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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정각도량 / 4월호 / 통권 46호 / 불기 2543(1999)년 4월 1일 발행

 

 

이달의 법문

경이로운 삶/무비 큰스님

 

정각도량

봄소식/이법산스님

 

특집1

출가, 실존적 자기 성찰로의 여행/김형준

 

특집2

재가 불자의 출가정신/이철헌

 

신행상담

살생/장계환 스님

 

유마경의 세계

불국품과 방편품/강혜원스님

 

불교문학

중국의 詩歌와 불교/박영환

 

수행의 길

염불수행과 기도/정성본 스님

 

불심의 창

불교는 과학적이다/김주필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례원 원장, 정승연/편집부

 

일주문

비구 性本에게 주는 경책/정성본스님

 

신간안내

고려대장경 해재/편집부

 

가람의 진수

범어사/유문용


이달의 법문
경이로운 삶/무비 큰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우리가 불교에 관심을 갖는 것은 깨달음의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화두일 것이고,저 역시 늘 이 화두에 짓눌려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깨달은 사람만의 전유물인가, 아니면 깨닫지 못한 우리 같은 범부도 과연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깨달음을 설명하는 불교 전적들을 면밀히 살펴보니까,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본래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루었기 때문에,지금의 우리들 역시 깨달음의 한 부분에 동참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깨달음의 내용을 제 나름대로 살펴본 입장에서 인생이란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구나, 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화엄경에 보면 첫마디에 부처님은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깨닫고 나서 이 세상을 바라보니까 이 세상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더라. 지금 붓다 가야에 가봐도 척박하기 짝이 없고, 돌 자갈로 깔려있는 그런 땅일 뿐인데, 어떻게 해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고 난 후 이 세상을 다이아몬드로 보았을까, 부처님 눈에는 어찌하여 그것이 다이아몬드로 비쳤을까, 이것이 큰 의문이 되어서 첫 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거짓말을 하셨을 리가 없고, 그야말로 사실은 아니되 진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무엇인가 이해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35세가 될 때까지 그야말로 맹인으로 살던 어떤 사람이 35세가 되어서 눈을 비로소 뜨고 삶을 바라보았을 때, 그때 다가오는 충격과감동,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깨달음의 세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 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조사스님들의 말씀이라든지 경전에 있는 구절을 보면 그것은 분명히 눈을 뜨지 못한 그런 차이에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와 같이 인생에 있어서도 지혜의 빛과 삶에 대한 바른 안목이 있다면,순간순간이 다이아몬드를 얻는 것보다도 더 빛나고 경이롭고 참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법화경에서도, 길 가는 사람이 피곤하면 그길 이 멀고 힘이 들듯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도 역시 지혜가 없을 때 그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듯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 바로 그것이 깨달음이구나. 그러므로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인 것입니다.어떤 사형수의 이야기가 나는 늘 생각이 나고 가끔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후에 자기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는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감방 안에 작은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처럼 하잘 것 없는 벌레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더라는 것이죠. 내가 차라리 저 벌레가 되어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깨달았다고 해서 특별한 세계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부처님은 당신이 깔고 앉았던 길상 초라는 풀이 하잘 것 없는 풀이고, 기껏해야 돌 위에 자란 것을 잘라서 깔고 앉았던 자리에 불구하지만, 경전에는 어마어마한 사자좌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것은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사실은 아니지만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에는 진실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 대해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뜰 때, 그와 같이 순간순간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경이롭고 행복으로 넘치는 소중함이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정말 마음이 흐려 있고 마음의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을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가족 정도 겨우 보고 삽니다. 급하면 가족도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은 형제 자매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상들이 오늘날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정말 삶의 소중함에 제대로 눈을 뜬다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바로 볼뿐만 아니라옆 에 사람도 볼 수 있고, 삼리 만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의 안목을 통해서 인생의 소중함을 우리가 제대로 안다면 삶의 소중함,그 외의 것은 좀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액세서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것, 사실은 구입할 때 잠깐 그저 마음이 끌릴 뿐입니다.

사실은 삶, 그 자체에 어마어마한 가치와 행복과 소중함이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에 것을 우리가 자꾸 쫓아가고 따르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흐려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교통 사고로 인해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자녀를 앞에 둔 어버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의사에게 매달리기를 내 팔다리 다 잘려도 좋으니까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 어느 누구라도 애원을 하게 됩니다 팔다리가 얼마나소중합니까? 그렇지만 목숨보다는 소중하지가 않습니다. 산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그렇게까지 우리가 애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선사께 물었습니다 도가 무엇입니까? 말하는 이는 마침 아침을 먹고 차 마실 시간도 없이 그렇게 왔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사께서 대답하기를 왜 그렇게 일찍 왔느냐고, 아침이나 먹었느냐고 하니까 먹었다는 거야, 먹었으면 가서 그릇을 씻어야지.

아침 먹었으면 가서 그릇을 씻어라,그렇습니다. 아침 먹고 그릇을 씻는 바로 그것이 무엇입니까? 삶,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삶에는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더 깨어 있는 눈으로 삶을 볼 때,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것이고 아름다운 모든 내용들이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이처럼 우리는 삶, 그 본질 이외에 다른 것에 너무 마음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그 삶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흐려 있는 마음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더욱더 밝고 맑은 눈으로 우리 삶을 다시 한번 볼 때,우리의 삶은 한 순간의 실직이나 취직에 관계없이 살아지는 것입니다.

지금내가가진 것은 아무 것 없어도 삶 그 자체로서는 얼마든지 우리는 경이로운 삶, 행복한 삶, 아침에 눈을 떠서 밝은 태양을 바라보고, 또 흐리면 흐린 대로 또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느끼고 하는 것 얼마나 신기합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실 이것이 놀랍고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의 눈이 흐려서 그렇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의 경지 또는 도의 경지, 이것을 우리는 너무 높은 곳에다가 우리 나름대로 설정을 해 놓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번씩 우리는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깨달음의 안목으로 봤을 때. 우리의 삶은 곧 가장 불교의 이상적인 삶, 깨달음과 도와 진리가 바로 직결된 삶이라고 평소에 하고있던 것을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정각도량
봄소식/이법산 스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화 등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드러내고,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여 눈을 황홀하게 하고, 코를 싱그럽게 하여 마음을 설레게 한다.꽃을 보고 아름답다는 마음을 일으키고, 산을 보고 그 푸르름에 가슴을열고, 돌을 보고 인내와 침묵에 대한생각에 잠겨 본다면 조금 더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꽃은 무상을 직감하게 한다. 꽃을 보고 무상(無常)을 느끼지 못한다면 꽃을 하나의 장식품으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의 모양은 열흘을 가지못하지만 그 향기는 그윽하게 마음에 깊이 새겨져 그 향기를 떠올릴 때마다사색인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를 넘치게 한다.

사람의 생명도 그 모양에 있는 것이아니라, 맑고 밝고 부드러운 깊은 마음의 향기에 있다. 예술 작가가 그 어떤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정직함과 정성이 표현되고 전이되지 못한다면, 그 작품이 아무리 외양이 훌뭉하다고 해도 결코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봄에는 많은 꽃이 핀다. 꽃을 지닌 마음의 향기를 담아 자신의 얼굴에 진한 미소를 드러내어 보자.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더불어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밝은 내 마음을 담은 로혼은 향기를 베풀어 준다면, 어느 곳의 어떤 사람들이라도 나에게 밝은 미소를 되돌려 줄 것이다.

꽃은 무상하지만 향기는 영원하듯이,우리의 사대 육신은 늙고 병들어 무상하게 돌아갈 것이지만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는 영원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본사세존(本師寸比尊) 이 신 석 가모니부처님처럼 눈은 마음의 창(窓)이라고했던가 아름다운 눈, 밝은 눈은 모든 사실을 올바르게 보고 정확하게 판단한다.

산은 사시 사철 색깔을 달리하지만 거짓이 없다 항상 푸르름을 전해 주고있으며, 무한한 미래의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다. 산에 사노라면 산에 묻혀 고마움을 잊고 산의 위대함에 존경심조차 잊고 지내다, 산을 떠나 보면 비로소 산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게 된다.산에는 풀과 나무와 꽃과 열매가 있고, 물과 돌도 있다

 산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모습과 풍요로운 지식을 주고,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가슴에 간직해 주는 곳이다. 마음을 열고 큰 산을 가득 담으면 마음은 푸른 산이 되어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주고, 누구나 와서 앉고 눕고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될 것이다.

화초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음을 가졌지만, 수석을 사랑하며 돌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더욱 고매한 의지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뭇 사람들은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돌, 말이 없는돌, 의미가 없는 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고귀함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돌이 아니어도 돌의 노래를 듣고 돌의 향기를 담아보자. 돌은 참으로 거룩한 성자처럼 나의 삶의 현장에서 묵직한 성스러움의 의미를 던져줄 것이다.

꽃의 향기, 산의 다양성, 돌의 듬직함을 마음에 새기고, 굳은 신념과 밝은 지혜와 올바른 실천의 의지로 후회 없는 삶을 만들자.

고려 후대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一1382) 국사의 『참선명』(參禪銘)의 천구와 끝 구를 감상해보자.

 

해와 달은 마치 번갯불 같거니,

찰나의 시간도 아껴야 하네.

살고 죽음은 호흡 사이에 있어,

아침 저녁도 보장하기 어렵나니.피로가 오거든 발 뻗고 자고,

배고프거든 입에 맡겨 먹어라.

무슨 종(宗)이냐고 누가 묻거든,

방망이(棒)와 호통(喝)을 쳐라.

 

日 月似電光 光陰良可昔

生死在呼吸 雅以保朝夕

 

困來展柳眠 飢來信口喫

人問是何宗  奉喝雨如滴

 

시간은 무상 살 귀처럼 생명을 설키고 지나가는데 무엇을 시비하고 질투하며, 밖으로 내달릴 것이 있으리오.다리 뻗고 편히 쉬면서 입맛대로 먹으며, 어느 때 그 누구와도 더불어 즐기고 기쁨을 줄 수 있는 대자유인이되려거든, 재빨리 자신의 마음에 들어앉아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객진 번뇌를 비오듯이 방망이로 내리치고, 뇌성벽력 같은 소리로 한시 바삐 내쫓아야하리라.

 

 

 

 

 


특집1/출가 정신
출가, 실존적 자기 성찰로의 여행/김형준

 

 

 

 

 


특집2/출가 정신
재가 불자의 출가 정신/이철헌

 

'출가나 해 버릴까', '산 속으로 들어가 버릴까.' 주위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길 때면 세상을 등지 고산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다면서 내뱉는 자조적인 말이다.

특히 국가적인 경제난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진 요즈음이고 보니 현실 도피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권력, 재물, 명예 등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 왔는데 그러한 것들이 마음먹은 대로 성취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고뇌하고 고통받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세속의 것들을 잊고 싶은 심정에서 출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출가(出家)는 가출(家出)이아니며,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출가는 단지 '집을 나서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몸소 깨달아 열어(開n 보이신(示) 진리를 수행하여 깨달음(悟n에 들어가기(入) 위해 세속의 욕망을 버리는 것이다. 즉 출가란 세속의 욕망을 일시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소멸하고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것이다.

가정을 가지고 사회 생활을 하는재가 불자(在家佛子)들은 처음부터 출가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출가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는것, 곧 스님이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도 출가와 재가, 출세 간과 세간은 엄연히 구분되어져 있으며 신앙과 수행의 형태 또한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연에 따라 사회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재가 신자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수행하고자 하는 불자들이다. 그러므로 재가 불자들도 출가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출가 정신을 항상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출가에 대하여 대반열반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나는 29세에 선(善,kusala)한 것을 구하여 출가하였다.수밧다여, 나는 출가한지 50여 년이 되었으며 정리(正理)와 법(法)의 영역을 걸어 왔다. 이 밖에 사문(沙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의하면 석존께서 출가한 목적은 오직 선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이며 출가 후의 수행 목적 또한 선의추구였으며 출가 이후 줄곧 진리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한 석 존이 출가한 것은 고(苦)는무명(無明)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깨달았다. 무명이란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며,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것을 실천 수행하면 고로부터 벗어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석 존의 출가 정신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 '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재가 불자들에 있어 출가 정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불교 교단에 처음 들어올 때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재가 불자들은 세속의 고뇌나 고통, 재난 등을 부처님의 가르침, 곧 진리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를 바로 끼우지 못하듯 처음부터 올바른 출가 정신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출발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출가정신은 처음 불교 교단에 들어갈 때 행하는 삼 귀의라는 의식(儀式) 속에 잘 담겨져 있다. 이 살 귀의를 잘 만들어 실행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비로소 불제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불교 신자가 불상 앞에 나아가 헌화하고 분향하면서 예결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고 그진 리를 열어 보여 주신 완성자로서의 붓다를 기리며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에 대한 진정한 존경은 맹목적인 신앙의 정도가 아니라 그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 수행하였는가에 의하여 측정될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신뢰하여야 한다. 붓다는 진리를 설하였으며,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진리를 스스로 깨닫도록 인도하였으며, 현명한 자들이 스스로 각자 깨달아야 할 것들을 제시하였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승가를 존경하며 신뢰하여야 한다. 승가는 세상을 위한 공덕의 원천이며 현명한 자들이 전적으로 따르고 높이 찬양할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아 지혜를 갖도록 실천 수행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삼귀의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의식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출가 정신이 담겨 있는 매우 중요한 의식인 것이 '다. 그러므로 이 삼 귀의는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신행상담
살생/ 장계환 스님

 마리양에게 누가 ''살인은 나쁜 것일까요?'' 하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나쁘다고 대답할 겁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종교도 살인은 금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물의 경우에는 이 같은 기준을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동서양의 종교가 발생된 배경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서양의 종교는 유목 사회에서 출발한 종교입니다. 유목 사회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해야만 하고, 오직 제일 강한 자(유일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종적(縱的)인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물은 인간에게 봉사를 해야 되고, 인간은 다시 신에게 봉사해야 하는 계급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살생은 결코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양 종교인 불교는 농경 사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어디까지나 공존을 도모합니다. 서로 공존하는 입장이니까 횡적(橫的)인 체계를 이루게 됩니다. 즉 동물과 인간, 그리고 부처님까지도 근본적으로는 평등한 관계인 셈이지요. 따라서 동물에 대한 살생도 당연히 죄가 됩니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알아두는 것은 매우 중요한일입니다, 예를 들어 마리 양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모르긴 몰라도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라고 답하지 않을까요?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물고기의 입장이 한번 되어 보세요.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서로기 유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소나 말 등 온갖 동물 내지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의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 발육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자신의 취미로 잡는 그 물고기가 실은 전생에 자신과 어떠한 유대관계였는가를 윤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본다면 마리 양의 아버님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낚시를 즐길 수만은 없을 겁니다. 아마 어머님의 염려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불교에서는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 우주 속에 그대로 남아서 뭇 생명체를 형성시키므로 우주 자연과 자신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죽은 후에도 이 육체는 또다시 우주 대자연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물론 다른 동식물의 경우도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과 동물을 살생하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보는 점이 바로 불교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입니다.

 

 

 

유마경의 세계
불국품과 방편품/강혜원 스님

『유마경』의 제1불국품은 서문에 해당된다.경의 첫머리에는 '때'와 '장소'와 '사람'이나타난다 '어느 때' '바이샬리의 암라수 동산'에서 부처님은 수많은 비고와 보살과 함께 계시고 그 곳에 큰 부자 상인 우마가 있는 것이 다.

그때, 대중들이 조용히 바라보는 가운데바이샬리성 장자의 아들 부적이 오백 인의 장자의 아들과 함께 나타나 모두 가지고 첬던일산을 부처님께 바친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오백 개의 일산을 하나의 커다란 일산으로 만들어 우주를 모두 이 일산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이 같은 놀라운 신통력을 목격한 보 적은 부처님을 찬탄한다. 부적의 찬 불게 중불교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다.법은 있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인연 때문에 모든 법은 생긴다.

 

법이란 일체의 현상이다. 존재하고 있는것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인연이 없으면 더 이상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은 항상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도아니다. 그러므로 '법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모든 사물은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고 보면 없는 것도 아니고 인연에 의해 멸하는 것이라고 보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諸法無我'라고 했다. 변하지 않고 고정된,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인연'이라는 말에는 불교의 진리, 즉 無常.추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이 말을 이해하고 체득하면 참된 불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찬탄이 끝난 다음 부적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세상에 정토, 불국토를 세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중생의무리, 이것이 보살의 불토가 된다''라고 하셨다. 중생의 마음 안에 불토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중생의 마음 즉 인간의 어떤 마음이라야 부국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이것에 대해 부처님은 直,已,, 深,已,, 菩王呈,已,을 설한다 직 심은 純一하여 잡됨이 없고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말하고, 심심은 즉 깊은 마음이며 이는 일체의 선행의 바탕이 되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보리심은 대비심을 뜻하는데 이는 이타행으로서 타인에 대하여 베푸는 마음이다 부처님은 三,已,을 설하고 나서 다시 정토를 세우는 행으로써 六度 . 區切無骨,已, . 四攝法.十善 등 아홉 가지 행을 설한다. 그러나 그 행의 근본인 마음이 깨끗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전제 조건이다.

부처님이 ''마음이 깨끗하면 불토가 깨끗하다''고 설하셨을 때, 사리 불은 마음이 청정하신 부처님이 계시는 이 사바 세계는 필연적으로 깨끗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함을 의심 하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미리 아시고 ''태양이나 달은 뚜렷이 밝다 그러나 맹인은 이를 알 수가 없지 않는가.'' 계속해서 ''사리불이여,중생은 죄 때문에 이래의 국토가 깨꿎함을볼 수 없다. 이것은 이래의 탓이 아니다 이 국토는 본래 깨끗한데 그대가 다만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리 불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범천이 그때 나타나 ''그대의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어서 일체를 평등히 보는 부처님의 지혜에 의하지 않고 이 국토를 보니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라고 한다. 그때, 부처님은 불토의 장엄을 보이시고'근기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죄악으로 더럽혀진 국토가 보일 뿐''이라고 하셨다

 이 <불국품>의 주제는 '이 세상의 공덕 장엄된 것을 보려면 바로 마음을 깨끗이 해야한다.'는 것이고 '마음이 깨끗하면 바로 불토는 깨끗하다'는 점이 이 품의 요지이다.

 

제2 方便品

 

이 품에서는 우마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앞의 <불국품>에서는 마음과 국토(객관)는 둘이 아니라고 하는 불이 법문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이제부터 불이 법문을 위해유머가 나타난 것이다. 경에서 우마에 대한소개는 대략 이렇다.

'일찍부터 무량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깊이 善本을 심어 無生忍,을 얻고 변제는 무애하였다. ... 깊은 법문에 들어 智度를 터득하고 방편에 통달하였다. ,.. 오랫동안 불도에 있어서 마음은 이미 純久阮하고 대승을 결정하여 할 일을 잘 생각하고 부처님의 의의를 갖추고 모든 부처님 및 세간의 왕까지도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우마의 인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재산이 한없어 모든 가난한 자들을 감싸며, 청정한 행으로 모든 허물을 감싸고 인욕의 조복의 행으로서 모든 노여움을 감싸고대정진으로 모든 게으름을 감싸며 一,已,禪寂하여 산란함을 감싸며 走으로서 빛남(慧)은모든 무지를 감싼다.'

 

경에서의 우마의 모습은 병환 중이며 그 중에서도 불법을 설했다. '이 몸은 고뇌의 근원이며 모든 병이 모인 둥지와 같다'고 하며 이 몸의 덧없음을 설한 것이다

 절에서 몸을 '똥자루'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디에도 거울이 겊려 있지 않다. 이는 똥 자루를 봐서 뭣하나 하는 소식일 것이다. 유만은 ''이것이(육신) 싫고 걱정되는 바라면 불신을 좋아 해야 한다''고 설한다. 법신은 청정의 세계에 주하고 영원 불변의 존재이므로 근심이 되는 육신은 버리고 법신을 즐기는 것이 불교로 입문하는 것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또한 '불신을 얻고 일체 중생의 병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아뇩다라살먁살보리를 내야 한다'고 설한다. 즉 인생이 무상인 것을 알고 불교의 가르침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처럼 <방편품>에서 재가 자들에게 불교의 뜻을 알리기 위해 그 방편으로 자신의 병든 모습을 보이면서 무상한 이치를 나타내어'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이끌고 있다. 불교의 입문에 해당하는 '제행무상'의 무상성음이 품에서 배우는 것이다.

 

 

 

불교문학
중국의 詩歌와 불교/박영환

宋代에 이르러 비록 理學이 봉정하였으나 그러나 전체적으로 f需佛道가 서로 결합하는 추세로 나아갔으며 당시의 문인과 시인들은 여전히 선과 시를 함쪄1 논하고 시 속에 수많은 불교 선종의 사상을 유입시켜 宋區存가 哲天받的으로 흐르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송초 시단의 대표적인 유파인 서곤체의 대표인물 木輧意,도 당시의 安公大師와 廣慧比璉禪自掛 등과 매우 친밀하였으며 <五,t 會푯l二>에서는 그를 임제종에 편입시켜 廚욺,咳讓門下十世제자로 보고 있다 또한 북송 중기의 대학자요정치가인 歐蔓修도 만년에는 불교에 심취하여 六 -居소라고칭하였고, 복종의 개혁가인 王安石도 불교의 영향을 깊게 받아 만년에는 자기가 살던 집을 사원으로 개축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서도 이러한 불교 선종의 흔적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懷鐘아과 <參石罔>의 시 속에서 八성0夢의 공허한심졈과 슬픔을 표시하고 있으며, <登寶公塔>의 마지막 구에서吻我와 主客을 모두 잊어버린 이로써 일종의 있음이 없고, 또한 있지 않음이 없는 선종의 경계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宋代 詮寺歌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또한 송대위 문인 중에서 불교 선종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고작품중에 불교와 유관한 작품이 가장 많은 전형적인 인물은 바로 蘇軾이다 그는 스스로를 東坡 쿰士라고 칭하고, 불교의졍전중에서 <草曷要>, <維摩>, <圓覺), <楞枷> 등의 經典 및 선종의 어록에 매우 정통했음을 그의 시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또한 그도 이전의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고승 대덕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佛印, 惠弁, 法言,仲淵등등 약 i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江浮와 詞의 작품 속에 매우 풍부한 禪味가 깃들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많은 문장을 통해서도 불교의 교리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등 불교에 대해 매우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하고 있는 '盧山眞面日'도 그의 <題西林壁> 시구에 나오는 구절으로세상의 만물이 주체적인 관찰 각도에 의하여 그 결과가 달라진다는 도리를 깨우쳐 주는 것으로 바로 선종의 ''徹舛吾言yr의敎義를 체현해 낸 것이다 또 다른 승속간에 유명한 시 <眸曾柬林總長老>를 보면 ''시냇물 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고,산 빛이 바로 청정한 법의 본체가 아닌가 밤사이의 4만8천의 게송, 다른 날 어떤 방법으로 표현해 보나(溪聲便是套長舌,山色豈非淸淨身 疫來四万八千偈, 他H如何擧小)L)'' 즉 산 빛과 溪聲이 바로 禪理이고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으로 不ㅈ乙文字의 선종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유명한 <赤壁賦>도 莊子의 '帑杓혀歲' 과 비슷하지만, 선종의 ''法투一柏'', 일체가虛幻된 것이라는 宇宙時랸絶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 소식의 학생이자 친구이며, 또한 송대위 대표적인 시파인江西區寺派의 우두머리 黃庭堅과 際師道등 강서시파 일원의 작품도 선종과 매우 밀접한 관례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정견은 禪宗 芦龍t辰의 u艅堂祖,已,禪自酊의 入室弟子이며, 또한 帆,仝,禪師의 양대 제자 靈t馴佺淸禪師와 雲읽'吾頰禪自而와 서로 연구하고 참선을 행하는 등 우의가 매우 깊었다 그의 시<泰答茂衡惠,紙長句)에는 자기 스스로 참선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매우 섐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그의 사상적인 졈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남송의 대표적인 시인 匣尊族, 牢易万里 등의 弄寺에도 佛理와 眷輕가 녹아들어 있음을 알수있다

疋明淸에 이르러 불학의 발전은 낭송에 미치지 못하고 답보직인 상태를 걸었지만 그러나 재가기사의 불교의 연구는 당송을 초월하였다고 할 수 있다 耶律楚, 茉世奫, 李奫吾, 袁宏줏亘, 錢讖益, 袁枚의 작품 중에는 불교선 사상을 취하지 않음이 없었다 耶律楚材는 원초의 명재상으로 일찍이 징키스칸을보필하여 적지 않은 공로를 세웠으며, 그의 시도 높게 평가를 받았으며 일찍이 曹 미禪의 大宗自眄樹孑秀를 따라 3년 참선 끝에 마침내 인가를 얻어 ''r甚然쭘士''라고 칭하였다 또한 원 광도는 公劣높派의 월頁袖로 불학에 관한 연구와 시의 성취가 제일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븃沈 宗道와 동생 中道와 함께 당시의 시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청년시기에이탁오의 영향으로 선종에 심취하였으며, 그러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시문에서 한자도 통함이 없으나, 오로지 선종에 대한 것은 감히 양보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l9세기 초에 이르러 봉건 사회가 해제될 위기에 처하여 전통적인 사상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에도 적지 않은 문인들이 불교의 연구를 통하여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서 상적지주로 삼으려고 한다 시인 拏籌自珍과 飄承原이 대표적인 인물  공자진은 어릴 때에 당시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증학에 심취하였으며 특히 公羊學 뛰어났다 그러나 동시에 불학에 대하여도 길은 연구를 수행하여 광범위한 내용과 깊이가 있는 49편의 논저를 남기고 있다 만년에 지은 <題梵丹不)이라는 시에서는 불학의 지위를 유학의 위에 두고 있음을 볼 때 그의 불교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西夕"落花歌>, <四言六毋>, <己亥雜詩> 등 여러 작품 속에 불교의 道理와 불교용어가 자주 유입되어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巍v原은 공자전과 마찬가지로 公羊之學에 몰두하고, 큄茅典의 연구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또한 '以佛入區寺'와 같이 공자전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도 <聾山紀游>, <西洞庭包山寺留甲> 등의 詩속에 고의로 禪味를 표현하여 자기 시의 특징을 형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외에도 유명한 사상가 梁啓超도 <飮水塋詩話)에서 ''반쯤 佛理를 취하고 또한 서양인의 식물학,화학, 생리학 등 여러 학설을 참고하면 실제로 詩의 力覓界에 있어서 새로운 벽을 열기에 족하다,''라고 불교를 찬양하며, 불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불교의 詩에 대한 영향 이외에 敗文과 시,訛, 戱曲과 문학비평 등에 대한 영향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散文에 있어서는 불학의 이론을 논술한 문장 이외에 碑그名, 頌, 贊그江 臥行薛犬, 書 등 같은 산문의 형식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러한추세는 꺄雲運과 僉包照,로부터 청대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영향은 騈숏家들, 즉 初唐의 王勃로부터 晩害의 李商隱까지와 유종원등 古文家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송대위 소식, 왕안석,황정견, 육우 및 명대위 문장가 宋濂, 李贄와 청대의 문학가錢讖益, 孼鞫自珍, 沈曾未度등의 문장 등이 모두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ㅅ섄,置煦1 있어서 육조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지괴 소설이 출현하여 당대의 전기 소설, 송대의화본소설, 원뼝 이후의 정회소설로 발전하였다 지괴 소설의 출현과 비슷한 시기에 불경이 대량으로 중국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부터 소설의 제재나 체재 등에 있어서 불경의 영향을 받지 않음이 없었다 예를 들면 晉力k 荀氏가 지은<靈鬼志>로부터 <對神v寅義>, <西游記>, <翠靄"夢>, <聊齋志影등이 모두 불교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체재 상에 있어서는 송대위 화본과 <水4r旿傳>, <西遊記>, <舍機格> 등이 불교의  운산문 결합체의 통속적인 문체의 영향을 받았다 戱曲에 있어서는 운산 문 결합의 형식적인 면 이외에 다량의 f津敎h爻事가회곡작품에 유입되었다 예를 들면 金의 <唐三彰, 疋의 잡극<西遊記粧卵, 明의 催劇과 博奇 <對馨坐比>, <觀世쵯i釜乎了香山記>, 凌K국坍윱魚,籃記), <呂오垂救母勸卷戱文) 등이 바로 이 러한작품이다

 또한 z혀관적 환경의 구속을 초월하여 청정한 정신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중시하는 불교의 사유 방식이 바로 문학작품의 심미적인 가치 및 사람들의 심미 인식과 상통하는 점이 있어,고대 문학이론비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학설로는 '女어'曆'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묘오설은 宋의 嚴羽에 의해 완성되지만, 그 이전에 佛家 禪의 사유 방식을 빌려서 자기의 시론을 전개한 이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唐의 詩僧 皎然의 <詩式>, 司公團의 <二寸쉑詩品계나, 송대위 葉夔行, 吳可, 呂本中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오가는 <學證奇詩>에서 ''시를 배우는 것이 마치 선을 배우는 것과같다'고 주장하였고 여본중은 ''글을 짓는 데는 반드시 v척달아들어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엄우는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여 <滄浪區寺話>에서 ''禪道는 오직 묘모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淸의 王叔陷의 ''承申굻a訖貊''과 袁枚의 ''性靈i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외에도<文,二,呵出龍)이라는 불후의 비평시를 남긴 凱0猷도 원래 沙門의僧侶였다 현재 그의 저서 속에서 어떠한 불교의 사상을 거의 찾아내려가 어렵지만, 그러나 그가 저술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의 우주관과 문학관에 불교의 사유 방식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로 보아 불교의 영향이 중국문학의 모든 장르에 미치지않은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 시가와 문학비평의 발전과 소설과 회곡등 통속 문화의 발전 등에 불교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불교 경전의 문학성 이외에 불교의 유입이 단순히 하나의 신앙이라는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관념의 변화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사상과 사유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변화는 바로 지식 계층의 문인들에게 이어져 문인들의 창작 활동에 있어서 주제나 제재, 예술 표현상이나 혹은 문학이론에 새로운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문학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불교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불교와 중국 문학과의 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면 바로 중국 문학을 올바로 평가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수행의 길
염불수행과 기도/정성본 스님

아미타불은 각자의 근원적인 마음에 있는 것이다 아니 본래 청정한 그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인 것이다 극락정토도 각자의 마음자리(본래 고향)에 있는 것이다, 극락정토에 왕생한다고 함은 결국 각자의 본래 심으로 되돌아간 그 자리를 말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아미타불을 염불 하는 자신의 마음의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잊지 않고 자각하며, 일체의 번뇌와 망상이 없어진 무념처(無,눙處)에 도달하면, 자신은 범부의 몸 그대로 자기 법신 불을 구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살업이 청정한 자기 법신 불에서 眼耳轟舌身意 여섯 창문에서는 저절로 자금 색의 법신 불 광명이 발하게된다는 게 송이다

 말하자면 우리들의 uE耳휴舌身灑 六t艮이 각기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이 끊어져 없어져 버릴 때 청정하게된 것을 六象R7靑淨이라고 한다, 육군이 청정하게 될 때 금색의 광명이 발하게 되는 것을 나옹화상은 염불의 수행의 실천을 통해서 구현하도록 게송으로 요약해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일체의 사랑분별이 없어진 無我의 염불은 삼업청장의 수행이 되며 결국 자신이 범부의 몸 그대로 청정한 자기 법신 불을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무아미타불」이라는 똑같은 橓名염불로끊임없이 반복하는 염불의 실천 수행은 인간 각자가 지닌 재능이나 능력, 근기의 차이를 소멸하게 된다.인간의 재능이나 능력, 근기는 사실 세속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시량 분별심 차별 심으로 구분한 것인데, 일체중생이 구족하고 있는 청정한 불성(본래심)으로 닦는 염불 수행이기 때문에 그러한 구분과 차별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훌륭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늙은이 구분 할 것 없이 누구나 합장하여 청정한 본래 심으로 자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통해서 각자의 본래심을 자각할 때 자각적인 법신 불을 구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삼업청장의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법신 불을 구현함은 자신과 일체 만법과 하나가 되는 萬法-如의 자신을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시방 삼세에 가득한 제 불 법신 불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제 불 보살의 기피와 감응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제 불 법신 불과 하나가 전 경지에서 이루어 지는것이다,

瓘迅無量壽宅乳에도 어불 여라는 바로 법계이며, 일체 중생의 毛,想 가운데 든다」라고 하며, 『중도가쇠에도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이래와 합치도다(諸佛法身人我'陸, 手(1仝還共如來合)」이라고 설하고 있는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또 『華殺弟乳에 노사나품에 「부처님의 법신은 법계에 충만하여 온갖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나신다, 인연에 따라 나타나서 응하지 않는 곳이 없지만, 항상 이 깨달음의 자리를 여의지 않는다」하고 있다우주 법계에 가득한 제 불 법신 불과의 만남과 나와 하나가 되고 감응을 이루는 것은 자신의 법신 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법신 불과 법신 불과의 상응과 감응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여섯 글자인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는 단순한  一行三味의 자각적인 염불 수행을 통해서 자신을 그대로 일체 사양분별과 번뇌망상, 근심걱정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마디의 염불은苦에서 해탈하는 구체적인 실천일 것이며, 지금 여기서 곧바로 해탈열반의 점지를 구현하고 자신이 평안하고 즐겁게 안락한 극락정토에서 볼 수 있는 전환을만든다. 소위 말하는 왕생극락이나 범부가 그대로 성불을 이루는 염불 수행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신체적으로 약하고 병든 사람이나 노약자라도 언제 어디서나 간단히 「나무아미타불」 혹은 「나무관세음보살」이라고 입으로 소리 내어 칭명 염불 할 수 있는 것이다 의지나 근기가 약한 사람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수행이기에 易行門이라고 한다이처럼 삼업청장의 염불수행의 실천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고 단순하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다. 자세를 바르게 하여 단정히 앉아 합장하여옴을 청정하게 하고 「나무아미타불」 혹은 「관세음보살」이라고 성호를 외우면서 자신이 입으로 외우는 그 성호의 소리를 본래심의 자각하여 일념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음성은 너무 크게도 하지 말고, 너무 적게도 하지 말며, 자신의 기운에 맞추어 자신의 귀에 또렷하게 들리도록 하면 된다. 정신은 오로지 자신이 외우는 지금의 염불소리를 또렷이 듣고 자기 법신 불의소리에 집중하여 염불구절에 따라 일념이 되도록 하며, 음성의 자각과 一念이 되도록 하여 계속하면 된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외우는 자무아미타불」이라는 지금의 염불소리를 또렷하게 듣는다면 잡다한 생각이나 일체의 망상은 저절로 모두 없어지게 되므로 애써서 망상을 없애려고 하지 말라

 아미타불의 모습이나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극락정토의 장엄된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모두망상이며, 염불 중에 기쁜 마음이나 슬픈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모두 마구니에 끄달리는 망상이니 그러한 감상에 떨어지지 않도록 일념으로 염불 해야 한다.염주를 세고 돌리면서 염불을 하거나 목탁에 맞추어 염불을 할지라도 염주나 목탁소리에 끄달리지 말고 지금의 염불에 일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염불은 반드시 법당이나 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장소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길을 걸어 가거나 전차를 타고갈 때나 식사할 때나, 다른 일에 집중하지 않을 때는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을 번뇌 망상과 迷妄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염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 생활 가운데 남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남의 괴롭힘을 당했을 때라도 그 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자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염불 하여 자신의 본래 부처를 친견하고 스스로 자신을 일체의 분노심과 망상 분별을 떨쳐버리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평안하게 하여 너그럽고 자비스럽고 관대하게 하여야한다.

『관무량수경』에도 「온화한 얼굴과 상냥한 말씨라는 실천덕목을 설하고 있는 것처럼, 일체의 분노와 분별 망상을 여의크L 염불수행으로 본래 심의자각에서 자신이 이러한 자신의 인격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한번 외우는 자무아미타불」의 염불이 자기 법신 불을 구현하는 수행이 되며, 샅독심을 떨쳐 버리고 자신을 평안하고 여유있는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염불 기도는 탕진치 순꼼독으로 뭉쳐진 자신의 묵은 죄업의 짐을 벗어버리는 수행인 것이다 신구의 삼업청장의 염불 수행은 삼독의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을 벗어버리고 깨끗하고 가벼운 자신의 청정한 법신 불을 구현하도록 하는 수행인 것이다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염불수행의 기도는 자기 자신의 평안히 저절로 이루어 지도록 하는 수행인 것이며, 자신을 텅 비워버린 無所有가 되고 無斥不求가 되는 청정한 삶을 만드는 것이다 번뇌나 고정관념, 편견,단견, 차별 심 등 일체 모든 괴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 자신의 염불과 기도로 身山,튿, 三箕을 청정히 하여 자신을 평안하게 하그私 반야의 지혜로 창조적이고 진실한 삶을 만들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염불수행의 공덕은 한량없지만, 예부터 염불수행의 열 가지 공덕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고 있다

i 졸음을 없애주는 공덕, 2 마구니까 놀라서 도망가는 공덕, 3. 염불소리가 사방에 두루 퍼지는 공덕, 4,지옥 아귀 축생의 三念道 고통을 쉬는 공덕, 5 다른 음성의 장애를 받지 않는 공덕, 6 염불 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공덕, 7 용맹스러운 정진을 성취하는공덕, 8 제 불이 기뻐하시는 공덕, 9 또렷하게 현존하는 공덕, 10.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공덕

염불 수행의 대표적인 공덕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공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염불 하는 손에는 염주, 얼굴은 자비스럽고 온화한 웃음,마음의 평안에서 일체의 두려움과 공포, 病苦나 苦p촙를 벗어나 자신의 무궁무진한 행복한 삶을 이룰 수가 있는 공덕이 있다

 

 

불심의 창
불교는 과학적이다/김주필

불망어(不妄語)의 계(戒)를 어긴 것도 큰 죄가 되기에 송구스럽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봅니다. 나는 전공이 동물분류학 및 생태학 그리고 진화학인 데 전공 때문瓦 만은 아니지만 불교 측면에서의 ''生' 命의 起源''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11 특정 종교를 비방하기 위함은 아1壘, 나지만 기독교에서는 아담(Adam)i11 은 천지 창조 때 하나님이 처음으로 만든 남자로 인간의 시조로 삼아 다시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내어 이브(Eve)를 만들어 냈다는 식의 창조설은 학문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교에서는 몇 가지 과학적이고도 흥미 있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큰절의 대웅전에 가 보면 현판이 광명전(光, 明殿), 대광전(大光殿) 이라고 되어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러한 현판이 붙어 있는 대웅전에는 반드시 부처님 뒤의 탱화에 知德의 빛으로 온 세상을 두루 비춘다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부처님이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꼭 잡고 合掌하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了羚)은 빛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부처님일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큰 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의 명칭이 대개 비로봉(毘盧峰)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금강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우리는 비로봉이라 합니다. 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이기 때문에 역시 햇빛을 제일 먼저 받기 때문에 붙여진이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빛(光, 毘盧)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곧 생명체의 본질이 빛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뜻으로사료됩 니다. 1936년 러시아의 Oparin의 그의 유명한 저서인 ''The 0rigin of Life"'(생명의 기원)에서지구의 역사는 약 45억년 정도로 태초의 지구에는 불덩어리였는데 오랜 세월동안 냉각되면서 기체가액 체로 이것이 다시 고체로 변해오면서 원시 지구에는 광물질인 철분(Fe)이 제일 많이 포함되었습니 에너지 즉 빛(자외선, 방사선, 방전, 열 등)을 받아 맨 처음 탄소(c)와 칼슘(ca)이 결합하여 탄화칼슘(cac2)이 되었고 그 후 탄소(c)와수소(H)가 또 결합하여 탄화수소(Hydr0carb0ns)가 되 있고 다시 수증기와 암모니아(NH4) 등이 결합하여 유기화합물인 콜로이드(Cdl0id)가 된 후 코아세르베이트(c6aceryate)라고 하는 현대의 생명의 씨가 이루어져 진화되어 결국 현재와 같은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콜로이드에는 친수성(親水'陸)콜로이드와 비친 수성 (非親水'1塗)콜로이드로 구분되지만 태초의 유기 화합물의 콜로이드와 비친 수성 콜로이드였기 때문에 코아세르베이트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일어나고 있음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탄화 수소를 -50'c 이상의 저온처리하면 액화 현상으로 변한다는 사실, 그리고 메탄(CH4) 가스가 메 틸알콜(CH30H)로, 에 탄(C2H6)가스가 에틸알콜(C2H50H)로 변했다는 사실, 특히 담배연기는 기체라기보다는 고체인 친수성 콜로이드로 입안에서 침과 결합하면 계란모양이나 도너츠 모양의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것 등입니다.그렇다면 불교에서의 ''생명의 기원''도 부처님은 빛으로 보고 비로자나불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사료됩니다. 다만 빛 이후에 형성과정이 불확실한 것은 아직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헤아리지 못한 내 지식의 부족함 탓일 것입니다.

''부처''라 함은 ''깨닫다''인데 아직까지도 무엇을 깨달았는지도 모르는 초심자이다 보니 부끄럽기 한량없습니 다.

철학적으로까지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저 모든 것이 ''空''으로 귀결되는 것이 부처님의 사상인가 싶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례원 원장, 정승연/편집부

아마 차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많이 들있음직한 단어가 ''다례원''이 아닐까 싶다. 그 다례원을 이끌고 있는 불자, 바로 정승연 불자가 이번 만남의 주인공이다.  자연인 정승연, 다례원 원장 정승연, 불자 정승연...그 중에서 다례원 원장 정승연을 만나보려고 한다.              다소곳하게 빗어넘긴 머릿결 단아한기에 곱게 입은 우리옷, 자색과 검은색이  잘 어울리는 우리 옷이 사람을 그윽하고 깊이 있게 했다.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다례원 원장이라서인지 양장 보다는 우리 옷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까. 녹차 한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학창시절에는 도예를 공부했던, 흙의 ,영혼을 빚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도자기를 공부했던 인연이 차와의 만남을 이어 주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람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기는 어렵겠지만 차와의 만남은 생의 최고의 만남이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게 해준 만남이라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 그러니까 1974년 ' 지인으로부터 한국차생활연구소 일을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 차와의 첫 만남이라고 했다. 그 지인의 말이 '일본의 다도문화가 세계 다려를 선도하고 있고, 일본 여성의 예가 다도에서 나온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고, 70년대 중반 우리 나라는 생활문화 공황기를 맞아 전통다례를 되살려 우리 것을 지켜가야 겠다는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마음에 한치의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이 한국차생활연구소 일을 응낙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면 왜 익혀오던 일에 대한 미련이 없을까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밀어닥친 도예인으로서 시간과 열정에 대한 회의를 감당키가 어려웠고, 또 설익은 마음으로 보냈던 세월을 무색하지 않게 차를 통해서 마음을 키우고 익혀서 다시 도자기로 돌아가리라 마음을 굳혔던 시간이 지금까지 흘러오리라고는 자기도 몰랐다고 했다.

일본문화 속에 뿌리내린 우리 차문화를 되찾겠다는 생각은 점점더 확고해 졌고, 그 일념 하나로 다인을 찾아 다니는데 시간과 경비를 아끼지 않았고, 다인이 있는 곳이면 불원천리하고 달려가는 열의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정열이 솟았는지 본인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다인을 찾아 다니다가 만난 모임이 '제헌동지회' 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가면 효당 최범술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는 다려나 다도에 태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주워 들은 것이 고작이었고, 그래도 제일 교본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 효당 최범술 스님이 차에 대해서 독서신문에 연재 했던 글이었다고 했다. 물론 문헌상으로는 초의 스님의 동다송 같은 서적이 있었겠지만 보편적이지 못했고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라 멀리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는 깊어있고 체계적인 다론이라는 말보다는 그야말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다담이었고, 그것만 해도 선도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차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서 다인을 만나면서 차에 관한 공부로 많은 영향을 받았던 분이 네 분이 계신다고 했다. 당시 다소사에 계시던 효당 최범술스님, 청사 안 광석 선생, 코리아 헤럴드문화부장을 지내던 천 승복 선생, 해남 백 화사에 계시던 응송스님 등이었는데 한 분한 분 마다 나름대로 이론이 달랐지만 그 중에서 한국적인 다도의 영향이 컷던분이 음송스님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가 메말라 있던 시절이라서 였던지차생활문화 연구회에서 하는 행사장 마다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았고, 신문이나 TV 언론매체에서도 다투어서 보도를 담당했고, 그러다 보니 다도사학도 다도예법도 정리가 되기 전에 상업주의, 명리 주의가 그 틈을 노렸는데 그런 풍조는 한때 다도 선풍을 일으겼지만, 그때부터 본래의 한국차생활문화 연구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다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다고했다. 그런 중에 점점 이것이 아니라는 회의가 생기기 시작해서 더 차와 마음이 멀어지기 전에 이 모임 하고 결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인으로서결별이 아니라 어떤 단체와의 결별이었고, 그렇게 일차적인 결별을 하고는 조용히 다인으로서 살아야 갰다는 생각을 무색게 하는 인연이 또 맺어졌다고 했다.1978년 10월에 몇몇 어른들의 권유로든 든 한 재벌가가 재정후원을 맡기로 하고 그 이듬해 1979년 1월 20일에 다인 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다인 회 발족 이후에개운사, 진관사 등지에서 다인 회를 열었고, 그렇때 마다 장안에 그렇다 하는 식자층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그런 일 중에 기억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이 방자 여사가 낙선 제에서 생활하실 때 한국전통다도를 시연하는 인연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남아 있다고했다.

i979년부터 1984년 까지는 해남 대흥사 일지임 복원 홍보이사로 있으면서 전시를 열어서 복원 불사에 필요한 자금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80년 I0월에 정신문화연구원의 청탁을 받아 ''한국다례예법''을 정리해서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고, 8I년 1월에는 대만 문화대학이 주최하는 한중다도 교류에 참가를 해서 ''한국다례''에 대한 것을 발표 하기도 했고,또 85년도부터 숭의여전에 다도 강의를 개설해서 최초로 대학에서 다도가 강의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고 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분위기에 휩싸여 떠다니는 기분에 있었던 정원장은 어떻게 하면 조용히 이 열기 속에서 물러나 진정한 다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자기를 맑게 하고 거듭나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는 생활철학이지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 언저리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고 불교와의 첫 인연을 이야기 했다.압구정동에 i00여평 규모로 다 화랑을 만들어 이 시대의 다도문화 상을 정립하리라고 생각했던 다짐은 채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무너지고, 지칠 대로 지쳐있던 마음은 대인기피증세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 세월 속에는 한가지 두 가지의 어려움이 아니지 않았겠는가... 앞서가는 사람에 대한질시를 한몸에 받아야 했을 것이고, 재벌도 아닌 사람이 계속 투자만 한다는 것에 대한 한계가 더 큰 압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경주에서 요를 가지고 도여인으로 살아가는 윤광조 씨의 소개로 지리산 정각사에 주석하시던 활성 스님을 만나 불교와의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고, 처음 절하는 법을 배워서 600배를 하는데 6시간 이상이 걸리고, 무릎이 다 헐어서 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다인임을 자부하던 정승연이 스님 앞에서 차를 내는데 처음으로 떨어봤다며 그때의 초심자로서의 어설픔을 털어 놓았다. 기도를 통해서 철벽같이 느꼈던 불교가 석벽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결국 그런 상은 자신이 만든 무지의 집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신심은 깊어졌고, 인천 용화사에 주석하시던 송담스님법문을 들으면서 두꺼운 이상을 허물 수 있었다고 했다. 90년도에 소설가인 남지심 씨와의 첫만남을 가졌는데 두 사람이 서원의 방향이 같음을 공감하고 진정한 보살 행이 뭔가를 생각 의논했고 바른 승보를 공경하는 일을 함께 실천해 나가자고 서원을 세우는 순간 다심에서 불심으로 정승연이 거돕남을 느꼈다고 했다.

다화랑을 정리를 하고 다례원으로 개명을 하고 규모를 축소해서 불심을 바탕으로 한 다례원의 서원을 세우고 다래뿐 아니라 불교전통의식을 정리하고 50여명되는 회원들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동국대학교 정각원에서 회원 간의 모임을 가지고 불자로서의 신심을 다지고 있다. 다례원의 서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회광반조하여 불도를 이룻어간다'' 이고, 행원덕목은 ''차로써 예를 세우고 심신수련으로 지덕을 겸비하며, 보현십대행원으로보살도를 실천하며 맑고 밝고 아름다운불국정토를 이루어간다'' 는 것을 실천덕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지금 다례원에서는 도량결계의식, 전통사경법회의식, 육법공양의식, 불교화혼의식, 성년의식(관정의식), 전통다례의식, 생활다례의식을연구 재현해서 교육하고 있고, 지금껏 여러 사찰에서 불사를 장엄히는 일이 인연이 되어 벌써 여러 번 큰 행사를 치르어낸 이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보살행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만이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로 대담을 마무리 하고 나서는 정승연 불자의 단아한 뒤 모습에서 느꺽지는 신심의 여운과 깊이는 보살 행을 꿈꾸는 불자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말해야겠다

 

 

 

일주문
비구 性本에게 주는 경책/정성본 스님

성분 수좌!

그대는 다행스럽게도 퓜斯去을 만나 청정한 승가의 도량에 출가하여, 부처님과 여러 조사 임들이 전해주신 전법의 해명을 계승할 역사적인 사명을 부축받은 수행인의 한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네,또한 今生에 더없이 훌긍한 불법의 인연을 만나 공부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신 많은 스승과 선후배와 여러 道怜, 그리고 여러 가지 수행환경과 여건을 마련해 주고 베풀어 주신 여러 佛.菩薩님들께 합장하여 시심으로 감사 드려야 하네. 이러한 감사의 마음 잊어서는 안돼요.

서산대사가 '출가하여 중이 되는 일이 어찌작은 일이랴1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하게 옷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慧命을 이으려는 것이며, 설계를 뛰어넘어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출가정신을 언제나 잊지 말고 잘 간직하면서 살도록 하게나.

그대가 일찍이 출가할 때의 그 정신을 잃지말고 구도자의 삶을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한 번 부탁하는 말인데, 대학교수기되어 후학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교만하지 말게, 먹물 옷을 입은 자네에게도 '교수님'보다는 '스님' 이 더 어울리는 호칭이야.

작년에 건네 준 자네 명함을 보니 '문학박사 정 성본'이라고 거창하게 새겨져 있더군. 일체를 다 主월해야 하는 출가인 이 무슨 박사야,다 떨쳐버리게1 아니, 남이 새겨준 명함이라고?그래도 없애 버리게. 쓸데없는 휴지조각 아닌가? 받고도 속으로 경멸하고 욕할걸세.

세속적인 욕망과 명예, 가치관을 벗어난 출가인 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名相에 끄달려수행자의 의의와 재물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게. 자네는 역시 먹물 옷이 잘 어울려.출가인은 직위나 명예, 부귀나 권위, 재물을 귀하게 여겨서는 안되네. 이 모두 헛된 名利 名相일 뿐이고, 결국 자신을 얽어 매고 인격을 죽이는 올가미가 되거든. 특히 출 가인은 신뢰왜인격을 상실하면 죽은 목숨이야r

중생세계에 살다 보면 부득이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해야 할 일도 많겠지만, 특히 직책을 통해서 남에게 교만이 비치는 일이 없도록 하게. 사람이 살다 보면 나쁜 일, 불명예 서러운 일, 참기 어려운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하고, 逆境의 인연(逆沫彖)도 있고, 혹은 혜택받은 순연(li日帛彖)도 만나기 마련이네

 그래서 경전에서도 '일체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벌하는 것. 그래서 일체의 모든 것은 無常하고 무상하기에 괴로운 것이며,또한 모든 존재는 본래 실제가 없는 空한 것(一切皆空)'이라고 누누이 설하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의 법문을 깊이 명심하여 깨닫고, 수행자는 일제의 吉凶이나 某辱 .臨彖이나 逆彖등 주위의 환경이나 경계에 끄달리지 말고, 이 모두를 나의 수행생활을 도와주는 t量食이 되고材料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수용하도록하게나.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쁘고 불행한 일이 있을지라도, 녕예나 지위를 얻거나 이를 잃어버리게 되었더라도, 무상하게 변화되는 興亡盡衰와외부의 환경이나 분위기에 흔들림이 없이 차분히 근원적인 본래심의 지혜로 진리를 관찰하여 불법정신으로 살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다듬도록 하게.

참된 수행자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누구나 겪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나 나쁜 일, 혹은 병이 들거나 어려운 역경이 계속되는 가운데서 더욱더 금강과 같은 부동의 정신으로 보리 심을 일이키 는 거야!

반대로 게으름을 피우고 수행자로서의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순간적으로 닥쳐오는 번뇌나 조그마한 逆力竟과 시련이 도리어 커다란 장애가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홀바른 수행자의 길을 걷지도 못하고 타락해 버리고 말거든. 수행자는 역경의 인연을 만날수록 더욱 더 강인한 의지로 분발하고 용맹심을 일으켜 참선하고 정진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네. 명심하게1

항상 참선수행의 一路에서 정진하는 참선수행자는 반드시 불법의 바른 정신을 체득하여 각자가 성스러운 반야의 지혜를 깨닫고 부처의不念'陵을 함양하여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힘써야하네

 그대는 출가 수행자가 되었으니, 세속적인 가치관에 끄달리는 잡다한 인연을 모두 떨쳐버리고 오로지 신학연구와 참선수행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네. 그대가 선 불교를 배우고 선사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좀 얻어,그 일에 보람과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네 그대가 정진하는 한 가지 외길에서 청순함을 잃어버리지 않고, 담박하고 靴0然한 삶을 묵묵히 살아가도록 하게. 그러기 위해서는 잡다한 인연을 모두 떨쳐버리고 오로지 선 불교 연구하고 참선하는 이 한 가지 일( --擧)에 身숩하여 安身立命의 삶을 전개하도록 하게나!마음을 純一하게 맑히고 참선과 선 불교 연구에 身念하며 최선을 다해 주게! 남이 판단하는 일의 勝敗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완전히 지금 여기의 자기가 하는 일에 완전히沒入해야 한다는 사실이야. 最善을 다한 사람은 결코 敗北하는 일이 있을 수 없어 최선을 다했기에 그는 승리한 것이야! 최선을 다한 자기의 생활 그 자체는 패배주의나 열등감이 개입할 여지가 없거든. 오직 원력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그대의 온 정열을 다 바치는 그 일 뿐이야!

無,已,으로 運身을 다 했을 때 八生의 승패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인간은 勝敗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이 아니라, 純一旅雜한 본래 심으로 移事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기의 인생을 값지게 만드는 것이야!

성본수자! 한 번 생각해 보게나,

출가 수행인 이 수행을 하지 않고, 학자가 학문을 연구하지 않는 것은 몸은 살아 있지만, 생명력을 잃은 죽은 목숨과 다름 없지 어차피 죽을 바에는 자신의 원력을 세운 수행과 학문을 연구를 하다가 죽는 것이 훨씬 영광스럽지 않겠는가?

언제나 永遠의 지금에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살도록 하게나. 그대가 하는 일에 후회하지 말고, 또한 자신의 인생과 삶,그리고 학문연구와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아 가능한 한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잡다한 인간관계를 전부 끊어버려야 할 걸세. 세속적인 명예나 富貴는 물론, 慶弔事 등의 系手事나 회의 참석도 그만 두도록 하게. 자네 말고도 그 일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있으니까. 자네는 자네의 할 일이나 하세.다른 사람들이 '저 놈, 건방진 놈! 교만스러운 놈!'이라고 욕할지 모르나 그런 일에 신경쓸 시간적인 여유가 어디 있나' 모두 금방 죽을 문턱에 서성거릴텐데. 죽을 때까지 자기 할 일을 목숨 바쳐 최선을 하다가 죽는 것이 수행자의 길이 아닌가?

인간은 모두 자신의 인생과 삶을 자신이 만들어 살아가는 구도자가 아닌가? 그대의 구 도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 길을 가며셔 쓸데없이 주위 사람 눈치보고, 신경쓰고 할 것 없네. 끊어야 할 것은 끊고, 해야 할 일은 하면서 출가자의 정신을 잃지 말고 정진하는 삶을 살게나!그대는 일찍이 선불교외 역사와 실천정신을 연구한다고 원력을 세우고, 일본 그만 자와 대학에 유학까지 하면서 재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머'고 하면서 나름 대로의 강한 사명감을 말하곤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선불교연구를 체계화 하고, 이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죽어야 겠다' 고 약속하지 않았는가?그대의 원력과 사명감을 이루기 위해서는 독한 마음을 먹고, 다른 생각 말고, 그 일을 하나라도 제대로 추진해 주길 바라 배 출가 수행자로서 그대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네. 그대가 꼭 해야 할 일들을 구 도적 학문연구의 수행생활로 하면서 선불兄 선학, 선문화, 신 불교 실천철학 등을 체계 있게 연구하고 후학들에게도 방향제시 해 주게나

선학연구와 참선수행하는 이 일이야말로 불교인으로서 나의 원력이며 수행이며 인생이며,나의 삶 자체이며, 나의 모든 것이라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성본수좌1 선 불교를 연구하고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결국 아직 보이지않고 밝혀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진실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탐구하고 찾아내어, 이 진실을 他人, 일체 중생들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아닌가?

말하자면, 선불교외 정신과 사상, 수행과 실천방법 등을 연구하고 밝혀서 일체 중생들에게제시하고, 각자 지혜와 인격형성의 지침이 되도록 하여 진실한 자각적인 삶을 이루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런데 그대가 지금까지 선 불교 연구를 통해서 이 분야에 과연 어느 정도고 일을 감당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착각하지 말지 다시 한번 그대 자신을 철저히 비판하고 반성하면서,보다 많은 선불교외 제반 문제를 연구하고, 이 분야의 새로운 학문적인 토대와 미래 인류를 위해 새로운 방향제시를 하도록 더욱 분발해야할 걸세.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더욱 더 용맹심을 일으켜 원력과 서원을 새롭게 하고 사명감을 철저히 하여 선 불교 연구와 수행에 힘쓰도록 해야 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대가 지금까지 부처님의 도량에서 무사히 신학연구의 一事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체의 모든 인연과 시방 삼세의 矛한 易瞳, 조사 임들께 감사드리며, 그분들께 또한 그대 자신에게 출가 수행자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도록 다짐해야 하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대는 전 생명을 걸고 사바세계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수행자로서 깨달음의 영원한 삶을 사는 출가 사문의 모습을 상실하지 말고 진정한 수행자로서 정진해 주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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