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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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심과 지혜
이법산스님/동국대학교 정각원장

사람들은 이름과 모양에만 집착하여 분별심을 일으켜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공격하여 자신의 마음이 시원한 듯 하지만 곧 불안하고 초조하게 스스로 고통의 늪으로 찾아들고 있다.

바로 분별심이 자기 착각인 줄을 알아야 한다. 오직 자기 착각에 걸려 상대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급기야 남을 헐뜯는 데에만 골몰하던 사람은 오래지 않아 자기가 헐뜯던 무수한 상대방이 언제 어느 때 자기를 치고 들까 하여 항상 불안감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보이지 않는 분별심으로 흑백 논리에 떨어져 미움과 애욕의 갈등에서 헤매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능가경(楞伽經)』의 「오법문품(五法門品)」에 분별심과 지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모든 범부는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고 그것에 따라 일어나는 법을 따르며, 갖가지 모양을 보고 나와 내 것이라는 그릇된 견해에 떨어져 모든 존재에 집착하고 무명(無明)의 어둠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탐심을 일으키고 성냄과 어리석은 업을 짓고 있다. 누에가 고치를 짓듯이 분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몸을 얽어 육도(六道)의 큰 바다에 떨어짐을 알지 못하니 이것은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나와 내 것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분별이란 어떤 존재에 의해 불려지는 이름이며, 모양에 따라 분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코끼리·말·수레·걸음걸이·인민 등 갖가지 모양을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분별이다. 바른 지혜란 무엇인가. 어떤 사물의 모양이나 이름을 관찰할 때 이것은 실체가 없으며,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이교도와 성문(聲聞)과 독각(獨覺)의 경지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바른 지혜라 한다. 보살은 바른 지혜에 의해 사물의 모양이나 이름을 보고 <있다>고 하지 않고, 모양이나 이름이 없는 데서도 <없다>고 하지 않으니, 그것은 있고 없는 견해를 떠났기 때문이다. 모양과 이름을 보지 않음은 바른 지혜이므로 나는 그것을 진여(眞如)라 한다.

바른 지혜를 따르라. 바른 지혜는 단멸(斷滅)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며, 또 분별도 없고, 분별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증득(證得)한 지혜이므로 모든 외도와 성문과 독각의 바르지 못한 견해를 떠난 것이다.”

어떤 존재에 대한 집착은 사람의 본 마음의 밝고 맑은 지혜를 가리게 된다. 탐욕심은 스스로 어리석기 때문에 마음 속에서부터 응어리져 화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절대 탐욕심을 내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탐욕심을 내지 않으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모든 사물을 보아도 분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편안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므로 만나는 사람마다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줌으로써 환영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 된다.

때리고 부수고 남을 욕하고 모멸하고 끌어내어 성질을 부리는 이 모든 분별은, 즉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기 분별을 동조하지 않는 불만에서 오는 자기 투정(妬情)이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분별심을 잠재우지 못하고 마구 성질을 부리어 보는 사람 듣는 이에게 모두 공포심을 자극하여 불안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성질 부린 과보는 스스로를 공포의 늪으로 끌어들여 고뇌를 자초하는 꼴이  될 뿐이다.

『금강경(金剛經)』에서도 스스로의 마음을 항복 받는 문제를 가장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다. 밝고 맑은 본성에 물든 자기 긍정으로 오는 잘못된 판단을 자기 부정으로 극복하는 논리다. 이것이 보살심이다. 보살은 모든 것을 인욕으로 참으며, 모든 사물에 탐욕심을, 분별심을 내지 않으므로 참된 보시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만이 모두 맞게 갖출 수도 없으며, 나만이 모두 맞는 생각과 이치를 지니고 있지도 않다. 만약 나 하나만이 모든 이치에서 맞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자체가 이미 독각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곁에는 많은 참지 못할 일이 도처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 내가 피하려 하기 전에 내게 먼저 덤벼드는 것에 대한 불안감, 따라서 어떤 역경계라도 나만이라도 먼저 쉽게 피하려는 생각을 갖는다면 우선은 피해질지 모르지만 늘 불안의 안개는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게 마련이며, 불안한 심경을 떠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이름과 모양을 만나더라도 자기 기준으로 무조건 비판하기에 앞서 상대방에 다가가 나의 가슴을 열고 통할 수 있는 일치점을 찾아서 이해하면서 그를 이끌어 바른길로 안내할 수 있다면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삶에 편안하고 즐거워지리라.

『금강경(金剛經)』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을 마음에 새기고 무상(無相) 무주(無住) 무념(無念)의 신념으로, 그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용기를 내어 꼭 이겨낼 수 있다는 신심을 갖고, 모든 욕망에서 방하착(放下着)해 버리고 난다면 반드시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며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일랑 한 생각에 싹 지워버리자.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반야의 지혜로 진여(眞如)를 실현하는 대자유의 길, 열반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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