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Home  정각도량   

“한국 목조 건축의 특성

김동현/ 동국대 교수

 


우리 나라 건축은 현존(現存)하는 건축이 고려시대 이전(以前)의 것이 없다. 그래서 상대(上代) 건축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들을 추고(推考)하여 알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예를 든다면 고구려 벽화고분(壁畵古墳)에 보이는 구조체(構造體)라던지 벽화의 건축 그림 등과 조그마한 백제시대의 공예탑(工藝塔)이라던가 아니면 신라시대의 화엄경(華嚴經)에 그려진 불전(佛殿)의 모습들을 가지고 추정(推定)할 뿐이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은 7세기 때의 것들로부터 현존하고 있어 상대(上代)의 건축특성을 아는데 그런대로 무리가 없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13세기 때의 것부터 있어 이웃나라들의 것과 비교하기에 너무 시대차(時代差)가 있어 어려움이 많고 그 뿌리를 찾는데에 많은 무리와 억측이 생기게 되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정한 우리 건축의 특성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건축의 진정한 특성을 처마의 곡선이나 자연에의 순응, 그리고 자연미(自然美) 등을 가지고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추상적(抽象的)인 것이지 구체적인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처마곡선의 구체적인 기법(技法)의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는 이렇게 말하기 어렵고 자연순응 역시 이웃나라에서도 그 예를 얼마던지 볼 수 있고 자연미를 강조하다보니 휘여진 기둥이나 구부러진 서까래, 곧지 못한 대들보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지만 건축에서 이러한 부재(部材)들을 사용한 것은 오늘날의 말로는 하자(瑕疵)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특성이라 말한다는 것은 조금은 부끄러운 것이 아닐런지..

필자는 우리 나라 건축을 공부하면서 진정한 우리 건축의 특성은 무엇인가를 관심을 갖고 주목하여 왔다. 특히 일본 건축에 영향을 미쳤던 우리 건축은 어떠한 것이였나를 생각하곤 하였다. 결론을 말하면 우리 건축은 다름 아닌 건축에 사상(思想)을 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신은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계속되어 조선말기까지 이어져 왔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건축에 가해진 건축 조각(彫刻), 즉 건축 의장(意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는 그러한 부분이다. 한국건축사에서 목조건축의 양식(樣式)을 분류할 때 주심포(柱心包)니 다포(多包)니 익공(翼工)이니 하는 식으로 나누는데 이 때 포(包로 쓰고 있으나 공포(蛋包)의 준 말이고 원래는 鋪의 의미)와 익공(이러한 양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양식)이란 것은 목조건축을 양식상 분류할 때 공포가 기본이 되므로 이러한 용어(用語)가 쓰이게 된 것이다. 이 공포들에는 필연적으로 의장이 부가(附加)되는데 이 의장에 의미있는 조각이 새겨지게 된다. 이 조각들의 명칭을 보면 구름모양(雲形)이니 쇠서(牛舌)니 수서(垂舌)니 앙서(仰舌)니 익공(翼工)이니 하는 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 계통의 뿌리를 갖고 있는 조각들이며 우리 나라 조각의장의 특징이다. 그 조각 안에 숨겨진 사상은 우리 민족만이 간직한 건축 사상(思想)이 아닌가 생각케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지역이 떨어져 있는 일본에서 그 근거(根據)를 제시하여야만 가능하다. 일본의 목조건축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가장 오랜 것이 서기 670년의 건축인 법륭사(法隆寺:호오류지) 금당, 5중탑, 중문, 회랑건물 등이다. 이들 법륭사 건축들을 일본에서는 소위 비조양식(飛鳥樣式: 아쓰까樣式)이라 부르며 또는 운형주목양(雲形紂木樣:구모가다히지끼요)라고도 한다. 이들 건축의 특징적인 것은 다름 아닌 공포에 구름모양을 새긴 첨차(察遮)를 갖고 있음에 있다. 이러한 건축은 법륭사 건물 외의 건물로 법기사(法起寺: 홋끼지)의 3중탑과 법륜사(法輪寺: 호오린지)의 3중탑, 그리고 법륭사에 있는 옥충주자(玉忠廚子: 다마무시즈시: 비단벌레 佛龕)에만 보이는 양식으로 일본 건축양식 중 가장 오래된 건축양식의 하나이다. 이들 건물 중에 법륜사의 3중탑은 1944년 낙뢰(落雷)에 의한 불로 소실되었던 것을 1975년 복원시켰다. 이들 건축은 대부분 백봉시대(白鳳時代 : 645년-710년)의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비조양식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710년 이후 나라시대(奈良時代 또는 天平時代라고도 함: 710년 - 794년)에는 그 모습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 후에도 이 양식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일본에서는 왜 운형주목 양식이 나라시대 이후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뚜렸한 해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건축자료가 우리 나라에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751년에 지어지기 시작한 불국사의 범영루(泛影樓) 밑 돌기둥 상부(上部)의 모습이다. 이 기둥을 우리는 흔히 안상형(眼象形) 돌기둥이라 말하고 있지만 이 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은 구름문양을 중첩(重疊)시킨 모습이며 원래 이 기둥 위에는 종루(鍾樓)가 세워졌을 것이다. 지금은 범영루라 불리워지지만 불국사 고금창기(古今創記)를 보면 종루(鍾樓)가 있었으리라 생각되며 이 종루는 천상(天上) 누각(樓閣)으로 생각케 하기 위해 구름 위에 뜨도록 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범영루 밑의 구름문양은 일본의 운형주목 양식과 통하는 것이며 시대와 지역을 달리하지만 같은 생각의 발상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것이 목조건축이 아닌 석조건축의 예이지만 이 한가지 석조물의 예(例) 만으로도 목조건축에서는 흔하게 쓰였던 기법이며 정신이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우리 나라 현존 목조건축의 첨차(察遮)에 나타난 조각들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보면 구름문양의 변천 모습과 과정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목조건축의 가장 오랜 예를 든다면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의 건축이다. 이 건축은 현존 우리 나라 건축 중에 두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는 건축이다. 이 건물의 내외부(內外部) 부재 중에 소위 쇠서(牛舌: 소의 혀모양) 문양으로 보는 조각은 확실히 구름문양의 변형된 모습이며 법륭사 건축의 구름모양의 끝이 윗쪽으로 살짝 들린 형태이다. 이 건물 다음으로 1308년 건축된 수덕사(修德寺) 대웅전(大雄殿)의 첨차 끝 조각 모습은 부석사의 구름 모양이 다시 아랫쪽으로 변곡(變曲)되어지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첨차의 조각은 조선시대 초기 건물인 무위사(無爲寺) 극락전(極樂殿)이나 송광사(松廣寺) 국사전(國師殿), 도갑사(道岬寺) 해탈문(解脫門) 등으로 이어지며 결국 조선말기의 건물들에서 볼 수 있는 익공(翼工)이라 불리우는 초가지의 문양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첨차의 문양 변천을 볼 때, 이는 우리 민족만이 건물에 표현한 조각기법이며 이 기법 속에는 구름이란 뜻이 내포(內包)되고 있어 우리 건축의 특징적 요소를 잘 나타낸 것이며 구름표현의 생각은 즉 천상(天上)의 전각(殿閣)이나 누각(樓閣)을 의미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건축이나 중국건축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 민족이 건물에 나타낸 건축심리(建築心理)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건축심리는 비단 목조건축 뿐만이 아니라 건축물의 기단부(基壇部)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궁궐건축에서 보면 궁궐의 정전(正殿)의 월대(越臺, 또는 月臺)를 보면 계단석 양측의 소멧돌이나 답도(踏道)에 구름문양이 많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종묘(宗廟)의 정전(正殿) 계단 소멧돌에서도 구름 문양을 접할 수 있고 사찰(寺刹)의 불전(佛殿)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자주 대할 수 있는 것은 임금님이나 부처님은 천상의 인물로 보려는 의미를 갖고 있고 종묘에서의 뜻은 사당(祠堂)의 건물을 천상전당(天上殿堂)으로 보기 위함이라 생각 할 수 있다. 천상건물의 의미를 부여(附與)하기 위해서는 구름 문양을 항상 동반(同伴)하였고 궁궐 정전의 부재(部材) 명칭에서도 운궁(雲宮)이니 운공(雲工)이니 하는 용어(用語)를 사용한 재목(材木)들이 있다는 것은 그대로 간과(看過)해 버릴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우리 나라 건축 내(內)에서의 조각 표현은 곧 우리 건축의 특징(特徵)이요 우리 건축의 특유(特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의 운형주목 양식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만일 그들의 것이였다면 그 양식은 계속 이어져야만 했고 우리 건축에서의 소위 쇠서형(牛舌形)의 조각은 보이지 않았어야 한다.

필자는 우리 건축 용어에 있어 많은 부분들이 옳은 용어 풀이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특히 동물의 부분(部分) 명칭을 성(聖)스러운 전당(殿堂)건축의 부재 이름으로 매도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전통건축(傳統建築)에 담겨진 사상을 보면서 현대건축(現代建築)에 담겨진 사상은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심정이다.

 


Copyright(c) 1997-2001 Jungga
kwon All Right Reserved.
junggakwon@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