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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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법융의 철저한 삶
정유진스님/불교문화대학 선학과 교수

해가 바뀐 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새로운 각오와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각오와 계획이 얼마 가지 않아서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자기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게 계획을 너무 과대하게 세웠거나 아니면 의지력이 약해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계획이라도 복잡하면 실천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선 그 계획을 실천하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이 분산되어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여 몰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에 몰입하여 일과 자기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고자 하는 일이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 신 학기에는 복잡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오직 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일에 몰입하여 지혜롭고 즐거운 생활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우두법융(牛頭法融)선사의 일화를 통해서 마련해 보고자 한다.

우두법융선사(594∼657)의 성은 위(韋)씨며, 윤주(潤州) 연릉사람이다. 그는 반야지관(般若止觀)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주항(舟航)이라 생각하고, 모산으로 가 경(炅)법사에게 삼론학을 배웠다. 그는 철저한 삼론반야(三論般若)의 실천자로서 반야의 진수를 체득한 것이었다. 법융이 우두산 유서사에서 『법화경』을 강의할 때 얼음 속에서 두 송이의 연꽃이 피어 7일 동안이나 찬란하게 있다가 다시 얼음 속으로 사라졌으며, 또 영휘3년(652)에 건업의 건초사에서 『대품반야경』을 강의할 때 대지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그의 풍모와 인격은 거북이처럼 걷고, 학처럼 보며, 소리의 기운이 심원하여 땅속에서 나오는 것 같았고, 얼굴은 이상(異相)이었으며, 의복은 겨우 몸을 감출 정도였으며, 유화하고 항상 따뜻한 얼굴을 끊은 적이 없었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보통사람의 경지를 뛰어 넘은 자였음에 틀림없다. 현경2년(657) 정월 23일 건초사에서 입몰한 선사이다.

우두와 4조 도신(道信)과의 만남을 『조당집』3권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4조 도신이 기주 쌍봉산에 주석하고 있을 때 그 봉우리에 자줏빛 구름이 일산같이 서리고, 그 밑에서 흰 기운이 여섯 가닥이나 가로 퍼져 있는 것을 보고 5조 홍인(弘忍)에게 그 상서를 묻자 5조는 큰스님 밑에 옆으로 다시 한 가닥의 법맥이 퍼질 징조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4조는 강동으로 가 우두산 유서사에서 나융(법융)을 만나게 되었다. 법융선사도 평소에 늘 쌍봉산의 도신을 뵙고자 희망하고 있었는지라 서로 만나니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 때 도신 선사가 법융에게 설법하기를,

“대개 백 천가지 묘한 법문은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사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묘한 공덕은 마음에 다 있다. 온갖 선정과 지혜가 본래부터 구족하고 있고, 신통과 묘한 작용이 모두 그대의 마음에 다 있다. 번뇌와 업장이 본래부터 뿌리가 없으며, … … 대도(大道)는 허공과 같이 비고 넓어서 생각과 분별이 끊어져 있으니 이러한 법을 그대가 이미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서 부처와 다름이 없고 다시 성불할 법도 없다. 그대는 다만 마음에 맡겨 두라. 관(觀)하려고 하지도 말고, 마음을 모으지도 말고, 탐진치를 일으키지도 말고, 근심을 품지도 말라. 당당하여 걸림이 없고 생각에 따라 자유로우니 선을 지으려고 하지도 말고, 악을 그치려고도 하지 말라. … …”

이 법문 끝에 법융은 옥의 티같은 번뇌가 일시에 사라지고 마음에 모든 모습(相)이 영원히 없어졌다. 이로부터 신령스러운 천신의 공양이 끊어 졌다고 한다.

여기서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내용은 우두법융이 4조 도신를 만나기 이전에는 항상 정진할 때 천신의 공양을 받았으나 도신을 만나 법문을 듣고 바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천신의 공양이 끊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의 수행의 심천(深淺)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법융이 도신을 만나기 이전에는 반야지관에 입각한 무상(無相)의 세계를 체득하지 못하였으나, 도신을 만난 후 그는 완전히 공(空)·무상과 하나가 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도신을 만나기 이전에는 공부를 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번뇌 망념을 비워버린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신을 만난 후 자기 자신에게 철저한 생활을 하다보니 모든 상(相)이 완전히 소진(消盡)된 것이다. 지혜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지혜로운 생활을 한다는 흔적도 없이 생활을 하다보니 천신의 눈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천신이 법융에게 꽃공양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자, 우리는 법융선사가 자신이 해야할 일에 얼마만큼 몰입되어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일에 몰입되어 일과 하나가 된 모습은 곧 바로 근원적인 본래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혜로운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분별심으로 갈라진 망심으로는 절대 자신의 일에 철저할 수 없다. 법융선사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산 그 모습은 오늘날 형식이나 권위에 떨어진 삶을 사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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