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ck |

 

월간 정각도량 / 10월호 / 통권 42호 / 불기 2542(1998)년 10월 1일 발행

 

 

이달의 법문

생활속의 신행/성타 큰스님

 

정각도량

출세하는 길/이법산스님

 

특집1

신라의 불교문학/정병국

 

특집2

新羅文化와 慶州文化 EXPO/김복순

 

경전의 세계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도업 스님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목회 회장 윤순현 보살님/편집부

 

불심의 창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찾아서/백경선

 

가람의 진수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월정사/유문용

 

신행상담

"유루와 무루"/장계환 스님

 

수행의 길

합장하여 각자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우자/정성본 스님

 

불교문학

구운몽/이만

 

일주문

칭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이법산 스님


이달의 법문
생활 속의 신행/성타 큰스님

저는 포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법회보다는 포교연구와 전략 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불교는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많은 굴곡을 겪어 왔습니다. 일제 시대 이후에는 불교가 일본화되어 본래적인 청정한 가풍이 흐려지기도 했고, 1950년도에 와서는 정화라는 불사가 행해져 부정적인 것이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화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승려들이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1994년 종단 개혁 이후, 과연 절집에서만 안주해서 되겠느냐, 사회적인 역할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나름대로 지역에 따라서 사회적인 포교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복지계통 하면 기독교나 가톨릭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개혁 이후에 종단차원에서 탁아소 등 200여 군데를 하고 있습니다만 복지사업과 유치원교육도 활발히 하고 있고, 환경문제라든지 인권문제라든지 모든 각계각층의 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종단이 안정되어 있고, 또 종단이 본래 길을 가고 있고, 승려가 그러한 역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계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향상되고 회복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지상화 함으로써 불교신자의 절이 향상되었습니다. 기복직인 불교에서 지성불교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불교 교양대학이 오늘날 불교를 지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교육을 통해서 각계각층에서 포교사들이 제 몫의 역할을 많이 합니다. 승려들에 의한 포교는 한계가 있는데, 그분들이 보완해 주고 보충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교가 대중화. 활성화하는 데 대단히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포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일반포교를, 학생포교는 학생포교, 군경포교는 군경포교, 이처럼 전문화되어서 포교사들이 대단히 큰 원력과 실천을 통해서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복합적인 배경이 되어서 불교가 크게 향상되고 발전되었습니다.

여기에 종립학교로서의 동국대학교의 역할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신앙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우선 신봉하고, 그것을 신념으로 이념화하는 분으로부터 단순하게 부처님 말씀을 믿고 신념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 그런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불교의 신앙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어떻다고 단정

지을 수가 없습니다.

단계가 천차만별입니다. 단순하게 부처님 법이 좋아서 믿고, 또 그 진리를 통해六) 마음이 나약할 때는 불경을 독송한다든지 절에 와서 참배를 한다든지 해서 불교적으로 위안을 얻는 분이 있고, 그런가 하면 기복적인면에서 불교를 믿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단계가

 있는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부처님처럼 생활해서 부처님과 같이 되이겠다는 높은 차원의 서원을 세워서 불교를 신앙한 분도 있습니다. 어떻든 간에 불교신앙을 한마디로 말할 때 왜? 하자 하느냐, 이렇게 말한다고 하면 불교신앙은 어떤 신앙이 됐는지 간에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행복해지자고 하는 겁니다.

행복, 불교를 통해서 행복을 조달하자, 행복이라는 그 진리의 헙녀에 도달하자는 것이 우리에게 목표가 되지 않는다면 불교신앙은 의미도 없고, 우리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불교를 믿든지간에 불교를 통해서 행복해 진다고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신앙은 기복적이고, 일시적이고, 마음에서 위안을 얻는 단순한 신앙과 좀더 전문화된 실천을 통해서 부처님이 되겠다는 신앙으로 구분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신앙은 단순한 신앙이 됐든, 좀더 높은 신앙이 됐든 간에 그 목표는 한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면 우리가 불교를 믿는 자세가 달라져야 되지 않겠나, 올바르게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신앙에 올바른 것을 말할 때, 부처님의 법은 믿음을 통해서 현실을 보는 감각이 달라지고 올바르게 하는 데 초점을 맞혀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적인 가르침은 현실을 떠난 진리의 세계, 이상세계라는 것은 없습니다. 대승불교에 가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이 둘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대승불교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상에만 너무 치우쳐서 현실을 등한시하는 경

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현실에 너무 집착해서 이상을 등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불교의 올바른 신앙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현실을 떠난 목적이 없고 목적을 떠난 현실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목적과 현실이 동시적으로 중요하다고 합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이것은 불교적인 관점이 아니고 동시에 불교적인 삶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현실

에서 우리가 충실하고 열심히 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수단이고,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적인 관점입니다. 그렇게 본다고 하면 우리가 불교라는 것이 현실을 떠나서 이상 추구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어떻게 보고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불교 신앙의 기초가 되야 되고 바탕이 되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잘 헤쳐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교적인 신앙을 올바르게 바탕으로 잡지 않으면 그 근원적인 목적을 외면하게 되고, 따라서 두 가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런 생활을 하게 됩니다. 불교신앙은 바로 이러한 우리 최고의 행복과 현실을 조화 있게 살아가는 것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항상 행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습니다. 동시에 항상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 신앙을 올바르게 가져서 좋은 점이 있다고 해서 좋은 점에만 너무 집착하고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서 맥을 멈춰서 절망하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불교 신앙을 올바르게 가졌을 때 좋은 점이 무엇이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거기에 절망하지 않는 평화로움, 그것이 불교를 신앙으로 올바르게 가졌을 때 나타난다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일이 밝음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이 어둠을 외면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서 그것을 능히 소화시킴으로 해서 더 큰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인 신앙의 근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신념만 하면 되지 실천을 해야 되느냐, 그것은 바로 실천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가 말하는 참된 행복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실천을 해야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신앙을 토대로 해서 우리 스스로기 행복해지고, 또 현실에서 조화 있게 잘 살아가고자 한다면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고 관념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어떤 식으로든지 내 근거에 맞는 방법을 도입해서 그것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운이라는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도무문이나 천차유도라, 대도라는 것은 행복이라는 목적, 대도는 문이 없어 그렇지만 가는 길은 전차유도라 천차만별의 길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수행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존경하는 스님으로부터 실천의 방법을 전수 받을 수도 있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분들께서도 불교를 관념적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나름대로 방법을 선택해서 염불 하시는 분은 염불해도 좋고 경을 봐도 좋고 좌선을 해도 좋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서원을 세워서 실천을 해야만 이 우리가 바라는 신앙이 바탕이 되어서 삶을 윤택하게 하고, 현실에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극복해서 우리 삶이 그대로 불국토가 될 수 있는 그런 세계까지 우리는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불교는 바로 그러한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겠지만, 불교에서는 그러한 실천을 세 가지로 보통 이야기합니다.

신구의(身口), 삼업이라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앞에 예배하는 것, 그렇게 몸소 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입으로 염불 하는 것은 입으로 하는 실천행위. 그러하면 마음으로 하는 것은 부처님을 마음으로 생각한다든지 좌선을 하는 것, 이런 것이 마음으로 하는 종교적 실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궁극에 가서는 어떠한 실천이든지 그것은 마찬가지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제가 보다 좋은 시간이 되도록 해야했는데 그렇게 못하고 두서없는 말을 마치게 되어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인연이 있어서 만났고, 이 만남으로 말미암아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다짐할 때, 오늘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각도량
출세하는 길/이법산 스님

 

수행하는 이를 가르쳐 '도(道) 닦는 사람'이라 하고, 글을 많이 아는 이를 '도통(道i甬)한 사람' 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많이 알고자 하고, 무슨 일이든 능숙하길 바라며, 많은 이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한다.

사실 타인이 알아준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한 일이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들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보여줄, 알아줄 수 있는 '꺼리'가 있어야 한다. 자신 스스로기 남들이 알아 줄만한 가치를 갖춘다면 타인이 먼저 그를 인식하게 되지만, 현실의 많은 사람들은 타인이 먼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한다.

소화가 안 된다고 음식 탓, 위장만 탓한다면 소화가 제대로 될 수 있겠는가. 위장이 감당해낼 수 있는 양 만큼만 먹어야 위장에 아무 탈이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무턱대고 욕심만 부린다고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이 그렇다. 타인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결점을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찾는다는 것은 생선장사가 제 몸에서 비린내를 느끼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방귀를 뀐 사람은 자신의 방귀 냄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타인의 방귀는 악취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의 허물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거나 인식히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신의 허물을 모르고 타인만 비방하기에 진실의 보배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상대방의 허물만 보고 상대방만 바로 잡으려고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으며 싸우고 있다. 남이 망해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망상은 자신부터 먼저 망하겠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발상이다.

나의 성공이란 타인이 있을 때 가능하며, 나아가 타인의 지지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을 지지 할 수 있는 합당한 조건을 먼저 제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출세를 꿈꾸는 사람들은 『六祖壇經』 般若品에 있는 혜능대사의 '무상송(無常頌)' 중 몇 구절을 보자.

 

만약에 참된 도를 보고자 하면

해이 바른 것이 곧 도니,

만약에 스스로 도심 없으면

어둠 속을 헤멜 뿐 도는 못보리.

 

참되게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 사람 허물을 보지 않으니,

만약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면

자기의 허물이 도리어 더한 증거네.

若髥修道人 不晃世間뒤趙

若見他人非 自非劫是左

 

남만이 그르고 나는 옳다 하면

나의 허물 스스로 지나침이니,

다만 자기의 그른 마음 물리쳐

번뇌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미움과 사랑에도 관심이 없다면

두 다리 펴고 누워 편히 쉬리라.

他非我平非 我非自有過

但 自却非 已다丁除煩惱破

d曾愛不關,乙, 長伸兩脚臥

 

만약 다른 사람을 교화하려면

자신에게 반드시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들로 하여금 의심을 풀게 하면

즉시에 자성청정 드러나니라,

欲擬化他人 自li區有方{輿

勿令彼有疑 卽是 自性現

 

불법은 세간에 있는 것이니

세간을 떠나지 않고 깨달아라

세간을 여의고 깨달음을 찾으면

마치 토끼에게 뿔을 구하려 함과 같다.

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堤 恰如求兎角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허물만을 볼 뿐,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먼저 본다.

남의 허물만 보는 사람은 항상 쫓기는 듯이 불안해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의 허물은 고칠 줄 모르고, 남이 공연히 자신만을 탓한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불평하고 상대방을 미워하고, 나아가서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공연한 허세와 거드름을 피우게 된다.

자신의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사랑하고, 마음에 거슬린다고 미워한다면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마음 모두가 번뇌 망상일 뿐이다. 그러나 사랑과 미움이라는 양 극단에 서지 않고, 항상 마음을 여여(如如)롭게 가져 자기의 밝고 깨끗한 본래 성품을 잘 지켜 나간다면 언제 어느 때나 누구를 만나든 반갑고, 멀리 있어도 항시 보고 싶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항상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세간에는 항시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고 있다. 혹여 '사랑과 미움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면 행복하게 되지 않을까'해서 도망부터 가려는 그 생각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결코 자기 스스로의 허물인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괴로움은 면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혜능대사께서 세간을 떠난 곳에서 깨달음을 구하려는 것이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출세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자신의 허물을 찾아서 반성하자.

자신의 얼굴이 더러운 줄 모르고 남의 얼굴에 티끌 묻은 것만 탓한다면 어떤 이가 자신을 따르겠는가. 항상 자신의 마음을 닦아 타인 스스로 '나' 자신을 타인의 거울로 삼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자.

관세음보살.

 

 

 


특집1/경주 남산 석불의 미소
신라의 불교문학/정병국

 

신라가 불교를 수용하는 시기는 고구려나 백제에 훨씬 뒤지는 528년이지만 본격적인 불교 신앙 시기는 큰 간격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교가 공인되고 얼마 후부터 불교문화가 꽃피기 시작하여 성황을 이루게 되었는데, 대흥륜사(大興輪寺)가 5,h년에 완성되면서부터 황룡사 등과 같은 대소사찰이 건립되어져 건축미술이 화려하게 대두하였고 황룡사 장륙상과 같은 수많은 불상들이 조성되어 불교의 조형미술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삼국의 고전적인 불교문화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전형적인 불교문화로 진전되어졌다. 7c 중말엽 일련의 정치적 대변화 속에서 문화면에도 커다란 변혁을 몰고 왔다.

당의 문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고구려 및 백제 문화 역시 신라로 집중되면서 신라 고유의 문화와 융화되어 하나의 복합적인 새로운 불교문화로 정착되었다.

그러한 신라인의 활발하고 지극한 신앙생활의 자취를 그대로 간직한 聖地가 있다. 그 곳이 바로 경주 남산(南山)이라 할 것이다.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솟은 산을 『금오산』이라고 불리우며, 불교유적이 산재하여 옥외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산의 지세는 크게 동남 산과 서남 산으로 나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적 숫자로 보면 서남 산에 더 많은 유적들, 즉 석탑. 마애불, 석불. 절터 등이 산재해 있으며, 또한 『新羅四靈地』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모임을 갖고 나랏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으며, 신라 시조(治祖)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남산 기슭의 나정(蘿井)이란 곳이며, 불교(殆敎) 수용 이후 옛 신라인들은 부처님이 상주하는 聖스러운 靈山으로 존중하였다.

산속에 들어서면 바로 맑고 깨끗한 물과 숲, 바위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그 바위 곳곳에 새겨진 부처님의 미소가 찾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하게 한다.

그 形좋象들도 갖가지다. 얼굴의 형태도 다양하고 표현도 다르다. 어린 미소년의 얼굴, 고졸 한 미소를 머금은 자비스런 얼굴, 근엄한 얼굴, 해학스런 얼굴 등 각기 다른 부처님 모습을 대하며 신라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도 찾을 수 있을지...

신라인의 슬기는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단단한 화강석에 새겼던 것이다. 여기에는 신라 古來의 원시종교와 불교신앙이 융화된 古신라인의 정서가 서려 있고, 통일키에 접어들면서 정치 .경제 .종교가 복합적인 문화를 형성하므로 다양한 불교문화가 숨 쉬고 있다.

그러한 남산 동남선 북쪽의 몇몇 불적을 찾아본다면 먼저, 인왕리 소재 보물 제 198호 『부처골석불좌상』을 만날 수 있다

6c 초기에 제작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높이 3m, 너비 4m의 자연석에 약 1.2m 길이로 감실(부처님이나 성상(聖像)을 모셔 놓은 단이나 함)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얼굴 모습은 단조로우며 여성적인 느낌을 주고 이목구비가 추상적으로 표현되었다. 머리의 육계나 나발이 생략되고 눈동자도 행인형(은행 열매와 같은 모양)이다. 수인은 선정인(참선이나 수행정전할 때 취하는 손의 모습)이고, 옷자락은 무릎 밑까지 늘어져 연꽃대좌를 덮고 있는데 신라 초기 불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동남선 북쪽에 옥룡암(玉龍庵)이라는 암자가 있고 그 뒤 거대한 암석에 보물 제 2아호로 지정된 『탑곡마애조상군(塔谷磨崖彫象群)』이 있다. 암석은 사방 사면으로 되어 있고, 가장 높은 북면은 높이 9m이고 사방 30m정도로 둘러져 있다.

북면 바위는 여래상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탑상(塔像)이 있고, 그 위로 비천(飛天)의 나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탑 상 앞에는 사자형상의 두 짐승이 지키고 있다. 전체모습이 상징하는 뜻은 석가모니의 설법광경으로 추정된다

 서면 바위에는 여래좌상과 비천상이 안치되고, 남면 바위에는 삼촌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마멸이 심하다. 왼편으로 여래상과 그 앞에 이래의 입상이 있으며, 정면으로는 석등을 세웠던 자리와 삼층석탑이 있다 그 앞 큰 바위에는 승려가 합장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동면 바위는 갈라진 상태인데 보리수 아래 수행자의 모습은 깨달음 그 자체이다.

제일 끝 편에 금강역사(金岡力士)가 자리잡고 있는데 절의 입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들의 형상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고졸 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조성시기는 7c중엽으로 보아진다.

불상들은 거대한 석주 4면에 조각되어 있어 일종의 『사방불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皐名文瓦에 의하여 이 절의 이름을 神印寺로 추정할 수 있으며, 부처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의하면 화려 장엄한 화엄세계의 동방에는 아촉여래의 묘희국 정토가 있고, 서방에는 아미타여래의 극락정토가 있다.

남방에는 보생여래의 환회국 정토가 있고 북방에는 미묘성여래의 연화장엄국 정토가 있다고 하였다.

신라시대 유적에는 사방의 사불(四큄羚)이 배치된 바위나 탑들이 상당한 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이 부처바위는 가장 규모가 크고 내용이 다양한 사방 사불정토세계를 함축시켜 제작되어진 석불사원이다.

탑곡에서 동쪽으로 0.5km지점 미륵 골이라고 한다. 그 곳에 보리서와 보물 제 136호인 『보리사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연꽃무늬의 밑받침에 간석을 세우고 다시 연꽃무늬의 팔방 연화대를 올렸다. 얼굴표정은 온화하며, 수인은 항마인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몸통부분이 얼굴에 비해 작은 편인데, 이 같은 조성양식은 통일신라 시대 이후에 유행하였던 수법이다.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나발의 머리에 얼굴은 장방형으로 양감이 풍부한 편은 아니지만 가늘게 뜬 긴 눈, 오똑한 코,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 등이 조화를 이루며 묘사되어 있다

石留庵 本尊矛羚에서 느껴지는 탄력과 긴장감은 줄어들었지만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함축되어져 있는 남산 불상의 대표적 걸작이라고 하겠다.

경주남산 불상들은 다양하게 전개되는 신라시대 종교관의 신앙체계와 결부되어 신라인의 솜씨, 희노애락, 슬기로움과 강한 호국 사상으로 이어진다.

신라인의 정서는 고(古)신라에서부터 불교의 체계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의 불상을 보이다가 통일키에 불교의 체계가 정착되면서 한국적 불상이 고착화되어 그 형상은 엄숙 단정해지며 정교로우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자아낸다.

8c 중엽 불교문화가 가장 꽃피운 이 시기의 불상들은 이상세계가 확실히 실현되는 가장 승화된 신라인의 얼굴이었다. 이러한 신라인의 미(美)의식이 지금의 우리 정서와 크나큰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이는 곧 신라인의 얼굴이 곧 우리 민족의 얼굴이요,

우리 민족의 정서요, 한국인의 얼굴이다 여기에서 한번더 우리는 경주남산의 불상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상세계의 얼굴을 찾을 수가 있겠다.

 

 

 

 


특집2/장례문화
新羅文化와 慶州文化 EXPO/김복순교수

 

부처님의 땅 경주에서 '새천년의 미소'라는 주제로 전승. 융화. 창조를 기치로 내걸고 세계文化 Expo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갈등과 대립을 21세기의 文化로 화합해야 함을 메시지로 하고 있다.

새 밀레니엄(Milenniun : 천년)을 맞아 천년을 여는 미소가 表題인 ''98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는 지난날의 갈등과 반목, 대립을 평화와 화해의 미소가 담긴 새 천년을 동방의 등불인 한국의 文化가 새로이 이끌겠다는 문화적인 포부가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경주는 흔히 문화의 寶庫라고들 한다. 그것은 新羅 千年의 古都로서 地上과 地下에 수많은 文化財가 산재해 있고, 文學, 風可谷, 藝術의 소재가 무궁하게 묻어나는 곳이다

더구나 전국 녹지율 I위의 녹색도시로서 셀 수 없는 名堂이 사방에 펼쳐져 있어 모든 한국인들이 선망하는 쾌적한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제까지의 Expo, 즉 산업박람회에 세계적으로 붙인 일이 없는 문화라는 수식어를 얻어 '문화 Expo'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경주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어느 정도 고조된 것은 사실이나, 경주 Expo이면서도 실제 그 주최도시로서 경주의 참모습을 부각시키지 못한 측면이 보이고 있다. Ex찌는 새로움과 발상의 개방으로 온 세계인의 눈과 귀를 끌 충분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특히 천년고도라는 배경을 살렸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제대로 초점이 맞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행사를 개최하는 주최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 문화 Expo를 개최한 경상북도가 이 행사를 열어 성취하고자 한 것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는 경주에 산재해 있는 신라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경상북도에 유치하자는 것이요, 또 하나는 우리 민족의 찬란한 고대신라문화를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반열 위에 올려놓자는 것일 것이다.

주최자의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에 따라보여 줄 것은 제대로 보여 주고 알려 줄 것은 제대로 알려 주어야 하며, 부각시킬 것은 제대로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야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자한 행사가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여 바랄 직한 방향으로 재투자될 것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에도 세계문화 속에서 신라문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이러한 시너지(부가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까라는 의구심이 일어나는 것은, 행사의 내용에 있어 신라문화에 대한 천착이 깊이 있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과, 신라문화의의미를 충분히 반영시켜 이루어졌는가라는 점에서다.

신라는 미추왕 내지 눌지왕 때부터 민간을 통해 불교가 전해졌을 뿐 아니라, 법흥왕 이후는 거의 불교문화가 주도해 나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행사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내용은 백남준이 만든 백팔번뇌의 비디오아트, 불국사의 창작오페라 원효, 개막제 때의 성덕 대왕 신종, 에밀레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신라문화의 사상적배경이요, 토대라 할 수 있는 불교와 관련된 다른 이벤트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에서 어떻게 신라인의 마음을 외국인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인지 모르겠다.

 신라는 이 곳에서 千年 동안 도읍으로 있었지만 百坵齊와 고구려를 통합한 이후에는 정책적인 융화정책을 통해 최종적인 통일국가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라는 고유의 문화뿐 아니라 三國의 文化를 共히 아우른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이번 전시에 백제문화 전시실이 빠졌다는 지적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문화와의 비교도 역시 중요하며, 발해 문화도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 참에 우리는 경주에서 벌릴 불교 행사를 하나 제안해 보고 싶다.

佛敎 初傳에서부터 시작하여 了怜國淨土에까지 이르는 내용을 가지고, 불국정토순례라는 행사를 마련하는 것이다.

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한 장기적 투자의 필요성은 세계인들의 생활이 점차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즐길 수 있는가 하는 문화적 고려가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가 세계로 진출함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세계문화가 조화가 되어야만 순조롭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멀리 중국이나, 인도까지 성지순례를 갈 것이 아니라 신라인의 불국순례를 마련하여 국내의 불교신자 뿐 아니라 국내외의 관광객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행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인들은 그들이 살던 땅을 彿國土라고 인식하였을 뿐 아니라, 옛적부터 佛象이있던 곳이라 생각해 왔음을 <삼국유사>에 나오는 7처가람지를 통해서 이미 학문적으로 규명된 바 있다. 즉, 신라 불교의 초 전지인 훙륜사에서부터 시작하여 황룡사, 내제석궁, 분황사, 사천왕사, 남산불적 등을 순례하고, 佛國岺土에 들어가기 위한 넓은 문인 普門을 거쳐 矛殆國에 이르는 행사를 마련하는 것이다.

大道無門을 이미 신라인들은 無門과 통하는 普門으로 상정하고, 불국에 이르는 길목에 위치하여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에 사는 이들은 12월 31일이 되면 보문로에서 불국토로 가는 길이 차량과 걷는 이들로 인해서 가득 차게 됨을 모두 알 것이다.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고자 하는 인파로 인한 것이다. 이 행사로서 미루어, 그동안 머무름이 없는 관광에 대한 우려는 불국순례를 도보하게 함으로써 해소시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일정한 장소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순례 코스를 정하여 준다면 이들은 자연 경주에서 숙박하면서 머물 수밖에 없으며, 길을 지나면서 경주의 토산품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특산품 개발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경주를 흔히 불교유적의 대표적인 곳으로 운운하면서도 이를 체험하게 하는 행사가 소규모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위정자들이 좀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행사를 준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불국순례를 준비해 주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즉. 신라인들이 생각했던 왕경 속의 불국정토는 어떠한 내용이었고, 그것을 현대에 어떻게 재현하여 현대 불교도들의 성지순례지로서 경주가 주역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구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불국토의 순례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거기에서 좀더 범위를 넓혀 신라불교 초 전지인 선산의 도리사, 직지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 인도성지와도 비교, 기독교성지나 회교성지와의 비교 등 다양한 행사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도업 스님

 

첫번째 이야기

부처란 무엇인가(法身佛 恩,想)

 

대부분의 종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궁극적인 것'', ''최고의 선(至尊)''과 같은 것을 설정해 놓고 있다. 그것을 어떤 종교에서는 '천주(天主)'라 부르기도 하고, '알라'라 부르기도 하고 '신(神)' 이라 하기도 한다. 화엄경에서는 그것을 '비로자나불' 이라 부르기도 하고 법신불(法身佛)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신불이란 법(法)을 몸으로 하는 부처라는 뜻이다 법에는 도리(道无里) 또는 진리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법신불이란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부처, 즉 진리의 부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법신불은 고정관념이나 형상에 길들어 있는 중생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러한 존재라고 한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들의 인식이나 경계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 모양(木呂)이나 소리(聲)를 보거나 들을 수 없으며, 그 신통력이나 공덕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소식을 법화경에서는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는 경계'라 했고, 신라 의상 스님은 '부처나 보현보살과 같은 대인만이 알 수 있는 경계'라 했다. 화엄경 여래광명각품에서는 ''艇來의 경계는 오직 부처만이 분별해서 알 수 있다(如來境界因 唯佛能分別)''라고 했고, 보살운집 찬불품에서는 ''작은 지혜로는 갚고 笹孟은 부처의 경계 알 수 없어라. 본업 智를 성취해야만 모든 부처경계 알 수 있다네(小智不能知 甚深佛玲太覓界 成就本業智 乃達諸佛境界)''라 했으며, 세간정 안품에서는 ''모든 부처 경계는 깊고 깊어 알기 어렵나니 중생들로서는 결코 짐작할 수 없다네 (一切佛i鳧界 甚深穀恩議 諸賈余衆生類 莫能澗量者)''라 설하고 있다.

법신불의 경계는 깊고 깊어서 대 성문이나 사리불, 목건련, 가하가섭 등과 같은 큰 제자들도 부처님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자제한 신변(示申變)을 전연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범부 중생들은 법신불의 존재와 공덕, 신통력과 작용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법신불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법신불은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그러므로 어떤 관념이나 형상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존재다.

둘째, 법신불은 이래의 본체로서 인간 석가모니불의 육신은 멸해서 없어지더라도 그것에 관계없이 시방의 법계에 상주하고 있다. 법신은 허공과 같고 광명과 같이 와도 온 곳이 얽고 가도 가서 머무는 곳이 없다. 生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지만 법계에 아니 계신 곳이 없으니 無兵不不住의 존재다.

셋째, 법신은 허공과 같이 광명과 같이 적열한 존재지만 신통 변화와 작용력은 무한하다. 모르는 바가 없고(全知) 못하는 것이 없다(全能) 법신불의 작용력에 의해서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이 되면 그 잎이 무성하게 되고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 겨울이 되면 떨어진다. 이것이 법신불의 신통 변화력이다. 봄이 여름으로 변하고 여름이 가을 겨울로 변화해 가는 그 작용, 아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노인이 되어 언젠가는 죽게되는 그 법칙이 법신불의 작용이다.

넷째, 법신 불의 공덕은 무한하다, 화엄경세간정안품에서는 ''여래의 공덕은 부사의 하니 如來를 보는 자 번뇌가 없어지고, 여래를 보는 자 무량한 환희심을 낼 수 있다''고 하며, 보왕여래성71품에서는 ''여래의 색신을 보는 자 눈이 깨끗해지며. 여래의 이름을 듣는 자 귀가 깨끗해지며, 여래의 계율의 향기를 맡는 자 코가 깨끗해지며, 이래의 法을 맛보는 자 혀가 깨끗해진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법신불의 공덕에 대해서 보살운집찬불품에서는 ''무량한 생사 중에서 아직도 도심을 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如來를 보거나 듣기만 하면 부처와 같은 보리까지 도구 족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법신불의 신통 변화의 공덕력은 참으로 부사의 해서 중생으로써 그 법신불의 모양을 보거나 소리를 듣기만 하면 육군이 청정해지고 이래와 똑같은 지혜를 갖출 수 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서 요약하면 법신불은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온 법계에 충만해 있어 捲戶什不住한 존재며, 신통력이 자제해서 전지전능하며, 공덕력 또한 무량한 그린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법신불은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曆申이나 알라신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신불만의 특징이 있다. 무공용(無功用)이라는 점이다 무공용이란 작의(乍意)가 없다는 뜻이다. 법신불은 무작위이기 때문에 유일신교의 산이 미래를 예언하거1나 사람을 심판하여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신불은 독선적이지 않다. 화엄경에서는 광명의 비유로 법신불의 무공용을 설명하고 있다. 태양 광명은 높은 산 낮은 산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비추지만 나무가 처해 있는 위치에 따라 햇볕을 많이 받고 적게 받는 차이가 생긴다 그와 같이 법신불의 광명을 보고 못 보는 것은 오직 중생들의 신심안(信心眼)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무형무색이며 무소불주하며, 전지전능하고 신변 자제하며 공덕이 무량한 존재, 그러면서도 무공용(無功用)인 법신불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것은 법(法)이다. 인간 싣달타 태자가 자각해서 부처가 된 연기(緣起)의 법칙이다. 이 연기의 법칙성을 반야경에서는 공성(空'陸)이라 했고 법화경에서는 제법의 실상(實相)이라 했다.

무량수경에서는 무량한 수명 또는 무량한 광명이라 했다. 화엄경에서는 이래의 성기(惺起)라 부르기도 하고 법 또는 법신이라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법신불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연의 법칙이며 우주의 섭리 그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있기는 있지만 정제성(定體性)이 없기 때문에 공(空)이다. 그러나 그 진공(眞편)은 무한한 신통력과 작용이 있기 때문에 묘유(妙有)다.

이것이 법신불이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목회 회장 윤순현 보살님/편집부

 

 지난 여름의 그 암담한 수해가 어느덧 기억의 먼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듯 하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 맴도는 중음 신처럼 IMF 난국은 계속 되는 듯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은 가일층 正進에 힘써야 하고 수행에 전념해야 하리라. 우리 동국대학도 이제는 국내 일류대학으로의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교내에서의 모임도 활발하지만 이 좋은 도량에서 다시 불자로서 마음을 되찾는 좋은 모임과 그 모임을 이끌고 있는 회장님이 있어 소개 하고자 한다.

매월 첫째 토요일 4시에 정각원에서 정기법회를 열고 있는 정목회(正牧會)는 초대 법사님의 법경을 그대로 따서 모임의 이름을 만들었는데 뜻이 바를 정에 기를 목자다. 말 그대로 바르게 기르자는 뜻이다.

이 모임은 조금 다른 특색을 찾아보자면 모임의 회원들 직업이 변호사, 회계사, 의사, 국회의원, 교수님 등으로 꾸며져 있다. 어찌 보면 보통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보이나 일상생활이 다 바쁘고 사람들을 많이 대하는 직업이 되어 신행 생활을 자주 못했지만 16년 신록사에 직업이 비슷한 사람끼리 순례를 갔다가 마침 변호사를 하시던 분이 모임을 하나 만들자고 제기한 것이 이 정목회가 된 것이다.

어찌보면 사회에서는 저명인사나 유지들인데 법회에만 오면 ''入此門來, 莫在知解''(이 문을 들어 올 때는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들 순진하고 아상을 버리고 오신다고 한다.

지도 법사님은 동국대학교 정각원 원장을 맡고 계신 법산스님이 해 주시는데 10년 전, 딱 한 번만 법문을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벌써 10년이란 세월 동안 인연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회원은 약 50여 명쯤 되고 상반기 하반기엔 성지순례도 꼭 다녀오고 있으며 이번 달에는 마곡사로 갈 즐거움에 회장을 맡고 계신 유순현 불자님은 벌써부터 신이나 있다.

모임의 소개가 너무 길었지만 정목회 회장님이라는 직함이 초대의 이유이기에 유순현 보살님을 인터뷰 하려 전화를 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직위도 그렇고 해서 유명세를 타기 싫다며 극구반대 하시다가, 결국에는 경사겸사해서 정각원 사무실로 모셔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첫인상이 깐깐하다고 할 정도로 단아한 모습에 그간의 경력과 직책을 여쭈어 보니 경기대학교 설립자의 아내이시고, 서울 법대에서 법학박사까지 받으셨고, 지금은 강단에서 강의까지 하시는 교수님 이셨다.

여자분으로 힘들지 않으시냐는 물음에 삶의 질서는 법에 있는 것 같아, 법을 연구했고 법을 연구하다 보니 법은 종교에서 나오는 것 같아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중에도 이 불교는 모든 상식에도 맞는 진리가 아름다워 더욱 좋다고 한다. 생활의 좌우명도 ''반듯하게 살자''로 정했을 만큼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하신다고 한다.

1975년 미국에서 남편을 교통사고로 보내시고 나서는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종교의 유혹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공부가 법학공부고 불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할머니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절에 다니기 시작한 믿음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명산대찰을 순례하기 시작 했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전국의 사찰을 다닐 생각이란다.

 태백산 정암사를 가서 i陋)일 기도를 발원 하였는데 매일 갈 수가 없어 집에서 기도를 하면서 10일마다 정암사 적멸보궁에 가겠다고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또 선산 도리서도 10일마다 한 번씩 가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한다, 사람이 그냥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삶에 목표를 세우고 정진 한다면 이루지 못할게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필자도 해본다.

 어떤 훌륭한 분께 당신은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았다는 데에 성공의 비결이 있다고 했다. 정 그러하다 남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무언가 남들보다 더 나은 노력이 있었기에 그러한 성공의 길이 열리지 않았나 한다. 71도하는 생활은 자기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키려고 노력한다. 불교적 삶의 방식 중에 우리는 흔히 ''如如''라는 말을 자주쓴다. 항상 같게 살 수 있다는게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삶에는 많은 유혹과 힘듦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며 如如하게 산다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 이루기 힘든 삶이리라. 윤순현 보살님께서 존경하는 스님으로는 많은 스님이 계시지만 지금 지도법사로 계시는 법산스님의 쉽고 재미있는 법문이 마음에 착착 와 닿아서 좋고, 멀리 계시는 스님으로는 양산 통도사 비로임의 원명스님을 꼽는다.

소탈하시면서 범상치 않으신 스님께서 첫만남에서 직접 차를 대접받고 금강경 책을 선물 받으시면서 좋은 법문까지 해주심에 마음에 남았다고 한다.

 지금 고희를 넘어선 연세에도 항상 마음을 젊게 가지려고 노력하고 바르게 기르려고 노력하신다며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곧은 몸에서 우러나오는 연세는 보살님 스스로의 값진 신행의 열매리라.

회원 모두도 부부가 같이 법회에 참석하니 좋고, 마음 공부를 하니 생활이 아름다워져서 좋단다. 유명인사이기에 한 사람이 밖에서 천명을 포교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가없는 정진을 약속하며, 합장하고 돌아서는 보살님의 뒷모습에서 저녁노을의 따뜻함이 가득하다.

 

'사람이 만일 바른 법을 모르면 그 늙음은 소의 늙음과 같다 한갓 자라나 살끈L 더할 뿐 하나의 지혜도 더한 것 없다'  -법구경-

 

 

 


불심의 창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찾아서/장영길

 

이번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자 교수회에서는 작금의 국가적인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사명대사의 충혼을 모신 밀양 표충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표충사는 가지산도립공원, 일명 '영남알프스'의 천왕산 계곡에 위치한 고찰이다.

경주에서 표충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나, 영남 알프스 동북단에서 서남단까지 종주해야 하기 때문에 외 양재와 석남재를 넘는 산악국도를 따라 버스로도 2시간 정도를 더 가야한다.

1998년 5월 27일 오후 4시 30분, 코끼리 상 앞에서 출발하여 버스는 경주 산내를 거쳐 외양재를 넘는다 정상에서 다시 고한산과 운문재 계곡을 내려가 석남사를 돌아 이번에는 석남재를 오른다. 길은 설악산 한계령 길을 방불케 한다. 석 남재 8부 능선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길을 재촉하여 석 남재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 아래가 그 유명한 밀양 얼음골 계곡이다.

버스는 가지산 남쪽 기슭을 따라 울밀선 국도를 곡예 하듯 돌아 내려가는 데 맞은 편산록이 바로 천왕산 북쪽 기슭인 얼음골이다. 산세가 묘하기도 하거니와, 여름 내내 얼음이 쌓여 있어 ㅈ}연 냉장고를 이루다가 처서가 지나면 다 녹아 버린다니 자연의 조화를 알 수가 없다. 이 얼음골은 조선 선조대의 명의 허준과도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허준이 스승의 유언대로 스승의 시신을 이곳의 얼음에 채워 두고 해부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전설이지만 어쨌거나 의술을 인술로 승화시킨 그 스승의 보살 행에 다사로운 불심을 느끼게 되는 것은, IMF시대에 얼음골을 지나가는 길손의 마음이 유독 춥게 느껴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버스는 울밀선을 30분쯤 더 달리다가 좌회전하여 표충사 계곡에 들어섰다.

아직도 삼십 리 길이 남았다. 대추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인 계곡길을 달리며, 동부 경남에 이런 산악지대가 있는 줄을 몰랐다는 어느 노교수님의 감탄과 동시에 버스는 표충사 주차장을 들어서고 있었다. 표충사는 그렇게 우리 앞에 다가왔다

 예정보다는 좀 늦은 6시 40분경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공양부터 마치고 저녁예불에 참예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때(i刃5년) 언양에서 이 곳까지 걸어서 가훌 소풍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날 밤 우리는 표충사 승방에서 하루를 보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저녁예불시간에 연주된 법고 소리였다. 오늘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런지, 그런데 저녁공양이 끝나갈 무렵 어디선가 먼 우레와 같은 저음의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예의 그 법고연주가 시작된 모양이다.

사비중생의 몽매를 일깨우는 법고소리는 지심을 울리며 표충사 계곡을 휘돌아와 우리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속세의 온갖 번뇌를 얼러고 흔들어 밀어내려는 듯 그렇게 한참 동안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공양을 마치고 법당 맞은 편 누각에 있는 강원에 모여 저녁예불에 참예하였다.

장엄한 예불이 끝난 다음 비로소 우리는 천왕봉과 재약산의 위용을 다시 보고 문 필봉의 묘한 모습도 새롭게 발견하였다. 문 필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문필가로서 입신한다는 전설이 있다 하여 다소곳이 사진 한 장을 찍었다는 모 여교수님의 제법 심각한 여담을 즐기는 가운데 주지스님께서 등장하셨다. 주지스님의 법어는 표충사의 역사 소개로부터 시작되었다.

신라 무열왕 1년(서기 654년)에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불렀다. 흥덕왕 4년(서기 8뛴년)에는 인도승황면선사가 현재의 사리에 중창하여 영정사(臺井寺)라 개명하고 3층 석탑을 세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특히 사명대사의 법손인 월파선사가 대사의 고향 무안면에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이 절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고쳤다.

사명대사의 유물전시관에는 국보 제 75호인<표충사 총동함은향완>을 비롯하여 대사와 관련된 유물 3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 주지스님은 법어를 이어가셨다. 현금의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우리는 사명대사의 구국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임란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으로 이순신을 든다면 외교영충으로 사명대사를 들 수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현양 하는 데 너무나 인색하다. 이는 대사의 승적 때문인데 이런 왜곡된 인식의 재정립을 위해 우리 불자 교수들은 분발해야 한다.

표충사계곡은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다고 봉 준령으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다. 특히 천왕산 정상에는 200만 평이 넘는 대고원지대(사자평)가 은밀하게 숨겨져 있어 작물재배와 목축에 적당하니 군사들의 식량은 걱정 없다. 일찍이 이러한 천혜의 땅을 기점으로 승군들이 활약하기도 했다.

바로 이 곳에 사명대사의 표충사 당까지 모시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젊은이들이 호국정신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표충사에서는 사자평에 부지를 확보하고 청소년 호국도량을 건설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주지스님의 법어가 계속되는 가운데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사명대사의 유물전시관을 서둘러 관람하고 가만히 돌아갈 길을 헤아리고 있었다. 겨우 반나절의 순례일정밖에 되지 않았건만 속세의 생각이 어느새 신성한 이 곳까지 졸래졸래 따라와 보채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얄팍할사 우리 속인들의 신심이지 사명대사께서 보여 주신 필생의 구국정신을 같지 동안이라도 가슴에 새길지니, 나무관세음보살!

버스는 이미 어두워진 표충사 산문 주위를 빠져 나와 귀갓길을 서두른다. 잠시 돌아보며 찰리처럼 지나간 표충사 순례일정을 정리한다. 합장한 손끝에 아직도 향불 냄새가 남아 있음을 느끼며 삼귀의를 나직이 외운다.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가람의 진수
문수보살의 성지 오대산 월정사/유문용

 

강원도 평창에 있는 오대산과 월정사, 상원사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 내력을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 오대산은 백두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백두대간과 차령산맥이 갈라지는 지점에 있고, 산봉우리만도 32개에 폭포가 12개나 있는 아주 절경의 산이다. 척

이 산은 신라시대 이후로 삼산오악에 중요한 위치에 속하는 매우 신성시 하는 산인데, 자장율사에 의해서 개산이 되었다고 한다.

선덕왕 5년 636년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당나라 오대산에 들어가 태화지라는 연못에서 문수보살의 석상이 있는 곳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꿈에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梵語)로 된 경문을 받았다고도 하고, 용(龍)이 나타나 가사와 부처님의 바로와 부처님의 유골(遺骨)을 주어 받아 가지고 신라로 돌아와서 문수보살이 계시다는 오대산에 찾아와서 초가 암자를 짓고 가람을 일으켰는데 처음에 초막을 친 곳이 지금에 월정사의 자리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을 보면 이 오대산은 신문왕에 두 왕자가 이 산에 월정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절들이 고려시대에 와서 거의 황폐되었던 것을 고려 오광 2년 i376년에 나응선사의 제자인 영로암 스님이 크게 중창을 했다고 하는데 이 중창 불사에 당시 판서를 하던 최백청거사에 힘이 컸다고 한다.

조선조에 와서 태조도 사자암을 중창을 하는 불사를 하였고, 세조는 월정사의 불사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여기 오대산에는 적송이라고 해서 붉은 색이 나는 소나무와 전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높이 솟아 있는데, 여름에는 아주 시원하고, 겨울에는 바람을 막아줘 아늑하기도 하다.

일주문 현판에는 ''월정대가람''이라고 쓰어져 있는데, 應化 3006년 乙未로 되어 있다. 여기 융화라는 연호는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연호인데 응화라는 것은 부처님이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좀더 높은 차원의 연호를 쓰는 것이다.

불기(佛紀)의 연대가 먼저 사용하던 연대보다 483년을 뺀 연대로 새로 정해서 이렇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이 글씨는 6 . 25이후 1960년대부터 월정사 대 불사를 하셨던 탄허(呑虛)스님이 친필로 쓰신 것인데, 그 필치가 아주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글이다.

천왕문은 주심포집으로 격식이 많이 올라가는 형식으로 지어 놓았는데 이런 주심포집은 상대건축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건축기법이다.

이 월정사나 상원사의 목조건물들은 모두 1960년대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이지만 집을 지을 때의 시대적인 건축 양식은 얼마든지 선정을 해서 지을 수가 있다, 특히 기둥머리 위에 놓여지는 목침덩어리 같이 생긴 나무를 주두(柱頭)라고 하는 데 이 주도의 밑면을 경사지게 다듬는데, 이 경사진면을 안으로 휘어진 곡면으로 다듬어 진 양식은 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천왕문의 사천왕을 봉안했는데 자세히 보면 동쪽에 지국천왕이 계시는데 손에 보주나 칼을 들고 계시고, 남쪽에 중장천왕은 창이나 용을 잡고 있다.

서쪽에 광목천왕은 삼지창이나 비파를 연주하는 분이다.

그리고 북쪽에는 다문천왕이 있는데 보답이나 육모방망이를 들고 있다.

오른편 길 옆에 비석 2개가 서있는데 ''본사대웅전중창대시주 조공중훈송덕비''라고 되어 있다. 현재 대한항공의 사장인 조중훈회장이 28년 전 월정사 불사에 많은 공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무소 앞의 광장에서 보면 월정사 팔각 9층석탑을 중심으로 울타리 치듯 적광전과 동서의 요사채, 누각, 범종각, 보장각이 둘러서 있다.

 이 보장각은 월정사에 상보유물들을 보관, 전시하는 집인데 법당에 준하는 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안에는 보물 140호로 지정된 ''상원사 중창 권선문''이 들어 있다고 한다.

''상원사 중창 권선문''은 혜각국사 신미스님이 국왕의 원당인 상원사를 중수할 때 세조대왕이 단청하는 안료와 쌀 500석, 쇠 1만 5,000근, 비단 500필, 품질 좋은 베 500필을 하사하고 상원사 중수에 발원문을 지어 같이 보낸 문서라고 한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 직접 필사로 쓴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고 그 당시에 사용하던 언문을 직접 접할 수 있어서 언어학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금강경 3권과 각종 경전이 있다고 하고, 관음보살 변상도와 다른 탱화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 보장 각에는 i970년에 8각 9층 석탑을 해체보수를 할 때 1층 탑신과 5층 탑신에서 사리장치와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월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8각9층 석탑이 있다.

이형탑(異刑塔)이라고 볼 수가 있다. 대개 이런 8각의 탑이나 부도 같은 경우를 보면 맨 밑의 지대석은 4각이 많은데 이 탑은 철저하게 지대 석부터 8각을 이루고 있다.

지대석에는 1단에 낮은 괴임을 조각을 하였는데, 이런 양식은 신라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기법이다.

각층의 탑신의 각 모서리의 귓기둥인 우주가 있고, 8면 중에서도 4면에는 감질을 마련했다.

1층에 탑신 사방에 감질이 있는데, 아마 사방 불을 모셨던 것으로 보여진다.

1970년에 해체수리를 할 때에 1, 2, 6, 9층에 옥개석이 깨어짐이 몹시 심해서 새로 다듬어 복원을 하였다.

벌써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인지 색상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도 세월의 때를 덜 입은 것 같다.

새로 보충된 옥개석들에 원래의 탑재들은 지금 법당 앞마당에 범종각 옆 구석에 보관되어 있다.

이 월정사에 8각 9층 석탑에서는 상륜부가 제일 일품이다. 화강석과 금동으로 조화를 갖춰서 이루어진 삼륜은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희귀한 상륜부가 기가 막히게 잘 남아 있다.

이 삼륜에서 동글동글하게 겹쳐서 여러 개를 겹쳐 올려진 것을 보고 보륜이라고 한다.

칠보에 바퀴라는 말이다. 이렇게 상륜에 동글동글한 보륜을 여러 경을 겹쳐 올린 양식은 북방불교, 대승불교에 속하는 중국이나 일본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고, 남방불교인 소승불교 쪽에서는 볼 수가 없다.

이 상륜부는 석탑에 경우 가장 손실되기 쉬운 부분이다. 이 탑에서 상륜부가 용케 완벽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보륜은 9단으로 되어 있다. 9단에 보륜을 겹쳐 쌓은 것을 보면 위로 가면서 좁아지는 체감이 9층 탑에 체감과 같다. 그래서 더 조화가 잘 되고 이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맨 밑에서부터 노반, 복발, 앙화가 있고 그위에 여러 단의 대륜과 보륜이 있고 그 위에 보개, 수연받침, 수연, 용차, 보주가 있게 된다.

이 탑 앞에는 탑을 봉양하는 미륵 부처님이 계신다.

보물 139호로 지정된 미륵 봉 양상으로써 지정 명칭을 보만 석조보살 좌상으로 되어 있다.

이 공양 상이 앉아 있는 자세는 다른데서 보던 불상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무릎을 꿇고 한 무릎은 세우고 앉아서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앉으신 모습이 아주 공손하게 보인다.

이런 자세로 앉은 불상이 강원도에도 있다. 강원도 강릉 부근에 신 복사지에 공양상 도 이런 모습인데 거의 홉사하다.

이 미륵 공양 상이 오른편 무릎을 꿇고 왼편 무릎을 세우고. 앉았는데,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앉아 있으니까 한쪽 팔꿈치는 세운 무릎에 의지가 되지만 꿇고 앉은 무릎 쪽에는 팔꿈치가 허공에 뜨게 되니까 여기에 무엇을 바치고 있는데 가만히 보자면 이 돌이 바로 동자상으

로 되어 있다.

이 동자가 미륵에 불편한 자세를 받쳐주고 있어서 동자와 미륵이 같이 부처님을 공양하고 있다고 봐야 되겠다.

이 미륵보살상온 독특한 자세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름사유반가상이라고 해서 의자에 걸 터 앉아서 무릎 위에 한쪽 발을 홀려 놓은 자세에서 한 손을 세워 손가락을 뺨에 대고 무한한 명상에 잠겨 있는 그런 반가사유상이 국립박물관에 있다.

이 월정사에는 목조건물 대부분 이 6.25때 모두 소실이 되었고, 적광전을 비롯해서 1960년 중반에 탄허스님에 의해서 모두 중건되어 지금의 월정사가 법통을 이어오게 되었는데, 이때 적광전이라는 현판과 기둥에 걸려 있는 조련에 글을 탄허스님이 쓰셨다고 한다.

이 적광전은 전면 5칸에 측면이 4칸이 되는 아주 큰집을 지었는데 시대 양식은 조선조에 말기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 적광전 기단 윗면에 전 돌을 깔았는데 아주 귀한 문양에 전돌을 깔았다. 백제시대에 것으로 보이는 구름무늬 전 돌을 만들어 깔았는데 전 돌의 둥근 원 안에 구름 문양을 연속적으로 돌리고, 그 가운데 연화문에 기와 막 새와 같춘 문양을 조각해 놓았다.

이 적광전에 주춧돌인 초석은 아주 높게 했는데 이런 것은 빗물이 들이칠 때는 아주 좋은 효과를 본다.

전면에 문들은 모두 꽃살문을 했는데 이 꽃살문도 아주 특이하게 되어 있다. 대개 꽃살문은 6각으로 되거나 둥근 원형으로 해서 촘촘하게 살을 짜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 적광전에 꽃살문은 마름모꼴에 꽃 살로 하고, 그 살대에 간격도 성큼성큼 하게 해 놓았다.

이 꽃살문이 아주 시원하게 잘 짜이어 있다.

45도로 교차하게 짜이어 있는 살대를 성큼성큼 하게 짜 맞추어져있고, 그 중간 중간에 수평으로 된 살대를 건너질러서 사각이 반으로 갈라지는 삼각이 어우러지게 했다.

그래서 중심에 가운뎃줄에는 널찍한 사각이 보이고 양편으로는 삼각이 연이어 있게 되는데 그 살대에다가 조각을 해 붙여서 그 사각과 삼각 안에 꽃문양이 되게 했다.

그 꽃문양이 삼각에서는 원형이 되고 중앙에 있는 사각에서는 꽃문양으로 보이게 만들어 놓았다.

여기 적광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보처불이 없이 독존으로 되어 있다. 적광전에는 비로잖아 부처님이 모셔지는 것이 보통 상식이다. 여기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져 있고 법당을 적광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 월정사에는 수 많은 문수보살이 거처하신다고 하였는데, 오대산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에게서 받아온 부처님에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와서 세운 절이라고 해서 이 근처에 적멸보궁도 있다.

아마 이런 의미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 존이 되시고, 법당은 모든 진리의 근본인 적광전이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행상담
유루와 무루/장계환 스님

유무(有無)라는 단어에서 이미 반 이상의 의미를 해석하였으니까 문제는 나머지 '루' 에 대한 뜻만 설명하면 되겠네요.

 먼저 유루(有漏>와 무류(無漏)에서 '루' 는 번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밖에도 번뇌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혹(感), 결(結), 전(器), 폭류(暴流). 취(取), 계(繫), 사(簡), 개(叢). 구(垢)등 이 모두가 번뇌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외에도 몇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와 같이 '루 라는 단어는 번뇌를 말하고 있음으로. 즉 유루는 번뇌가 있다는 말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는 유염(有染), 유쟁(有淨)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때 염이나 쟁도 똑같이 번뇌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리고 유루는 잘못된 견해를 만드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일명 견처(鼠處)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번뇌를 일으키고 키워나가는 것을 유루법이라 하고 그와 반대 외 개념을 무루법이라고 하지요. 다시 말하면 사성제 가운데서도 미혹의 결과(고제)와 원인(집제)에 해당하는 제법은 유루법이고 깨달음의 결과(멸제)나 그 원인(도제)에 해당하는 제법은 무루법입니다.

그러므로 세속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도면 범부의 지혜를 통틀어서 유루지(巷漏智)라고 하고, 이와는 반대로 사성 체의 도리를 증득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無學道) 성자의 경지에 이든 지혜들 무루지(癩漏智)라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경지를 선악의 개념으로도 설명을 하고 있는데, 즉 유루의 선과 유루의 악 그리고 모루의 선과 무루의 악,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서 유루의 선이란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고 있는 선행으로써 나는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없는 선행을 말합니다.

 반면에 모루의 선이란 전혀 걸림 없는 선행을 말하는데 이것은 선행을 행하면서도 한다는 의식이 없는 선행. 가령 갓난 애기가 천진하게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애는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무루의 선이지요.

 그렇다면 유루의 악은 어떤 것일까요.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행위이니까 세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체 모든 악행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화적으로도 제일 지탄받고 있는 악행들입니다.

끝으로 무루의 악이란 예를 들면 얼굴이 갑자기 따가워서 아무 생각없이 손으로 볼을 탁 때렸는데 그만 모기가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미루어 볼 때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생각이 없이 행해지는 행위일 때만이 무루가 될 것입니다.

 

 

 

 


수행의 길
합장하여 각자 맑고 향기로운 연꽃을 피우자/정성본 스님

합장과 예배는 불교의 기본적인 예절임과 동시에 흐트러진 자기의 모습을 바르게하고 겸손과 미덕을 나토는 入格적인 수행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심성의의 지극한 합장과 예배는 번뇌와 망상으로 고뇌에 빠진 우리들의 마음을 근원적인 본래 심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하며, 자기를 뒤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거울이 되고 있다.

지극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합장 예배하는 불교인의 자비스러운 모습은 자기 자신의 지혜와 인격을 만드는 기본적인 수행이 됨은 물론 이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온화함의 자비로움을 나투는 보살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불교인들은 합장을 하고 예배(인사)할 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합장의 게송(合掌偈)을 잘 알고 합장 예배의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면서 불교적 인격을 만드는 수행으로 삼아야 한다.

 

合掌以爲花 : 두 손 모아 합장하여 한 송이의 연꽃을 만들어,

自爲供養具 : 청정한 이 몸이 供薰具가 되고

誠心眞實 目 : 성심을 다하는 지극한 마음으로

讚嘆香煙覆 : 찬탄의 향기를 가득 채우리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 모습은 한 송이의 연꽃을 만들고, 청정한 몸과 마음이 되어 시방제불에게 공양을 올리는 보살의 供養具가 되는 것이다. 두 손을 모은 합장의 모습은 한 송이의 청정한 연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상점인 연꽃은 어디에서 피는가? 맑고 깨끗한 흐르는 물이 아닌,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연꽃의 잎이나 꽃에는 결코 진흙탕의 더러움이 물들지 않고 고결함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불교적인 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연꽃이 피는 이 진흙탕이 貧賑癡 삼독과 시기 질투로 들끓는 중생계의 사바세계를 상심하는 것이라면, 한 송이의 청정한 연꽃은 사바세계에 살고 있으면 뇌에 물들지 않고, 언제 난 일체중생에게 맑고 깨끗한 한 송이의 꽃이 되어 번뇌를 씻어 주고 기쁨과 환희, 용기를 주고 있는 불교의 보살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사바(saba)세계란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로써 시기와 질투, 번뇌와 괴로움을 느끼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세계라는 의미이다. 우리들은 이 진흙탕과 같은 사바세계를 떠나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바세계를 각자가 성심으로 합장하여 번뇌를 떨치고 각자의 본래 심으로 되돌아간다면 스스로 자기의 아름다운 연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사실 진흙탕이 없다면 연꽃이 자랄 수도 없고, 맑고 향기로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바세계가 없다면 중생을 위한 부처님도 보살님도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바세계가 모두 그대로 극락세계가 되도록 중생들을 위해 언제나 합장하여 한 송이의 맑고 청정한 연꽃을 피워 성심을 다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도를 실천해야 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다. 즉, 혼자서는 싸움을 할 수 없다는 말인데,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은 흐트러진 자기를 和合하여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는 자세이기도 하다.

합장하는 손으로는 싸움을 할 수도 없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의 번뇌가 생길 수도 없다. 따라서 합장은 다툼이 없는 無 三味와 중생 구제의 자비로운 각자의 인격적인 모습인 것이다.

『法句經』 상불경보살품에는 합장 예배로 보살도의 수행을 실천한 상불경보살의 수행모습을 실천한 상불경보살의 수행 모습을 전하고 있다. 언제나 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보살과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마음으로 수행한 보살이란 의미로 「常不經  」이라고 부르고 있다. 상불경보살은 부처님이 입적한 뒤에 불법이 멸진하려 할 때에 태어났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당신을 공경합니다. 절대로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합장예배 찬탄하였다.

사람들은 도리어 상불경보살의 모습을 보고 미치광이 취급하고 온갖 욕설을 다 퍼부어 지팡이로 후려치고 돌멩이질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래도 상불경보살은 이를 피하면서 『나는 절대로 당신을 공경하며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라며 합장 辰負敬하는 보살도수 행을 계속하여 깨닫고 부처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합장의 게송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제부터 불교인들은 합장과 예배하는 의미를 잘 알고 상불경보살처럼 남을 공졈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며, 일체의 번뇌를 끊고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 심으로 되돌아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각자의 연꽃을 피워야 한다.

온화한 마음으로 합장하여 예배를 올리는 지극한 모습은 사바세계에 한 송이 고결한 보살의 연꽃을 피우는 일이다.

意味란 어떤 관계 속에서 생긴다. 합장하는 의미, 수행하는 의미, 불교를 배우는 의미, 삶의 의미나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의미 없는 만남과 행동, 의미 없는 인생의 삶을 살 수야 없는 것이다 합장의 의미를 새기며 자각할 때 자기의 모습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합장의 의미를 가지고 보살토의 정신을 실천할 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사바세계를 곧바로 청정한 극락 국토로 바꿀 수 있는 것이며. 번뇌와 탐진지의 삼독에 물든 자기를 청정한 연꽃으로 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진정한 보살도의 실천이란 합장의 의미를 자각하며, 지극성심으로 합장 예배하며 일체의 중생을 공경하는 자기를 낮추는 수행인의 자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불교문학
구운몽(九雲夢)/이만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한 이래 역사와 문화. 정치. 사회적 제도 및 구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민족이 종교적 심성과 세계, 이해의 태도에도 매우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동안 불교가 우리 민족의 일반 대중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새삼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문학에 대한 영향은 넓고 깊은 것이어서 문학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모든 분야에 불교적 흔적을 다양하게 남겨져 있다. 그렇다면 일반 대중에게 문학으로 영향을 미친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에 「불교문학」 이라고 제호를 붙인 것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문학)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불교의 세계관을 접수하여 일반 대중에게 좀더 넓고 깊은 의미와 울림이 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교훈과 좋은 감흥을 전달한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뜻에서이다.

 

『구운몽』은 효자였던 사포 김만중이 어머니 윤씨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그러나 사포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이전의 다른 어떤 문인과도 다른 특징을 띠고 있다.

그는 「국문가사 예찬론」이라는 논설을 통해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국자의식(國字寇識)' 은 주목할만 하다. 또한 당시의 집권 세도 층이었던 서안들의 일원으로 당시 이단으로 금기시되었던 불교나 패서(稗書)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구운몽』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 내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당나라 때 남악 형산 연화봉에서 역으로부터 불교를 전하러 온 육관대사가 법당을 짓고 불법을 베풀었는데, 동정호의 용왕도 이에 참석한다. 육관대사는 제자인 성전을 용왕에게 사례하러 보낸다. 이때 형 산의 선녀안위부인이 팔선녀를 육관대사에게 보내 인사드렸다.

용왕의 후대로 술이 취하여 돌아오던 성진은 연화봉을 구경하며 돌아가던 팔선녀와 석교에서 만나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희롱한다.

선방에 돌아온 성전은 팔선녀의 미모에 도취하여 불문의 적막함에 회의를 느끼고 속세의 부귀와 공명을 원하다가 육관대사에 의하여 팔선녀와 함께 지옥으로 추방된다.

성진은 화남 수주현에 사는 양처사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는데, 양 처사는 신선이 되려고 곧 집을 떠났다. 아버지 없이 자란 양 소유는 15세에 과거를 보러 경사로 가던 중 화음현에 이르러 진이사의 딸 체통을 만나 서로 마음이 맞아 자기들끼리 혼약한다. 그때 구사랑(九士良)이 난을 일으켜 양 소유는 남 전산으로 피신하였는데, 그 곳에서 도사를 만나 음률을 배운다.

진채봉은 아버지가 죽은 뒤 관원에게 잡혀 경사로 끌려간다. 이듬해 다시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양 소유는 남양 전진교외 시회(詩會)에 참석하였다가 기생 계심 월과 인연을 맺는다.

경사에 당도한 양 소유는 어머니의 친척인 두련사의 주선으로 거문고를 탄다는 구실로 여관(嚥(冠)으로 가장하여 정사토의 딸 경패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과거에 급제한 양 소유는 정사토의 사위로 정해졌는데, 정경패는 양 소유가 자신에게 준 모욕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시비 가춘운으로 하여금 선녀처럼 꾸며 양 소유를 유혹하여 두 사람이 인연을 맺도록 한다.

이때 하복의 세 왕이 역모하려 하니 양소유가 절도사로 나가 이들을 다스린다. 돌아오는 길에 계섬월을 만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는데, 이튿날 보니 하북의 명기 적경홍이었다.

 두 여자와 후일을 기약하고 상경하여 예부상서가 되었다.

이때 진채봉은 서울로 잡혀온 뒤 궁녀가 되었는데, 어느 날 황제가 베푼 주석에서 양 소유를 보고 그 환선시(紈扇詩)에 차운(次韻)하여 애타하게 된다. 해서 까닭을 물어 진채봉과 양소유의 관계를 알게 된 황제는 이를 용서하고, 누이인 난양 공주는 후에 진채봉과 형제지위 맺는다.

양소유는 어느날 밤에 난양 공주의 퉁소 소리에 화답한 것이 인연이 되어 부마로 간택되지만, 양 소유는 정경 패와의 혼약을 이유로써 이를 물리치다가 그만 옥에 갇힌다.

그때 토번왕이 쳐들어 와서 양소유도 대원수가 되어 출전한다.

전중에서 토번왕이 보낸 여자 자객 심요원과 인연을 맺게 되고, 심요연은 자신의 사부에게 돌아가면서 후일을 기약한다.

양소유는 백룡담에서 용왕의 딸인 백룡파를 도와주고 그녀와 또 인연을 맺는다. 그동안 난양 공주는 양 소유와의 혼약이 물리침을 당하여 실심에 빠진 정경패를 만나보고, 그 인물에 감탄하여, 형제가 되어 정경패를 제1공주인 영양공주로 삼는다.

토번왕이 토벌 후 돌아온 양소유는 위국공에 봉하여지고, 영양공주 난양 공주와 혼인하고, 진 궁녀와 또 만나 동침하는 가운데 진채봉을 확인하게 된다.

양소유는 고향으로 노모를 찾아가 경사로 모시고 오다가 낙양에 들러 계심월과 직경홍을 데리고 오니, 심요연과 백룡파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뒤 양 소유는 2처 6첩을 거느리고 화람한 가운데 부귀공명을 누리며 살아간다.

생일을 맞아 종 남산에 올라가 가무를 즐기던 양 소유는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문득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비화에 잠긴다.

이에 9인이 인간세계의 무상과 허무를 논하며 장차 불도를 닦아 영생을 구하자고 할 때, 호송이 찾아와 문답하는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 육관대사의 앞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본래의 성전으로 돌아와 전죄를 뉘우치고 육관대사의 가르침을 구한다.

이에 대사가 설법을 베푸니, 성진과 팔선녀는 본성을 깨우치고 적멸(寂滅)의 대도를 얻어 극락세계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운몽』은 주인공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뜻을 꿈속에서 실현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속의 일이 허망한 한바탕의 꿈인 줄을 깨닫고서야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현실과 꿈, 불교와 유교,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라는 상호대립적 관계 설정을 통해 삶의 의미와 초월적인 삶의 의미를 다룬 『구운몽』에서는 인생의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라는 대승불교의 핵심인 '공(空)' 사상을 핵심으로 유교와 도교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다. 반야심경하면 불자이든 비불자이든 그 경영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오온개공(五蘊皆空)이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을 경구를 들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오온이 공했다 함은 정신이나 물질이나 할 것 없이 그 근본바탕은 자성이 없는 무(無)인 것이다.

물질이 현상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본질적으로 분석해보면 화학적 물리적 적용에 의해서 마침내 부서지고 무너져서 공으로 되기 때문에 어떤 물질이든지 그 실제는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이처럼 불교의 사상을 배경 한 빼어난 명작의 감상을 통해 우리의 심성을 가다듬는 계기도 살고, 지나온 세월동안 어떤 문학이 남아서 빛내어 왔는가 하는 한국 불교 문학의 실크로드를 추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한다.

 

 

 

 

 


일주문
칭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김화랑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엄경에는 ''처음 마음이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끝내는 성불하게 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시 불신하고 언제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더욱이 불신의 마음은 여러 가지 병을 낳게 합니다.

 쇠의 녹이 스스로 쇠를 망치듯이 중생의 번뇌 또한 중생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괴로움 속으로 떨어지게 하여 사바의 고해를 표류하게 합니다.

 매를 맞는 남편, IMF한파, 이혼하는 가정의 부부간의 불신, 친구간의 갈등 등등...

서로를 불신하는 근원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에게 이러한 괴로움을 주시옵니까 라며 원앙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99%의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은 잊어버린 채 단 1%의 원방을 전체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비자의 가르침에 보면 "남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괴롭지 않다''라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르칩니다.

'너 때문에, 아니 왜 나에게 이렇게'가 아니라 '내 할 일을 했어 당연한 일이야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 라고 상각하면 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기대감이 성취되지 않을 때, 특히 사랑의 마음이 기대의 마음이 큰 만큼 원방도 커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망의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불타는 지옥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활활 타는 나의 원망의 불길을 무엇으로 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남을 칭찬해 주는 마음.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의 말 한마디입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면 칭찬해 주는데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저 일을 할 수 없어, 그래 나는 원래부터 좀 모자라지''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잘 해낼 자신이 있어"라는 긍정적인 사고가 바로 신라 천년의 미소 와당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아닐까요?

 

지금부터 우리 모두는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칭찬하며 살아갑시다. 

 | 목차 |
 

| 월간정각도량 | 편집자에게 | 편집후기 |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