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생 소나무
최수임/ 경주 정각원 조교

 

지난해 12월경에 보도된 쓰나미의 재앙은 내 인생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해일이 무력하기만한 바닷가의 피서객들을 덮치는 모습은 얼마나 가슴조이고 안타깝게 했던지, 정말 얼마나 끔찍한 광경이었던지….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몇 시간이 지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법당 부처님 앞에 서서 마냥 절을 올리며 실종자들이 모두 무사하기를 기원하면서 한없이 슬픔에 젖어 있었던 지난 연말의 기억은 지금 다시 떠올리기에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이 지구에서부터 어디로 사라졌나하는 의문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불교는 일상생활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틈만 나면 인생이 무엇인가, 삶이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들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아버지의 가르침들은 듣고 돌아서면 나에게는 발랄한 어린 소녀의 일과가 기다릴 뿐인 일상이었다. 고교시절 아버지께 용돈 받는 재미로 참선을 하면서 나에게는 삶의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비로소 참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불교에 관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게 하였고, 대학의 선사상 강의는 나의 의문을 보다 깊이 있게 참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대(四大)와 육근(六根)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존재는 육근이 대상인 육경(六境)을 만날 때 마음(心)작용을 일으킨다. 우리는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을 실상처럼 착각하며 생활한다. 그러기에 한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이 있는 것인가 하는 공허한 관념에 빠져들게 된다. 육근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인데, 이 가운데 물질적인 부분은 육체로 정신적인부분은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육체와 마음의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는 사실을 놓치게 되고, 그리하여 부처님의 인과법을 무시하고 사람들은 고통의 삶에 빠지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에서 고(苦)를 먼저 말씀하신다. 그 가르침의 진의는 이 세상 모든 현상들이 무상한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하나의 현상에 집착하므로 우리는 고통에 빠진다는 것이다.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부처님은 8정도(八正道)의 길을 제시하신다. 8정도의 가르침은 다름이 아니라 원인과 조건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고 몸의 행동과, 언어와 생각을 잘 조율하고 발전시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연 그 날 쓰나미의 재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갑자기 밀어닥친 재앙과 그 재앙의 참혹한 현상을 아무런 대책 없이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님께서는 영원하지 않는 것 속에 영원한 것이 있음을 경전에서 설법하신다. 원각경 보안 보살장에서는 “환(幻)인 몸이 멸(滅)하므로 환인 마음이 멸하고, 환인 마음이 멸하므로 환아닌 것은 멸하지 않나니...”하는 대목은 환(幻)아닌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게 한다. 쓰나미 재앙을 목격하고 이렇게 슬퍼할 것만이 아니라 환(幻)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을유년 새해를 맞이하게 된 시점에서 지난 쓰나미의 보도는 나 스스로의 신행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고 따르고 있으며, 또 갑작스럽게 닥치게 되는 재앙이나 죽음 앞에 너무나 무감각하게 살고 있지 않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의 죽음은 항시 그 사람에게는 갑자기 찾아오는 불청객처럼 온다고 한다. 모든 사람의 죽음의 순간은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죽어가는 자신은 갑자기 찾아오는 느낌으로 이 세상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다시생각하면 일상생활은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게 되는 시간일 수 있다고 하겠다. 인생의 발전의 실마리를 기도와 서원으로서 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것은 이번 지진 해일의 참사가 일깨워 주는 교훈이다. 준비 없는 죽음! 너무나 슬프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수시로 자각하고 체험하며 참선이나 염불등을 통하여 참되게 매 순간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것(道)은 신뢰(信)하고 실행(行)하는데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 바른 불제자의 신행이 과연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 앞에서 삼배 절을 올리는 것은 불자가 스승에게 귀의를 뜻하는 기본예절이다. 또 육바라밀의 하나인 보시의 실행은 나와 남의 관계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가르침들을 배우고 실행하면 우리는 매일 확신에 찬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쓰나미의 재앙이 발생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그 원인과 조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 재앙의 원인과 조건을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 발생한 재앙을 바라보고 한층 인생의 무상함을 인식하게 된것에 뜻을 두고 있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구나 매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동안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생의 무상을 눈뜨게 하는 쓰나미의 보도는 무엇보다도 커다란 일이었다. 그냥 보고, 듣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25년 동안 바닷가에 서서 오랜 세월 해풍에 부닥치면서도 해풍의 저 너머에 ‘변화’와 ‘아픔’과 ‘사라짐’의 진상(眞相)을 모르고 무던히 서있던 소나무처럼, 세상과 나의 관계에 깜깜히 눈멀었던 나에게 쓰나미 참상의 보도는 자연과 인간을 생각하게 하고, 너와 나의 관계를 겸허하게 돌아보게 하며, 해풍 저 너머에서 불어오는 소소한 이야기들에도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제 25년생 소나무는 비로소 푸르른 미래를 향해 솔바람 소리를 내며 비바람에도 묵묵히 서있는 참다운 의미를 알게 되고 그리하여 일상이 되어버린 신앙생활을 다시 되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된다. 끝으로 해일참사의 재앙을 당한 수많은 영가들이 부디 극락왕생하시기를 부처님께 합장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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