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문화 유산
인도의 아우랑가바드 석굴과 밀교
심재관/ 불교대학 강사

 

일반적으로 인도 마하라슈뜨라州의 아잔타나 엘로라와 같은 유명한 석굴사원군을 방문한다면 일단 뭄바이에서 아우랑가바드로 이동한 다음, 숙소를 정한 후 차량이동을 하기 마련이다. 이 두 석굴 사원이 대부분의 방문목적지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아우랑가바드 시내 인근에 있는 석굴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우랑가바드의 석굴들도 중요한 불교유적을 남기고 있으며, 불교의 교리적 발전을 이해하는데 한 몫을 담당하는 곳이다. 특히 초기 밀교의 역사를 추척하는데, 이 곳의 몇몇 석굴이 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아우랑가바드 석굴은 10개의 석굴이 5개씩 동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측 석굴’과 ‘서측 석굴’로 부르는데, 서측 석굴은 1-5번 석굴을, 그리고 동측 석굴은 6-10번 석굴을 말한다. 이 석굴들도 여러 시대에 걸쳐 조성된 것인데, 1번과 3번 석굴이 인도고전기의 문예활동에 힘을 쏟았던 바까따까 왕조(4-5세기)시대에 굴착된 초기의 것이라면, 그 외 나머지 석굴들은 대체로 6세기 중반 이후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석굴 가운데, 딴뜨라의 영향이 보이는 6번과 7번 석굴 등이 특히 주목을 끄는데, 이 석굴들은 바까따까 왕조의 몰락 후 등장했던 깔라쭈리(Kalacuri)왕조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에 석굴의 형태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석굴 안쪽의 끝에 스투파나 불상을 모셨던 관행에서, 석굴 가운데에 석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시고 그 석실을 중심으로 탑돌이가 가능한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석굴 내부에는 중앙의 석실을 감싸는 요도(繞道)가 분명히 나타나게 되고 그 요도 뒤쪽으로 별도의 감실이나 석실을 조성하는 경우도 등장하기 시작한다.

아우랑가바드 6번과 7번 석굴이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데, 이러한 석굴사원의 변화는 불교의 사상적 변화와도 일정한 관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아우랑가바드 석굴이 갖는 탄트라 불교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여성적으로 묘사된 불상들의 모습이나 성적인 표현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석굴의 조성과 불상 배치 등이 갖는 만달라의 구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우랑가바드 6번 석굴의 구성은 만달라를 간소화시킨 형태로 이루어졌다. 만달라는 반드시 천이나 종이 위에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 속에서도 표현된다.

6번 석굴은 중앙의 본전(本殿) 3면을 보행로(繞道)가 감싸면서 이루어졌는데, 뒤쪽 보행로에 다시 본전보다 작은 두 개의 석실을 마련하고 안에 불상을 모셨다. 본존불의 양쪽에는 협시보살을 두고 다시 문 밖 양측에 보살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뒤쪽의 두 불상의 협시보살은 문 밖에 새겼다.

뒷 쪽 석실의 두 불상은 각각 선정인과 전법륜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각각 태장계 만달라와 금강계 만달라의 비로자나불로 해석할 수 있다. 태장계 만달라의 비로자나불은 선정인을, 금강계 만달라의 비로자나불은 지권인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인도 서부의 석굴군에서 선정인을 취한 불상은 매우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정인을 취한 불상의 조성은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에서 지권인은 전법륜인의 변형태임을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흔히, 불상의 수인을 통해 개별적인 불상의 종류를 결정하곤 하는데, 만달라와 같이, 어떤 단일한 불교의 사상이 도상 속에 표현되고, 그 속에 불상이 나타날 때는, 그 불상의 수인이 불상의 종류를 확인하는데 절대적인 함수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뒤 쪽의 두 석실이 양계(兩界)만달라를 상징한다는 것은, 협시상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석실 입구 양쪽에 바즈라를 들고있는 보살상과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상이 그것인데, 이들은 각각 금강수(金剛手 vajrapani)과 연화수(蓮華手 padmapani) 보살을 표현한다. 금강계 만달라에서 동서 양측으로 금강살타보살과 금강법보살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 석실들에 표현된 금강수와 연화수 두 보살을 표현한다. 이러한 점에서도 두 석실이 양계만달라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의 본전에 있는 불상과 보살상들의 배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본전의 불상은 의좌(倚坐)의 자세로 앉아 전법륜인을 취하고 있고, 양쪽에 금강수와 연화수가 서 있다.

이러한 배치,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금강수와 연화수를 협시상으로 배치하는 구도는 『대일경』의 기본적인 삼존(三尊)형식이다. 그리고, 이 석굴의 세 개 석실들이 보여주는 배치는 일본 진언종에서 보여주는 만달라 수행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뒤쪽의 두 석실이 암시하는 양계 만다라는 각각 자비와 지혜를 상징하며, 그 두 요소의 결합은 앞쪽의 석실이 의미하는 완전한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한다. 진언종의 만달라 수행법에서 양계 만달라 앞에 놓이는 중앙의 수미단(須彌壇)은 아우랑가바드 6번 석굴의 중앙석실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6번 석굴뿐만 아니라, 아우랑가바드의 7번 석굴도 딴뜨라의 흔적을 보여준다. 6번 석굴과 비교해 7번은 석굴의 구성상 훨씬 복잡할 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즉, 지혜의 상징)의 존상들이 많이 등장한다.

석실 입구의 네 기둥을 지나면 7명의 여존(女尊)을 모신 얕은 좌측 석실과, 하리띠(Har t  阿梨帝)와 꾸베라(Kubera 寶藏神)를 모신 우측 석실이 나타난다. 양측 석실을 지나 앞으로 나가면, 큰 두개의 패널이 가로로 세워져 앞을 가로 막는데, 좌측 패널에는 연화수 보살(관세음)이, 우측 패널에는 문수 보살이 크게 조각되어 있다. 이 판벽 사이를 지나면 본전(本殿)이 나타나는데, 그것의 양쪽 입구에도 존비(尊妃)들이 조각되어 있다. 좌측에는 따라(Tara)가, 우측에는 마마끼(Mamak )가 조각되어 있다.

본전 내부의 불상은 전법륜인을 하고 의좌자세로 앉아있다. 인상적인 것은 실내 정면에,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조각한 두 그룹의 3불(佛)들이다. 이 여섯 구의 부처님은 과거불을 의미한다. 본전의 좌우측에도 조각이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좌측에는 춤추는 여신들이, 우측에는 한 쌍의 남녀보살상이 남아있다.   

7번 석굴도 6번 석굴과 마찬가지로, 이 중앙의 본전을 중심으로 보행로(繞道)가 만들어지고, 뒤쪽에 두 개의 석실과 좌우측 보행로 위에 각각 3개씩, 6개의 작은 석실이 마련되어 있다. 중앙과 뒤쪽의 석실은 모두 불상을 안치했는데, 똑같이 의좌(倚坐)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동일한 수인(전법륜인)을 취하고 있지만, 나머지 좌우측의 석실들은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비어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석굴조성의 형태가 탄트라 불교와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우선, 보행로를 따라 좌우측에 마련된 6개의 공간은 만달라의 형태를 위해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석실들은 승려가 거주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비하라의 방’이 아니다. 비하라일 경우 그 방 내부는 침대로 사용하는 일정한 높이의 좁고 긴 단(壇)이 벽면에 붙어있는데, 그것조차 조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활공간으로 쓰기에는 너무 좁고 누울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협소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방들은, 만달라로서 기획된 이 석굴 속에서, 밀교의식의 일부를 치르기 위한 상징적 공간으로 이해해야 할 지도 모른다. 수행자는 이 방에 들어가, 만달라의 일부로 참여해 특별한 의례를 치렀을지 모른다.

석굴의 형태 외에도, 7번 석굴이 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지혜(般若)를 강조하는 금강계 만달라를 상기시킨다. 금강계 32존 만달라에 표현된 32존상(尊像)가운데 16존상이 여성으로 나타난다. 7번 석굴의 내부는 본전의 내부까지 여신의 관능적인 모습이 잘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 여신들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음 입구쪽의 좌측 석실에 있는 7여존(女尊)은, 흡사 힌두교의 7모신(母神)을 상기시키는데, 이 여존들과 맞은편의 석실에 있는 하리띠 등은 금강계 만달라에서 가장 외원을 형성하면서 만달라의 안쪽을 보호하는 역할로 볼 수 있다.

본전의 입구 좌측에 새겨진 따라(Tara)와 우측의 마마끼는 각각 그 앞쪽에 서 있는 두 보살상의 판벽 뒤쪽에 위치하게 된다. 두 보살상은 각각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로 볼 수 있는데, 그 뒤에 놓은 따라와 마마끼는 그 보살들의 짝으로 볼 수 있다. 이 때 따라는 자비(관세음)가 가져야하는 지혜의 측면을 나타내며, 마마끼는 지혜에 대한 추구, 즉 보리심(문수)이 가져야하는 지혜의 측면을 상징한다고 보아야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금강계 만달라에서 그리는 연화(자비)바라밀과 금강바라밀이 표현된다.

그 외에도, 따라의 양쪽에는 여자 수행원이 한 명씩 있는데, 한 수행원이 바로 옆의 고행자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있다. 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는 남자 고행자의 머리에는 다섯 개의 상투가 있는데, 학자들은 이것을 5불(佛)만달라로 형상화되는 5종자음(種子音: A, Ra, Pa, Ca, Na)을 나타낸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본전 내부의 좌측 벽에 묘사된 춤추는 여신상도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만달라의 4공양보살이 그것이다. 금강계 만다라에서, 4불이 대일여래를 공양하기 위해서 출생한 존재로 ‘4공양보살’ 있는데, 4보살은 춤과 음악, 꽃, 연극 등을 의미하며, 이것이 춤추는 여성상으로 본전 내부에 표현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해석이 비록 학자들의 작위적인 해석으로 그칠 수 있으나, 이 석굴들을 포함한 인도 서부의 일부 석굴들이 밀교의 영향하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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