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법과
참회 체링 초펠 스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평소에 제가
실천하고 있는 것, 또는 제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티베트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티베트 불교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티베트는
완전 불교국가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고 있는 상징들을 티베트 국기를
통해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티베트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인과(因果)”에 있다고
합니다. 티베트에서 제일 큰 험담이 인과를
모르는 사람 또는 화 잘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인과란
쉽게 말해서 원인에 따라서 결과들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생애에
우리가 다양한 모습들을 가지고 여러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각기 다른 업을 살고 있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있는 분들 중에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데 스님께서 어떤 스승이
좋은지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저는 “사람은
업과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자기가 만나야 할 대상들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분이 얼마나 유명하고, 이분이
얼마나 대단한 스님이라고 제가 소개하더라도
본인에게 맞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떤
분들 중에서 인도에서 돌아오면 영원히
인도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는 인도에 다시는 안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은 인도에
가서 좋은 친구와 스승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돌아오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고,
또 어떤 사람은 거기 가서 사기꾼과 강도를
만나서 매우 고생하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다양한 업들, 자기
전생의 모습들이 이번 생애에 직접 부딪치게
되는 원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생에 우리는 많은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이번 생애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크게 인정하지 못하고, 가치가
적은 돈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리면
많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면 이번 생애에 좀더
열심히 살면서 공덕을 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유복한 것에서
나아가 걸림 없이 수행하는 데까지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염라대왕 쪽으로 달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이번 생에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더 많은
것들이 잃어버리게 되고 더 많은 것들을
겪게 될 것이라는 그런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이번 생애에 틀림없이
다음 생을 위해 해탈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하게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또
인과는 조그마한 원인이라도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고 합니다. 어떤 원인은 매우 작더라도,
오래 되었더라도 결코 없어지는 법은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독수리가 하늘을 매우
높게 날게 되면 거기서 자신의 그림자를
직접 볼 수 없지만, 언젠가 땅에 내리면
그림자가 비치게 되어 결국 눈으로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우리는 기도나 염불, 참선을 하면 업장이
소멸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거기에
부처님 가르침만으로도 업장이 소멸 될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업장은
자기가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소멸될 수
없습니다. 업장을 소멸하는 최고의 방법은
다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항상 실천하기 힘들고,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내용에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티베트에서나 수행자들에게는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기초적인 수행만
잘 된다면 명상에 대한 진리나 지금은
매우 어려운 내용들이 저절로 알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와서 나는 혼자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자기의 경지가 어느 정도 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줄 수 있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티베트에서는 당신은
어느 정도 경지에 왔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한다면 제가 만약 수행을 위해
15년 간 산에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15년 전에 공부 시작할 때 마음과
15년 뒤의 마음을 비교해본다면 확실하게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자기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탐·진·치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는다면 그냥 고생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도움은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그 많은 8만 4천 대장경의 내용이
오로지 탐·진·치를 없애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밖에 나가면 다양한 대상들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부처님제자로서
얼마나 잘 수행하고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불보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흔히 밖에 다닐 때 나쁜 대상들을 보게되면
미워하고 싫어하고, 좋은 대상을 보면
좋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런 생각과 마음
때문에 우리는 많은 업을 짓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불보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여러 가지로 나를 점검하고
있다 여기면서 내가 실패하지 말아야지
한다면 결국 주위의 모든 대상과 환경들이
자기한테 좋은 스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특히 업장이 매우 무거운 사람들에게는
이번 생애에 업이 바로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업이 별로 적은
사람은 이번 생애에 지은 업이 바로 나온다고
합니다. 옛날에 티베트스님 네 분이 어떤
신도님의 집에 공양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신도는 한 달에 한번씩 스님들을 모시고
공양하는데 그때 마침 돈이 다 떨어져서
그 집의 오래된 경전을 팔아서 네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공양 후 다른
세분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오직 한 스님만이
유독 배가 아팠다고 합니다. 나중에 어떤
큰스님이 얘기를 듣고 너는 경전을 팔아서
마련한 공양을 먹었기 때문에 배가 아팠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세 명이 멀쩡한 이유를
묻자 다른 스님들은 업장이 무거워서 다음
생으로 받게 될 것이라 답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생애에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업 쌓은 것을 무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 생에 무거워진 업장을 배로
받게 될지도 모를 것입니다.
간혹
우리는 무언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 우리가
의지처로 삼아야 되고 좋아해야 하는 것은
영적이고 참된 진리이어야 하는데, 정작
우리는 몸이나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결국 물질적인 것은 그 자체가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 밖에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만약에 신경 써야할 대상이 고통
아닌 행복이라면 우리는 행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자기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젊어서부터 고생을 많이 합니다.
몸이 편하게 하기 위해서, 좀더 큰 평수의
집을 구하기 위해서, 결국 그 사람은 물질적인
세계 속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평수로 매겨진 작은 집보다 더
큰 세상을 자기 집으로 삼을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삼을 수 있는 그런 큰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번 생애에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지 문제없을 것이며 다음 생에
어디를 태어나든지 걸림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인과를 인정하고
믿고 실천한다면 나중에 결국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수행적인 공부는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이
우리가 마음의 본질을 찾을 수 있고 이번
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 깨닫기 위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 말들이 누추할 수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인과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조금씩 새롭게 실천해야되겠다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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