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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佛心 해지는 구품사(九品寺)에서 강석근/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강사
山險馬頻蹶 산 험하니 말은 자꾸 미끄러지고
路長人易疲 길 머니 사람은 쉬 피로해지네
驚휔潛入草 놀란 다람쥐는 몰래 풀숲에 들고
宿鳥已安枝 잠잘 새는 이미 가지에서 편안하네
虛閣秋來早 산 속의 절이라 가을은 일찍 오고
危峯月上遲 봉우리 높아 달은 더디 떠오르네
僧閑無一事 스님 한가해 일하나 없는데
除却點茶時 차 마실 시간도 잊어버렸네
<동국이상국집 전집 14권, 遊九品寺迫日>
이 시는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의 <해지는 구품사에서 노닐다>라는 작품이다. 사찰로 향하던 시인의 눈에 비친 해질 무렵의 정경과 아름다운 노정을 시로 쓴 것이다. 이 시처럼 사찰의 정경을 직접 읊고 사찰에서 느낀 소회를 노래한 시를 사찰제영시(寺刹題詠詩)라 한다. 한시의 구조는 전경후정(前景後情), 즉 전반부에서는 경치를 읊조리고 후반부에서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 특징인데, 이 시는 이러한 원칙을 잘 따르고 있다.
기련은 산이 워낙 험해 고달픈 길손의 여정을 노래했고, 함련은 잠잘 곳을 찾는 다람쥐와 산새들의 모습을 나타내었고, 경련은 싸늘한 가을 냉기와 어둠에 묻혀가는 구품사의 밤 분위기를 제시하였다. 시적화자의 시선이 구품사 쪽으로 조금씩 옮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주제는 결련에 있다. 서경으로 이어지던 시적 표현이 결련에서 서정적으로 바뀌면서 시적 탄력이 배가되었다. 시적 화자의 눈에 비친 구품사의 스님은 매우 한가하다. 선시에서 자주 표현되는 이런 한가함은 수행자의 외면적 행동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경지를 의미할 때가 많다. 이 시의 스님은 이런 한가함조차 초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차 마시는 일’은 승가의 한사(閑事)이고 일상적인 일인데, 이런 일상사까지 잊어버릴 만큼 스님의 도력이 높다는 것이 이 시의 주된 메시지이다. 이 구절을 두고 “차 마시는 것도 일이라 하니 승가(僧家)의 한가한 경지는 알만하구나”≪청구풍아(靑丘風雅)≫라고 한 김종직의 평가는 이 구절의 시적 특징과 매력을 구체적으로 대변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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