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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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인도에 이는 불교 바람 


람 라즈의 불교 개종운동 
이거룡/BK21 연구교수

근대 인도에서 불교부흥의 기운은 인도 사람들이 아니라 유럽 학자들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18세기 말 인도에 와있던 영국 관료들은 주로 고고학이나 문헌학적인 입장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살아있는 종교로서의 불교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학문의 대상으로서의 관심이었다. 인도에서 일어났으나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불교를 일으켜 나의 삶으로, 우리의 믿음으로 지니자는 관심이 아니라, 단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종교의 유적과 문헌을 세상에 알리려는 지적인 욕구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당시 인도 사람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19세기 말 스리랑카로 건너가 비구가 된 마하비라 스와미(Mahavira Swami)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인도로 돌아와 폐허의 쿠쉬나가르를 중심으로 불교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또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 인도에서 불교 부흥운동은 보다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스리랑카인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의 대각회(大覺會, Mahabodhi Society) 활동과 암베드카르(Ambedkar)의 신불교 운동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다르마팔라는 자신이 창립한 대각회를 중심으로 일생 동안 폐허가 된 불교성지를 회복하는 일에 전념했다. 한편 암베드카르는 하층민들의 집단개종을 통하여 근대 인도의 실질적인 불교 부흥운동을 주도했으며, 이것은 그 후 인도에서 불교 부흥운동이 하층 천민들의 지위 향상과 관련을 지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01년 11월 4일 수천 명의 힌두교 하층 천민들이 불교로 개종하기 위하여 뉴델리의 암베드카르 바반(Ambedkar Bhavan) 광장에 운집했다.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한 이 개종집회(Diksha ceremony)는 암베드카르 이후 반세기만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람 라즈는 하층 카스트 힌두교도들을 돕기 위하여 결성된 All India Schedule Castes and Scheduled Tribes를 통솔하는 총수이다. 삭발한 머리에 손에는 오색의 불교기(佛敎旗)기를 든 수천 명의 군중들이 불상과 암베드카르의 사진 앞에서 팔리어로 된 찬트를 낭송하는 가운데, 람 라즈는 “이 순간이 수천 명의 달리트(不觸賤民)들이 힌두교를 거부하기로 결심하는 역사적인 순간”임을 선언했다. 당초 백만 명의 달리트들이 운집하여 인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종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다수의 사람들이 경찰력에 의하여 원천 봉쇄된 것으로 알려진다. 람{라즈는 이 개종의식에서 삭발하고 람 라즈라는 이름 대신에 우디트 라즈(Udit Raj)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으며, 그것은 자신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힌두교와의 결별은 곧 카스트제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사실 힌두교는 곧 카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둘은 모두 업과 윤회를 근간으로 성립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람 라즈는 이 집회의 의미가 “어떤 특정한 공동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카스트 제도를 허물고 싶을 따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집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곧 카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람 라즈는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교 같은 세계의 다른 종교들에 비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불교의 가르침은 인도의 다른 종교와는 달리 모든 추종자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기 때문에 불교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람 라즈는 앞으로 보다 많은 달리트들을 불교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캠페인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내년 4월까지 매월 이와 유사한 개종의식을 가질 것이며, 4월 14일 웃타라프라데쉬주(州)의 럭나우 부근에서 이번 개종집회의 10배 규모의 개종의식을 가질 예정이다.

마하비라 스와미로부터 시작된 인도에서의 불교 부흥운동은 그 후 다르마팔라의 대각회 활동과 암베드카르의 신불교운동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번의 람 라즈가 주도한 집회를 통하여 또 한번 인도 사회 전반에 불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적어도 외적으로 보아 불교도의 수가 크게 늘었고 불교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신불교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점 또한 적지 않다. 암베드카르나 람 라즈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 운동은 대개 불촉민들의 지위 향상 혹은 사회개혁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강하고, 심지어는 ‘불교를 모르는 신불교도’들도 많다. 짐작컨대 이 문제는 신불교도들이 대개 하층 천민들이라는 점과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서 개종은 불교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감화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불촉천민으로서의 사회적인 신분을 벗어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그 자체로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 하겠지만, 이런 경향이 지속된다면 결국에는 신불교도라는 이름의 새로운 힌두 카스트가 하나 더 생겨나는 것으로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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