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의 인생

이시가미 젠노(石上 善應)1)/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요꼬하마(橫浜)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찾아왔습니다. 꽤 재미있고 밝은 친구였습니다. 그는 항상 친구와 사귀는 것은 가족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자동차로 자신의 세 아이들을 데리고 오곤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태어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다가 저녁 무렵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두 집 아이 모두 합쳐 4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항상 제 쪽에서 먼저 지쳐버렸습니다. 그는 정말로 아이를 좋아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기도 전에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둘째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소식을 듣던 날은 장례식 전날로 그 날 저는 밤차로 교또(京都)에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친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슨 일인지를 물었더니 3명이나 의사를 불러 보았는데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을 물었더니 병명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되풀이하면서 부부 모두 힘들어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저는 교또에 가야만 했고 기차시간도 다되어 인사하고 나오려니, 친구가 아이 얼굴을 한번 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보러 갔더니 관속에 내년에 유치원에 갈려던 아이가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여자 아이라 깨끗이 머리를 단발하고 얼굴은 마치 엷게 붉은 칠을 한 것처럼 홍조를 띄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마치 인형이 누워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는 솔직히 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인사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저는 35일의 날에 친구들과 함께 불공을 올리자고 생각했습니다만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해외에 가고 없었습니다. 딱 한 사람 영국에서 돌아온 친구만 있어 죽은 아이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3명이 함께 불공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3명 모두 파는 다르나 같은 정토종이었으므로 아미타경 1권을 독경하기로 했습니다. 파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만, 서로 잘 맞추어 마음을 담아 읽었습니다. 불공이 끝나고 공양할 때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례식 때 있었던 친구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죽은 아이의 언니가 친구에게 안겨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계속 달라붙어 그 연유를 물었더니 딸이 저는 정토에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도쿄대학(東京大學)까지 나와서 불교학을 공부해 온 제 친구로서는 그런 말을 자기 아이가 했다는 것은 너무도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왜 정토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아이는 왜냐하면 아버지가 그렇게 슬프게 울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답니다.

아이는 정토종 집안이었으므로 정토에는 부처님이 계시고 그곳에 우리들이 가는 것이다. 정토는 극락이라고 하는 아주 좋은 곳이라고 계속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런 극락정토에 동생이 갔는데 왜 아버지가 그렇게 슬퍼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기독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인간은 죽으면 천국에 가고 천국은 좋은 곳인데도 왜 그 육친들은 슬퍼하는 것이냐고 하는 추궁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친구는 죽은 아이가 정말로 부처님의 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슬퍼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슬퍼하는 것을 멈추었다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가 슬퍼하기 때문에 정토에 가고 싶지 않다는 그 아이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죽어서 축하한다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역시 슬픕니다. 그러나 종교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라 해도 그 슬픔을 넘지 않는 한,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자식이겠지요. 저의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서른 즈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너무 어렸던 탓에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있어서 돌아가셔서 슬펐다는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식의 경우는 다르지요. 그 모든 슬픔은 그대로 살아 있는 부모의 몫 일겁니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다른 부모가 자신도 자식을 잃었다고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통함과 억울함을 가진 이가 자신들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잃은 자식을 위해 다시 떨치고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아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남은 부모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를 잃었던 친구가 암에 걸렸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90을 넘긴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로서는 자신이 자식을 잃었을 때를 기억하고 그 고통이 더 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이 죽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불효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다행히도 그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아남아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장례식에 가보니 친구는 상주의 자리에 힘들게 의자를 놓고 손님을 맞고 있었습니다. 무어라고 할 수 없어 단지 힘내라는 인사를 하니 응이라는 말 한마디, 그 말이 제가 들은 친구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미리 그가 준비한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책자의 뒷부분에는 당신이 사람으로 태어나 그 짧은 일생 가운데 단 하루라도 좋으니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하루를 지내기를 외치고 있다라고 실려 있습니다. 또 마지막 가족들에게 남긴 내용으로는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다. 멋있는 가족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은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마지막 인사말인 감사합니다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전에 일본항공 점보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후 그때 불안한 비행기 속에서 남이 있던 사람들이 썼던 유서들이 가족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유서의 마지막은 “감사합니다”였습니다.

그리고, 도쿄 어느 종합병원 백혈병 동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백혈병 동에서 자기가 간호하던 아주 난폭하고 거친 한 남학생에 대해 수기를 썼습니다. 그렇게 난폭하던 그도 결국 죽음을 맞이할 때에 자신을 돌보던 간호사와 남은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러 갈 때 남기는 마지막 말은 감사합니다 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살아있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보다 많이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요.

일본어에는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한국말로 해석할 때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한자로는 有難う라고 쓰지요. 하지만 존재하기 어렵다는 또 다른 뜻도 있습니다. 아리가따이(有り難い), 다시 말해서 아루(有る), 즉 존재한다는 뜻과 가따이(難い), 즉 어렵다는 뜻의 합성어라고도 할 수 있지요.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기적과 같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결국 누구나 죽을 것이므로 지금 이 순간 생명으로 존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가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한 생명이 존재하는 것은 기적적인 것으로 아리가또우, 즉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지금을,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삶은 소중한 것으로 아리가또우 즉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현재 일본 슈쿠도쿠 단기대학(淑德短期大學) 학장, 다이쇼 대학(大正大學)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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