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호 표지

이달의 법문/ 도원 큰스님

집착하지 말고 살자 ☞▷

정각도량/ 이도업 스님

난(蘭)에서 배운다 ☞▷

특집/ 선재들의 발원문

부처님의 영험/박주천☞▷

어머님께서 일깨워 주신 자비심/권종희☞▷

수행의 길/ 이법산 스님

조왕 기도☞▷

고승의 향기 / 정유진 스님

몸으로 보여준 불법 생활☞▷▷

경전의 말씀/ 박인성

우리 기억 속의 지는 꽃☞▷

일주문/ 능원 스님

배경을 보는 눈☞▷

불심의 창/ 강지숙

부처님 뵈러 가게 감기야 물렀거라 ☞▷

세계 문화 유산/ 한용수

중국의 막고굴 ☞▷

인터넷의 세계 불교/ 심재관

네팔-독일 필사본 보존 프로젝트 ☞▷

열린마당/ 윤귀진

삶 속의 불교 ☞▷

詩心佛心/ 이임수

도솔가  ☞▷

부처님 오신날 행사 안내

교계소식 ☞▷

동국동정 ☞▷

 

난(蘭)에서 배운다
이도업 스님/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4년 전 어느 겨울날 신도 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아들이 대학입시에 두 번씩이나 실패한 후의 합격이라 그런지 하늘은 온통 파랗게 보이고 자꾸만 대견스럽게만 느껴지더란다. 아무나 붙잡고 자랑도 하고 싶고, 큰소리도 지르고 싶고, 누군가에게 감사도 하고 싶은데…. 그때 내 생각이 나서 왔노라면서 놓고 가신 난(蘭)이었다. 잎이 좀 도톰한 그런 동양란이었다.

난의 이름도 모른 채 받아놓고, 연구다, 강의다, 법회다 해서 혼자만 바쁜 체 뛰면서 난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지내왔다. 열흘에 한번씩 물주는 일은 공양주 보살님의 수고였다.

지난 겨울에 방학을 맞이해서 모처럼 기도를 시작했다. 문밖 출입을 삼가고 방에 있는 시간이 많게 되니 자연히 난과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새벽예불에서 돌아오면 엄지와 검지로 잎을 가볍게 훑어주기도 하고 창쪽으로 위치를 바꿔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보냈다. 난은 하루가 다르게 잎에 윤기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정말 갑자기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다. 4년 동안 그 날이 그 날같이 아무런 변화도 보여주지 않던 난이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네 마디에서 앙증스러울 정도로 작은 꽃잎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도가 끝나던 날 우연하게 또 한 그루의 난이 들어왔다. 이미 만개된 양란(洋蘭)이었다. 이파리 못지 않게 꽃잎도 소담스러웠고 향기도 방안 가득 진했다. 꽃잎은 봄날 장다리 밭에 노니는 노랑나비의 날개 빛보다도 더 노랬고, 향기는 샤넬파이브 보다도 더 진한 듯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꽃잎도 향기도 그만 사그라져 버리고 말았다. 화려하고 진한 향기를 뽐내던 양란은 파장 후의 시골장터 모습 마냥 허전함만 남기고 갔다.

그러나 4년 전에 받은 이 동양란은 다르다. 첫째, 호들갑스럽지 않아서 좋다. 가냘픈 듯한 이파리는 작년이나 금년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그 모양 그대로다. 꽃줄기는 흑갈색이고 꽃잎은 조금 흰색을 띠고 있는데 조금도 화려하지가 않다. 작지만 수줍은 듯한 그 소박함이 좋다.

둘째, 향이 진하지 않아서 좋다. 향기가 있는 듯 마는 듯해서 주위가 시끄럽거나 마음이 산란할 때는 느끼지 못할 정도다. 새벽예불 후 좌선의 자세에서나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은은하다.

셋째, TV에서 보는 깜짝쇼와 같지 않아서 좋다. 순간적으로 입안을 화하게 하는 박하사탕과는 다르다. 처음에는 무미건조한 듯하지만 곱씹어 음미하면 할수록 그 맛이 우러나던 군대의 건빵과 같은 그윽한 맛이 좋다.

요즈음 사람들은 양란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자극적으로 진한 것을 좋아하며 박하사탕과 같이 순간적으로만 화한 듯해서 깊이가 없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남보다 더 화려해야 하고, 더 진한 향내를 풍겨야 하고, 더 잘 나가야 하고, 더 잘 살아야겠다고 말로는 아우성들이지만 생각이나 행동은 딴판이다.

속이 깊지 못하고 생각이 짧은 보통 사람들이야 또 그렇다 치더라도 상식에서 말하고 양심으로 행동해야 할 종교인들마저도 그렇다. 지하철역 입구나 전철 안에서는 물론 아파트 벨을 하루에도 몇 번씩 눌러대면서 믿고 복 받으라고 외쳐대는 종교인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세상인가. 물건 하나 팔고 이익을 챙기겠다는 장사꾼만도 못한 행동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장사꾼들은 물건이라도 주고 이익을 챙겨가지만 요즈음 일부 종교인들은 실천은 하지 않고 맨입으로만 복 받으라고 외치면서 소리 공해를 뿌리고 다닌다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사람은 누구나 복인(福人)이 되고 싶고 덕인(德人)의 대우를 받고 싶어한다. 또한 지혜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 누구인들 복과 덕과 지혜를 싫어하랴만, 복덕을 쌓고 지혜를 닦는 방법을 모르니 딱한 일이다.

경(經)에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함에서 생긴다.”고 했다.

복은 누구로부터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절약과 절제의 생활에서 생기며, 덕은 겸손하고 양보함에서 생기며, 삶의 지혜는 조용히 생각함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제 동양란과 같이 소박하면서도 은은하고,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 가는 훈련을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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