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장계환
스님/불교대학 교수
이번
달 3월은 초·중·고등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입학식이 많은 달입니다.
처음 대하는 학교, 새로이 만나는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가 새롭습니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는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로서,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우선 얼굴표정과
태도에서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 인상을 좋게 만들어
가는 다음과 같은 비결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몸에는 생기, 둘째 얼굴에는 화기, 셋째
눈에는 정기, 넷째 가슴에는 덕기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네
가지를 다 갖추기 위해서는 바로 마음에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더욱 공감이
갑니다.
이것은
경전에 나오는 얘기지만 첫 인상이 너무
좋아서 낭패(?)를 본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는
‘아난존자(Ananda: 阿難尊者)’의 경우가
바로 그 예인데, 그 때문에 설해진 경전이
오늘 주제가 되고 있는 『능엄경』(楞嚴經)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난존자가 점심 공양청정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등가’라는
처녀에게 물 한잔을 얻어 마시게 되는데,
그녀는 아난존자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등가는 집에 돌아와 주술을
잘하는 어머니를 졸라서 결국 아난존자로
하여금 집으로 오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천안통(天眼通)으로
아난이 마도(魔道)에 걸려서 위기에 처한
것을 아시고 ‘능엄주(楞嚴呪)’를 외워서
구출해 내었습니다. 그 후 아난은 마등가의
유혹에 홀린 것이 자신의 수행 부족임을
알고 부처님께 도를 닦는 방법을 여쭙게
되었는데, 그때 부처님과 아난존자와의
문답이 『능엄경』의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능엄경』의
원제는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印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줄여서
『대불정경』 『수능엄경』 『능엄경』이라
약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전의 이름이
길다보니까 외우기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한자의 의미대로 해석하면 “부처님의
이마처럼 높은 비밀의 가르침을 닦아 증득하기
위해 모든 보살들이 만행을 닦으면 마침내
다 이루어지는 으뜸가는 경”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
경전은 인도의 나란다사(那爛陀寺)에 비장된
이후로 인도 안에서만 유통시키고 타국에는
유출하지 못하도록 왕명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이전까지는 중국에
전래되지 못하다가 705년 중인도(中印度)
스님인 반랄밀제(般剌蜜提)에 의해 전래되고
한역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은 그
내용을 검토해본 결과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찬술된 경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경명(經名)에서 ‘밀인’이라고 쓰여있듯이
‘관정부(灌頂部;밀교)에 수록되고 있으나
우리들의 감각기관과 마음의 흐름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가(禪家)에서
선호하는 경전으로 정착되었고, 현존하는
수많은 주석서만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들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능엄경』의
서두에서 파사익왕(Pasenadi:波斯匿)은
나지 않고 죽지 않는 길은 어떤 것이냐고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대답은
온 우주에 꽉 차있는 참 성품, 항상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능엄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감각기관과
마음의 성품을 갈라놓기 위해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윤회의 세계에서 헤매는
이유가 감각기관이나 그 대상, 그리고
경계와 같은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밖으로부터
어떠한 행복이나 평화를 얻으려고 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 그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조사스님들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여섯 도둑에다 비유하여, 그것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서 행복을 찾다보면 그것은
마치 도적을 내 아들로 잘못 알고 그 도적에게
일생을 맡기는 것과 같다는 경계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더구나
이 경전은 인연법이니, 무자성(無自性)이니,
공사상이니, 하는 대승경전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을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것들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능엄경』이 중국인들의 정서에
맞추어서 편찬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정(禪定)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마구니의 허상들을 조목조목 나열하여
경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중생들의
현실적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설명하고
있는 점 등을 높이 사서 예로부터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능엄경』을 독송하고 있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밤에 사물을 볼 때 등이 빛을 낸다고
하여 등불이 사물을 보는 것은 아니듯이,
등불의 빛이나 눈, 그리고 안경이나 감각기관은
어디까지나 도움을 줄지언정 결정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마음의 성품뿐이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