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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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도량/ 이법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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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도에 이는 불교 바람

람 라즈의 불교 개종운동/ 이거룡 ☞▷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정승석 ☞▷

詩心佛心/ 윤석성

수의 비밀☞▷

수행의 길/ 이만

마음을 일으키면 부림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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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의 말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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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계의 불교/ 최동순

미국에 뿌리내르는 禪 ☞▷

일주문/ 심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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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논단/ 송재운

경(敬)과 선(禪) ☞▷

세계 문화유산/ 김미숙

붓다의 섬, 스리랑카의 폴론나루와 ☞▷

교계소식 ☞▷

동국동정 ☞▷

특집 / 인도에 이는 불교 바람 


람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정승석/불교대학 교수


“우리는 더 이상 힌두의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거의 반 세기 전에 암베드카르 박사가 일으켰던 불교 바람이 지금 인도에서 다시 일고 있는가?

바로 얼마 전인 11월 4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전인도불가촉민연합회의 의장인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하는 집단 개종 집회에 모인 하층민들은 위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 집회에는 100만 명의 하층민이 운집하여 불교로 개종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에 입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집회는 역사상의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종교 행사였지만, 같은 인도 땅에서 수립된 바 있는 그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그 기록은 1956년 10월 14일과 15일, 나그푸르의 딕샤 부미에서 암베드카르 박사가 주도하는 집단 개종식으로 수립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 개종식의 집회에서 80만 명의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했다고 전하고, 공식적으로는 50만 명이 불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80만 명이던 50만 명이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불교로 개종한 것은 일찍이 세계에 유례가 없었던 가장 큰 규모의 개종으로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역사적인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암베드카르 박사는 지지자들 앞에서 22가지 맹세를 제정했다. 이 중 “나는 브라마, 비슈누, 쉬바를 신앙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예배하지도 않겠다.”라는 첫째 맹세로부터 다섯째까지의 맹세는 람 라즈가 주도한 위의 구호와 동일한 요지이다. 그리고 암베드카르의 맹세들은 혼돈과 반목으로부터 불교를 보호하는 보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빈곤 상태로 이끌고 힌두교의 상위 계급들을 살찌우는 미신과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의식들로부터 개종자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암베드카르가 인류의 희망으로 중시한 것은 불교의 평등 사상이었다.

인도에서 암베드카르가 일으킨 바람은 심각한 사회 계층간의 갈등과 불평등으로부터 최하층민의 인간적 권리 회복을 불교로 해결하고자 한 신불교 운동이었다. 그의 관점은 인도에서만이 아니라 불교가 쇠퇴해 가는 다른 나라의 불교도에게 하나의 귀감으로서 방향 제시가 될 수 있으며, 모든 불교도의 각성과 의지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는 인도에서 간디 이후 사회 개혁 운동의 신화적 인물이요 영웅이다. 그는 인도어로 달리트(Dalit)로 불리고 공식적으로는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s)로 불리는 불가촉민, 즉 최하층 계급 출신이면서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호사, 교수, 노동부 장관, 초대 법무부 장관 등을 거쳐 사회 운동가요 종교 지도자로 승화한 인간 승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암베드카르는 1891년 4월 14일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타라와 봄베이에서 천민으로서의 차별 대우를 면치 못하며 온갖 수모 속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 우수한 성적 덕분에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교에 유학하여 1917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래, 천민 출신으로서의 수모를 극복하면서 다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인도의 민주 헌법과 법전 의안의 초안을 작성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천민을 해방하기 위한 운동에 앞장섬으로써 천민의 아버지로 존경받았다. 그의 최종적인 결론은 불교의 평등 정신에 귀의함으로써 정신과 물질의 양면에서 압박받는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스스로 불교도가 됨으로써 그들을 불교도로 개종시킬 것을 결심했다.

그의 개종식은 남방 불교의 불기로 2500년을 기념한 1956년 10월 14일 나그푸르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운집한 50만 명의 천민이 그와 함께 불교도가 되었다. 이 행사를 마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되는 세계불교도연맹의 개회식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나서, 불교 유적지를 순례한 후 봄베이로 돌아왔다. 12월 6일 아침, 차를 끓여 들어온 고용인에 의해 그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서거로 인해 천민들 사이에서 열렬했던 불교로의 개종도 정지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나그푸르, 푸나, 아메다바드, 아그라 등지에서 집단 개종은 계속됨으로써 그의 영향력은 생전보다도 사후에 더 크게 발휘되었다. 그의 저서는 주로 경제학과 사회 계급 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불교 관련의 저서로는 『붓다와 그의 법』(The Buddha and His Dharma)이 사후에 출판되었다.

암베드카르의 개종으로 인도에는 신불교(Neo-Buddhism)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이것은 암베드카르를 따라 개종한 하층민의 불교이며, 인간의 해방과 사회의 평등을 추구한다. 해방과 평등을 실현하는 일차적인 길이 불교로 개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불교가 특수한 불교 이념을 창출한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평등과 공동의 행복을 추구했던 부처님의 이념을 현세에서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1952년 대보리회에서 발간된 『마하보디』 지의 베사카 특집호에 다음과 같이 천명되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 수용할 만한 종교는 오직 불교라는 종교뿐이다. 만약 현대 사회가 불교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른 어떠한 종교도 부처님의 가르침 이상으로 지적이고 과학적인 현대인의 마음에 파고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붓다와 그의 법』에서 불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서술하면서 불교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이 바로 신불교 운동의 방향이며, 동시에 그 운동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성제에 대한 그의 해석은 독특하다. 즉 부처님의 초전법륜의 설법은 중도와 사성제를 정화의 길, 정의의 길, 덕행의 길이라는 적극적 측면에서 정신 발달의 연속적 차원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여기서 정화의 길은 삶의 원리로서 5계를 인식하는 것이고, 정의의 길은 8정도를 따르는 것이며, 덕행의 길은 10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그는 업에 대해서, 현생의 업은 인정하지만, 삼세에 걸치는 업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자칫 업설이 숙명론으로 수용되어 피압박 계급의 해방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한 것이다. 또 그는 승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데, 승려가 추구하는 ‘완전한 인간’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 완전한 인간은 바로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승려가 사회의 심부름꾼이 되지 않는다면 불교를 통한 사회 구원의 희망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반영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승가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사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의 문제를 자각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그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하지만, 그는 결코 불교 학자가 아니라 불교의 개혁자였다. 사실 그가 제기한 몇 가지 문제는 대승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들에서 논의되어 온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암베드카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불교의 실천자라는 것이며,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실천 방법의 개발이다.

이 점에서 그가 천명한 22가지 맹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것은 오늘날의 불교도가 특히 유념할 만한 것이다.

13. 나는 모든 중생을 자비심으로 대하고 보호하겠다.

18. 나는 매일 성스런 여덟 가지 길을 따르며 자비심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

22. 나는 이제부터 부처님의 원칙과 가르침, 그리고 그의 법에 따라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임을 준엄하게 선언하며 확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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