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표지

이달의 법문/ 체링 초펠 스님

인과법과 참회 ☞

정각도량/ 이법산스님

분별심과 지혜 ☞▷

특집/ 인도에 이는 불교 바람

람 라즈의 불교 개종운동/ 이거룡 ☞▷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정승석 ☞▷

詩心佛心/ 윤석성

수의 비밀☞▷

수행의 길/ 이만

마음을 일으키면 부림을 당한다.☞▷▷

고승의 향기/ 정유진 스님

혜가의 구도정신☞▷

경전의 말씀/ 이지수

해심밀경의 가르침 ☞▷

인터넷 세계의 불교/ 최동순

미국에 뿌리내르는 禪 ☞▷

일주문/ 심산스님

배어나는 아름다움 ☞▷

정각논단/ 송재운

경(敬)과 선(禪) ☞▷

세계 문화유산/ 김미숙

붓다의 섬, 스리랑카의 폴론나루와 ☞▷

교계소식 ☞▷

동국동정 ☞▷




혜가의 구도정신
정유진스님/불교문화대학 선학과 교수

요즈음 정말 고승의 향기가 그리운 때이다. 인류의 귀감이 되고, 인생을 바꾸어 줄만한 고승은 그렇게 많지 않다. 황벽희운이 “당국(唐國)에 선승이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이 말속에는 시대의 병폐를 비판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즉 당나라에 선승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스님들은 많이 있지만 정법의 안목을 갖춘 선승이 없다는 말이다. 법은 있지만 말로만 실천하고 말로만 깨닫는, 말뿐인 시대을 개탄하는 소리이다. 중국인들은 이를 말법시대라고 표현했다. 중국인들은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과 도교 등의 공격을 겪으면서 이에 대항하고 불교를 지키기 위하여 남악혜사(南嶽慧思)나 신행(信行)선사 등이 불자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말법사상을 주장하였다.

서두부터 왜 이런 절망적인 말을 하는가 하면 이제부터라도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늘은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혜가의 구도정신를 통해서 마련해 보자.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실천불교인 선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그 결실은 중국땅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혜가(慧可)는 중국인으로서 대승불교의 실천정신을 토대로 한 선을 보리달마(菩提達摩)로부터 최초로 전해 받은 선종의 제2조이다.

보리달마는 그의 제자인 담림법사가 쓴 『이입사행론』 서문에 달마의 제자에 혜가와 도육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양현지가 쓴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는 보리달마가 낙양 영녕사(永寧寺)에 와서 그 보탑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무(귀의합니다)! 나무(귀의합니다)! 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혜가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스님으로서 성은 희(姬)씨이며, 아명은 신광(神光)이었으나 보리달마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 혜가라는 법명이 지어졌다. 그는 건덕 4년(575) 북주의 무제법난 때 서주 환공산에 은거했으며, 또 북주파불에 이어 북제의 파불이 단행되었을 때 전후 6년간 환공산에 숨어살았다. 업도에서는 교학불교도들로부터 박해와 비난을 받았고 만년인 91∼2세 때는 또 국가권력의 탄압을 받았던 스님이다. 스님의 일생은 유리와 박해의 연속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고초는 모두 정법을 펴기 위하여 신명을 돌보지 않은 철저한 종교인의 행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등록』3권에 나오는 그의 일화를 보면 어느 날 혜가가 선정에 들어 있었는데 홀연히 한 선인이 나타나 남쪽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그 지시를 받고 보리달마가 있는 소림사로 가서 그에게 법을 구하자 보리달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혜가는 동짓달 초아흐렛날 눈이 오는 밤을 꼬박 밖에서 세웠다. 그 때 보리달마는 눈이 혜가의 무릅까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너는 무엇 때문에 눈 속에 서 있는가?”라고 묻자 혜가는 “법을 구하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하자 달마가 이르기를, 불법의 진리는 남이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여야 하며, 남이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법을 구하고자 하는 자가 그 정도의 정신자세로서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그 때 혜가는 칼을 뽑아 자기의 왼쪽 팔을 잘랐는데 그 때 때아닌 파초가 피어나 잘린 팔을 고이 받쳤다고 한다.

이상은 『전등록』에 나오는 단비구법(斷臂求法;팔을 잘라 법을 구하는)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진위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고 다만 신앙적인 차원에서 구도자의 정신과 종교가의 인격적인 문제만을 말하고 싶다.

옛 성인들이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은 사례는 혜가의 설중단비(雪中斷臂)이야기 이외에도 많이 있다. 예컨대 설산동자가 한 구절의 시를 얻기 위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진 것이나, 선혜(善慧)선인이 머리카락을 진흙땅에 편 것이나, 전단마제 태자가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이가 된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참으로 깊이 새겨서 실천해야 할 고귀하고 성스러운 행동들이다.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오로지 구도심(求道心)으로써 삶의 양식을 삼아야지 다른 생각이 있어서는 도를 구할 수 없다. 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재물이나 명예을 탐낸다거나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도와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명상(名相)에 빠져 형식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혜가의 구법 이야기를 진정한 마음으로 새기고, 또 새겨 봐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볼 때 항상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불교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즉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갔고, 지금도 살고 있지만 그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뛰어난 안목이 있어야 인류의 지도자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의 구제는 물론이고, 남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을 인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언어문자에 얽매여 사상을 음미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불교는 사상을 음미하고 개념화시키는데 있지 않다. 특히 선의 본질은 어떠한 개념이라도 탈피하는데 있으며, 이렇게 되어야 무애자재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불법의 정신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유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유에 의하여 체험된 지식은 이제 지식이 아니라 지혜인 것이다. 이 지혜로써 살아 갈 때 창조적인 삶과 자비와 이타의 보살행을 갖춘 인격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 표지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