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어나는
아름다움 심산
스님/ 불교문화대학 강사
어느덧
20년을 헤아리는 세월이 흐른 과거의 일이다.
한
생각 돌이키면 세상이 다 내 것이라는
큰스님들의 심지법문에 매료되어 출가를
결심하고 절에 들어오게 되었다. 행자
기간이 지나고 정식 스님이 되기 위해
수계산림을 할 때, 잠시 쉬는 시간에 종각에
앉아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법의는 언제나 구겨지고 떨어져 세월의
흔적을 담은 수행자의 고뇌하는 모습이
될까!”
요즘
젊은이들이 청바지를 일부러 찢고 떨어지게
해서 입는 심리와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지만,
내 옷 역시 빨리 떨어져서 걸망하나 짊어진
남루한 차림새의 도인이 되어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운 수행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던
기억이 새롭다.
생각해보면
분명 어리석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초심자의
그런 마음이 이제는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변하여 새삼 그리워지기까지 하니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은연중에 그때의 그런 습(習)을 버리지
못한 내 행동에 혼자 실소를 자아내는
일이 또 일어났다. 얼마 전 중학생인 마을상좌와
그 어머니가 마음에 드는 다기를 한 벌
선물했다. 그 동안 잘 쓰고 있던 다기는
갑자기 냉대하고, 새로운 다기는 시간만
나면 만져보고 씻고, 쳐다보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손때묻은 오래된 다기처럼
보이게 할까 궁리하다가 찻잎을 넣고 뜨겁게
끓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기에
찻물이 배여 세월의 흔적과 멋이 보여지기를
바라는 욕심이 부른 행동이었다.
다기의
변화가 욕심에 차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삶의 이치를 하나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세월을 통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멋을
추구하기보다는, 길들여진 멋이나 인위적인
멋을 추구하면서 익지 않은 멋을 조작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서부의
개척자들이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한
삶 뒤에 남겨진, 삶 자체로서의 떨어진
청바지가 아니라 일부러 찢고 비벼서 얻어낸
낡은 옷을 추구하는 심리도 그렇고, 출가하여
수계산림이 진행되는 중에 벌써 오랜 세월
수행에 매진한 철저한 수행자의 마지막
모습과도 같은 남루한 차림새를 꿈꾸고
있었던 어리석음은, 말하자면 노력 없이
좋은 결과를 성급히 기대하는 탐욕의 표상이며,
내재된 가치보다는 드러난 허상을 쫓는
중생심의 극치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중아함경
제18; 팔념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께서
박계수 근처에 계실 때였다. 어느 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하는
사람이 생각해야 할 여덟 가지를 말하리라.
도(道)는
욕심을 없애야 얻는 것이지 욕심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만족함을 아는 삶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애착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시끄러움을 벗어남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남과
어울려 떠드는 곳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부지런함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게으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바른 생각(正念)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삿된 생각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안정된 마음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산만(散漫)한
마음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지혜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지 어리석음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는
희론(戱論)이 아니다. 그러므로 희론을
멀리 벗어나야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세상사
모든 것이 결코 욕심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두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서만
좋은 결실이 있는 것이며, 주어진 현실생활에의
만족과 부지런함, 올바른 생각과 안정된
마음, 그리고 지혜와 겸손을 통해서만
우리의 인격과 진리를 얻을 수 있음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다기는 오랜 세월 사용하다보면
으레 멋스러워 질 수밖에 없을 텐데, 굳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욕심이 바로 나를 괴롭히는
원인임을 알고는 심히 부끄러웠다.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악마는 결코 밖에 있지
않고, 다만 진리를 모르는 무지와 무명이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마구니 임을 안다면,
하루 빨리 무명의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행이다.
이제
한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억지로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노력 뒤에 저절로 얻어지는 소중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