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말씀

무량수경의 염불

홍윤식/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소장


무량수경(無量壽經)은 대승경전 중에서도 반야경과 더불어 비교적 일찍 성립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전은 기원전후해서 성립되었고 5부의 한역본(漢譯本)이 전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강승개(康僧鎧)의 번역본이 많이 유포되었으며 그 주해본(註解本)도 많아 무량수경을 대표하고 있다.

무량수경은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으며 상권은 여래정토의 인과를 설하고 하권은 중생왕생의 인과를 설한다고 신라 승 경흥(憬興)이 설하고 있는 바이다. 여기 여래정토의 인(因)은 48원이며 중생왕생의 인(因)은 염불(念佛)이다. 한편 48원은 염불이 성립하는 원리이며 염불은 48원이 現行하는 사실이라는 상관관계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같은 양자의 관계를 이해함에 의하여 염불은 48원의 명호(名號)이며 본원력(本願力)의 회향이기에 염불함에 의하여 아미타의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48원(本願)과 염불과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염불중생에 있어 본원(本願)의 여래가 내재(內在)함을 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48원은 법장보살의 이름으로 나타남으로 법장보살이야말로 일체중생해에 내재하는 여래라 할 수 있다. 여기 내재란 외재(外在)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반드시 초월에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래는 중생을 초월함에 의하여 중생에 내재하는 것이다. 즉 내재의 여래는 초월의 여래가 나타나는 것이며 초월의 여래는 내재의 여래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감지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阿 陀佛)이란 이와 같은 객관의 여래를 설하는 것이다.

한편 법장보살이란 아미타여래의 중생해(衆生海)에 내재하는 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아미타여래란 법장보살의 원심(願心)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나타나 그 초월의 빛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내재(內在)란 외재(外在)를 거부하지만 초월과는 언제나 같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재한다고 하는 것은 여래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현실의식의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생을 자기라 의식하고 중생의 업고를 진실로 업고(業苦)로서 대비(大悲)하는 것 그것이 여래라는 것이다.

이 같은 뜻으로 보면 내재의 불(佛)은 현실불(現實佛)인 것이다. 따라서 중생의 염불에 현행(現行)하는 여래의 본원도 또한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래정토의 인(因)은 48원이라 하지만 염불왕생의 원(願)은 근본적인 것이다. 즉 염불왕생이란 참으로 현실의식에서 나타나는 행원(行願)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염불왕생이 여래의 본원(本願)이라 하는 것은 여래가 중생으로서 자기를 삼고 중생으로서 평등의 세계에 있는 것임을 나의 원으로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중생으로써 자기를 삼는다는 것은 내재불의 의의이며 중생의 왕생을 나의 본원으로 한다는 것은 현실불의 대비(大悲)인 것이다. 그러기에 염불왕생의 심행(心行)은 중생에서 나타나나 그것은 그대로가 여래 행원의 회향인 것이다. 즉 염불은 여래의 명호이며 욕생(欲生)은 여래의 원심인 것이다.

다른 한편 아미타의 극락정토는 본원 성취의 세계인인 것이다. 그 장엄공덕은 여래 원심의 상징이며, 그것은 대비 원심의 색상(色相)인 것이다. 그 색상은 또한 원심장엄(願心莊嚴)인고로 그대로가 무색 무형인 것이다.

앞에서 무량수경은 48원을 설한 경전이라 하였다. 그렇다고 한다면 무량수경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48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데 주목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우선 48원을 어떻게 분류하느냐 한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여래의 정토에 대한 것과 시방세계에 대한 2대별로 분류하는 것이다. 여기 전자는 여래정토의 인천(人天)과 성문(聲聞) 보살 및 법신과 국토와의 덕(德)에 대한 것이며 후자는 중생과 보살 제불(諸佛)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서 자국(自國)을 장엄함과 더불어 타방세계와의 교섭을 분명히 하려고 하는 의도를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여기서 자국(自國)과 타방의 대립 상에서 아미타와 제불(諸佛)이 있음을 밝히고 있음은 여래 자내증(自內證)의 경지가 원융무애한 것임을 밝히고 인천(人天)과 중생이 있다는 것은 두 국토의 다름을 분명히 하여 중생의 원생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보살은 두 국토에 출입자재한 것은 이에 의하여 정토가 장엄 되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두 국토의 대응 외에 다만 정토에만 성문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은 인천(人天)과 보살과의 귀일의 문법(聞法)에 있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국토정청의 원은 보살의 내덕(內德)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밖에 48원을 알기 위해서는 이상과 같은 분류보다는 오히려 48원 순서에 의한 분류가 더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일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48원의 원심의 현행(現行)은 우리들의 분별지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분류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첫째, 무삼악취(無三惡趣)의 원부터 제 11 필지멸도(必至滅度)의 원에 이르기까지는 정토의 국중의 인천(人天)에 의해 국토를 청정히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11원의 순서상에는 스스로 국중 인천의 덕을 차츰 높여 내면화 해가는 것이 밝혀져 있다.

둘째, 제 12광명무량(光明無量)의 원부터 제 20 식제덕본(植諸德本)의 원(願)에 이르는 9원은 시방세계의 중생을 섭화(攝化)하려는 것이다. 즉자국의 장엄이 타방에 미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 9원상에는 스스로 여래의 법신이 차츰 현실계에 들어오는 상(相)이 나타나 있다.

셋째, 제 21원 구삼십이상(具三十二相)의 원에서 제 48원의 득삼법인(得三法忍)의 원에 이르는 28원은 모두가 보리(菩提)의 무궁함을 원하는 것이다. 자국(自國)과 타방(他方)에 대한 원(願)의 이상은 보살도의 무한 무궁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28원에 대해서는 특히 그 순서를 알기 어렵다. 단지 28원에 나타나는 국중(國中) 인천(人天)이나 타방의 중생은 특히 무궁보리의 원 중에 있어서 의미를 갖는 것임을 알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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