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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와 소승불교"

장계환스님/불교학과 교수

 


지난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동남아 불교국가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수많은 불탑과 불교 유적을 참배하면서 참으로 감격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찰에서는 절하는 모습을 비롯하여 우리와 다른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 곳은 소승불교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우리나라의 대승불교와는 교리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습니다.
 (경상대학 경영학부 : 박지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각기 다른 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불교가 아니라, 어디에다 더 역점을 두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먼저 소승불교는 출가중심사상이므로 자각(自覺)에 역점을 두어 지혜를 중시하고, 결국 자리(自利)를 우선으로 하여 아라한(阿羅漢)이 될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대승불교는 재가중심사상이므로 각타(覺他) 즉 나는 물론이고 타인까지도 깨닫게 하고자 하는 자비행이 강조됩니다. 그것은 곧 이타(利他)정신의 실천으로 이어져서, 최종에는 자타(自他)가 모두 성불(成佛)하는 것에다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승불교에 자비와 이타정신이 없고, 대승불교에 지혜와 실천수행이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표방하고 어디에다 더 주안점을 두고 수행정진하는가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원적으로 소승(hinayana)은 작은 수레이고, 대승(mahayana)은 큰 수레를 뜻하지만, 이러한 수레의 비유는 대승불교 측에서 이전의 보수적인 교단을 비판하고 자기네들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붙인 명칭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가지 예를 들면 두 사람의 원예가가 똑같은 씨앗을 뿌려서 꽃을 가꾸는데, 한 사람은 몇 송이의 꽃만을 화려하게 꽃피우기 위해 잎과 가지를 희생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아름다운 꽃송이보다도 꽃나무 전체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잎과 가지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키웁니다. 결국 두 꽃나무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은 같은 종자에서 나온 꽃나무이듯이, 대승과 소승불교 그 어느 쪽도 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사자는 새끼를 언덕 아래로 굴려 살아남는 새끼만을 키우지만, 그렇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만이 불성(佛性)이 있는 게 아니라 떨어지면서 비록 다리를 다치거나 얼굴에 상처를 입더라도 모두 성불할 수 있는 중생이라는 입장이 바로 대승불교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소승불교는 다녀왔다는 동남아 불교국가들을 중심으로 전파되었고, 대승불교는 중국과 우리 나라, 그리고 일본과 티베트 등지로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는 이상(理想)은 대승불교를 목표로 하고, 수행은 엄격한 소승불교의 실천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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