가을까지만 해도 비록 유모차를
타긴 했지만 엄마 아빠를 따라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 산책도 하고, 염불사에
들러 부처님께 절도 하곤 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아뿔싸,
질기기도 질긴 감기란 놈이 봄나들이를
훼방놓을 줄이야.
“약
다 달였어? 짜는 건 내가 할게.”
“그럴래?
약 짜봤어?”
“아니,
그냥 짜면 되는 거지 뭐.”
약탕기가
없어 찌개 끓이는 작은 뚝배기에다 달이는
한약이 거의 졸아들 즈음, 남편이 약 짜는
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남편은 어느
정도 식기를 기다렸다가 한의원에서 약재와
함께 준 베 보자기에 달인 약재를 담았다.
그리고 두 개의 막대로 약을 짜기 시작했다.
“이런,
잘 안 되네. 어떻게 하는 거지?”
베
보자기 양쪽을 잘 틀어잡아야 할 막대가
각각 따로 놀더니, 그나마 기껏 짜 놓은
약 그릇에 베 보자기를 쑥 빠뜨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뭐 하는 거야? 좀 잘 해봐. 내가 할까?”
막대기
두 개로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의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남편도 웃음을 참지 못해
약을 제대로 짜지를 못했다.
“남들이
하는 거 보니까 쉬워 보이던데, 쉬운 일이
아니네.”
끝내
남편은 요령 껏 하지 못하고 낑낑대면서
힘으로 약을 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 약은 커피 잔에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약의 주인은 바로 우리
아이다. 추운 겨울을 별 탈 없이 넘기고
환절기에 발목이 잡혀 한 달 넘게 감기를
달고 있는 아들에게 먹일 감기 약인 것이다.
한 달 동안 소아과를 다니며 약을 먹였지만
콧물도 여전하고, 기침은 잦아드는 듯
하다가 다시 심해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한의원에서 지어주는 약을 한 번 먹여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한약을 짓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한약으로 된 감기 약을 잘 받아먹었다.
이번 약을 먹고는 제발 감기가 달아났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더 이상 이번 감기로
병원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날이
좀더 따뜻해지고 아이의 감기도 뚝 떨어지면,
이제 아장아장 잘도 걷는 아이를 데리고
염불사 부처님께 자주 가야겠다. 일주문에서부터
늘어선 벚꽃과 개나리 등 봄꽃들이 지기
전에 갈 수 있을까. 또 등산로를 따라
흐드러지게 폈을 진달래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곧 등산로와
우리 아파트를 지나 큰 도로까지 연등이
거리거리를 환하게 밝힐 것이다. 아이에게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들려주면서 염불사
제등행렬에도 함께 동참해 볼 생각이다.
아직은 아이가 혼자 걸음으로 행렬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종종걸음으로 연등 행렬을
따라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 어느 해보다 부처님 오신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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