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왕(謂王) 기도

이법산 스님/ 정각원장

주방(廚房)의 상징적인 신(神)을 조왕(謂王)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부엌에서 무슨 기도를 할까 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내 생명이 고귀하다면 내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는 원초적 힘인 먹거리를 만드는 일은 아주 소중한 일이기 때문에 어떤 기도보다도 더 정성스러워야 할 것이다.

음식은 생명의 묘약이므로 살아 있는 자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 청결하지 못하고 만드는 사람이 정성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맛있고 유익한 먹거리가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엌에도 반드시 부엌의 정성이 모아지는 신성한 신이 필요한 것이다.

조왕(謂王)은 부엌의 어른이라는 뜻이며,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 주는 분이시다. 신(神)이라 하면 삿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신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따라서 잡신도 되고 귀신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이란 정신적 소산이기 때문에 자기의 의지에 따라 귀하게, 또 천하게 인식된다. 신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도 있지만 부정할 수도 있다.

어떤 신에게 꼭 의지해서 복을 빌려고 하면 그것은 단순한 타력적이기 때문에 미신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바로 내 자신이 직접 정성을 다하여 신심(信心)으로써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다면 그 신이 바로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석문의범(釋門儀範)』 「조왕청(謂王請)」에 보면 거목(擧目)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

 (南無八萬四千謂王大神).

 나무좌보처담시력사

 (南無左補處擔柴力士).

 나무우보처조식취모

 (南無右補處造食炊母)”

라 하였다.

팔만사천(八萬四千)이란 숫자는 불교경전에서 많이 나오는데 무한대의 수를 의미하며 우주에 충만하다는 뜻이며, 왼쪽의 담시력사(擔柴力士)는 땔감을 만드는 역사라는 뜻이며, 조식취모(造食炊母)는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라는 뜻이다. 본래 부엌에서 땔감으로 사용하는 화력(火力)이 나무였기 때문에 질 담(擔)자에 땔나무 시(柴)자를 써서 담시력사라고 하였으며, 음식을 만드는 것은 어머니가 주로 하였기 때문에 조식취모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왕기도에는 부엌의 주인인 조왕대신과 땔감을 마련하는 아버지와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니를 마음에 정성을 다하여 존경하고 겸손히 모시고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유치(由致)」에는 “주방을 주재하시는 신령스러운 분이시여, 성스러운 덕이 높으시고 신통스러운 공이 넓으시어 한번 드러나는 위상에 삿된 마귀가 스스로 꺾기고 한번 드러나는 자비로운 모습에 세상 사람이 공손히 우러러보니 구하는 것은 다 따라 주고 원하는 것 쫓지 않음이 없으십니다”라고 하셨으니, 조왕대신의 위대한 덕화(德化)를 마음에 담아 볼 수 있다.

또 조왕대신의 공덕을 「가영(歌詠)」에 찬탄하고 노래한다.

향기 가득한 주방의 언제나 출납을 자재로 주재하시고(香積廚中常出納)

부처님 법 보호하고 수행하며 마장을 꺾으시며(護持佛法亦逐魔)

인간의 소원 있어 정성을 다해 축원하면(人間有願來誠祝)

병 없애고 재앙 소멸해 행복을 내려 주시네(除病消災降福多)

조왕대신은 건강한 가정,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는 행복의 신(神)이다. 「환희조왕경(歡喜謂王經)」은 조왕대신의 위신력을 10가지로 구성한 게송이다.

머리 숙여 예합니다. 장엄하신 조왕대신, 시방을 비추시는 대광명이네.

위엄과 광명이 자재하신 조왕대신, 토지와 용신이 모두 환희해.

천상의 사관이신 조왕대신, 온 가족 모두에게 편안 주시며,

내외를 길창케 하신 조왕대신, 금, 은, 옥, 비단이 집안에 가득.

항상 경사 맞아 주는 조왕대신, 악귀와 삿된 귀신 물러나게 해.

희망의 뜻 두루 이룬 조왕대신, 선행·복덕 모두 다 구족하시네.

장애 없이 편안하신 조왕대신, 부부·가족 복과 수명 늘려 주시며.

재앙이 전혀 없는 조왕대신, 모든 병 소제하니 크게 길상해.

일찍부터 수호하신 조왕대신, 온갖 곡식 증산되고 누에도 좋아.

집안을 구호하시는 조왕대신, 일체의 모든 신이 기뻐하시네.

이와 같이 조왕대신은 행운의 신이다.

조왕단(謂王壇)은 부엌에 있다. 따로 전각에 모셔지지 않고 부엌의 한쪽 구석에 조그만한 탱화나 등신으로 아주 간단하게 모셔져 있으므로 사찰에 가더라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으면 조왕상을 친견할 수 없다. 절에서는 부엌을 <정재소(淨齋所)>라고 하며 청결하게 공양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부엌의 주인은 공양주이므로 조왕기도는 의식을 갖추어 공양구를 장만하여 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공양주가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 다기를 올리고 때때로 대중들의 건강과 정진이 순일하기를 축원하며 정성을 다하여 대중의 공양구를 장만하여 성불의 길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발원을 하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도 주방을 항상 깨끗하게 하고 식사를 마련할 때 만드는 음식을 먹는 모든 이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한다면 조왕기도가 저절로 되어 조왕대신이 항상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