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해외 성지 순례의 길
중국의 불교 성지
김진무/ 불교대학 강사


중국의 불교 전래는 그 시기에 있어서 거의 차별이 없이 다시 우리나라에게 전래되고, 또한 중국불교의 역사적인 전개과정도 역시 우리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에게도 친숙하고 관련이 있는 낙양(洛陽)의 백마사(白馬寺), 구화산(九華山), 보타산(普陀山) 등의 세 곳을 선정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백마사는 바로 중국 최초로 건립된 사찰이고, 구화산과 보타산은 오대산(五臺山), 아미산(峨眉山)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성지로서 유명하다. 구화산은 지장보살의 성지이고, 보타산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성지이며,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 아미산은 보현보살의 성지로서 추앙받는 곳이다.

여기서는 백마사, 구화산, 보타산의 세 곳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 특히 구화산은 신라 김교각스님의 지장보살 응신(應身)으로 유명하여, 더욱 우리에게 친밀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중국 최초의 사찰, 낙양 백마사

중국에서 ‘제일고찰(第一古刹)’이라고 불리는 백마사는 낙양시의 중심으로부터 동북쪽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백마사가 건조된 것은 후한(後漢)시대로 불교 전래후의 중국의 최초의 사찰이다. 광홍명집(廣弘明集) 권1,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 권4의 기재에 따르면, 동한(東漢)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67), 섭마등(攝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불상과 경전을 지니고 백마를 타고 와서, 명제가 칙령을 내려 낙양성의 서양문(西陽門) 밖에 사찰을 조성하여 ‘백마사’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절의 이름인 백마는 바로 섭마등과 축법란이 타고 온 백마에서 유래되었는데, 현재 절 입구 양쪽에는 송(宋)대에 만들어진 두 마리의 백마상(白馬像)이 남아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에는 천왕전(天王殿)이 서 있고, 그 뒤로 대불전(大佛殿), 대웅전 등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대불전에는 무게 1.25t의 대철종(大鐵鍾)이 있고, 대웅전에는 원(元)대에 조각된 십팔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 절의 동쪽에는 13층 정도 되는 약 24m의 제운탑(濟雲塔)이 있는데, 이 탑은 금(金)대 1175년에 세워진 석탑으로 탑의 앞에서 손뼉을 치면 개구리 울음소리를 닮은 메아리가 되돌아온다고 한다. 백마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머물렀으며, 무엇보다 중국 땅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처음으로 세워진 절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지장보살의 성지, 구화산

구화산은 안휘성(安徽省) 청양현(靑陽縣)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뛰어난 풍광으로 중국에서 ‘동남부 최고의 명산’으로 불린다. 구화산에 불교사찰이 처음 세워진 것은 동진(東晋) 융안(隆安) 5년(401)에 배도(杯度)에 의해서이고, 이어서 수많은 가람이 건립되어 불교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나타나지만, 구화산이 지장보살의 성지(聖地)가 된 것에는 바로 신라 33대 성덕왕의 아들인 김교각(金喬覺)스님의 교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송고승전(宋高僧傳) 권20의 지주구화산화성사지장전기(池洲九華山化城寺地藏傳記)에 따르면, 지덕(至德; 756-757) 초년부터 김교각(지장)스님이 구화산에 주석하시고, 건중(建中; 780-783) 초년에 그 지방의 토호인 제갈절(諸葛節) 등이 지장스님을 위하여 사찰을 지었으며, 정원(貞元) 19년(803) 지장스님께서 시적(示寂)하시고, 그 이후 지장스님은 지장보살의 응화(應化)로 받들어지고 구화산이 지장신앙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안휘통지(安徽通志)에 따르면, 지장스님은 정원 10년(794) 99세의 세수(世數)로 시적하였으며, 그의 시신을 독에 안치한지 3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었고 뼈마디에서 쇳소리가 났으며[金鎖骸鳴], 경전에 그러한 현상을 보살의 응세(應世)라 했으므로 제자들은 그를 지장보살이 응세한 것으로 여겨, 그를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 육신보전(肉身寶殿)을 세워 모셨으며, 명(明) 신종(神宗)은 그 탑을 ‘호국육신보탑(護國肉身寶塔)’이라는 탑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러한 원인으로 구화산은 역대로 지장보살의 성지로 추앙받아 송(宋), 원(元), 명(明),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산내에 300여 사찰이 건립되었으며, 수천 명의 대중이 있어 ‘불국선성(佛國仙城)’이라고 칭해지게 되었다. 현재에도 78개의 사찰이 존재하며,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있어 중국정부의 중점적인 문물보호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다.

구화산은 그 전체가 모두 지장보살의 성지로서 추앙받는 곳이지만, 그 가운데 특히 화성사(化城寺)는 지장스님을 위하여 지어진 사찰이고, 지장스님의 등신불(等身佛)을 모신 ‘육신보전’의 소재지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기원선사(禮圍禪寺), 백세궁(百歲宮), 천태사(天台寺) 등이 유명하다.


관세음보살의 성지, 보타산

보타산은 절강성(浙江省) 정해현(定海縣) 동쪽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다. 보타산은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준말이다.

당(唐) 대중(大中) 연간(847-860), 어떤 인도 스님이 이곳에 이르러 열 손가락을 스스로 소지공양하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일곱 색깔의 보석을 받았다는 전설로부터 이곳이 관세음보살이 현현한 성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오대(五代) 시기의 후량(後梁) 정명(貞明) 2년(916), 일본 승려 혜악(慧鍔)이 오대산(五臺山)으로부터 관세음보살상을 일본으로 모셔 가는데, 이곳에 도착했을 때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 없이 보타사(寶陀寺)를 건립하여 모시고, 그에 따라 본래의 매잠산(梅岑山)을 인도의 관세음보살이 머문다는 보타락가(범어 Potalaka)를 빌려 개명하게 되었다. 그 후, 남송(南宋) 소흥(紹興) 원년(1131), 조정에서 보타산의 모든 종파를 선종(禪宗)으로 통일시키고, 가정(嘉定) 7년(1214)에 다시 보타산을 관세음보살 도량으로 선포하여 명실 공히 관세음보살의 성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보타산에는 역대로 끊임없는 불사(佛事)를 일으켜 청대의 건륭(乾隆) 연간에는 3개의 큰 사찰과 88개의 암자, 148개의 기도원이 있었고, 승려는 모두 2,000여명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주요 사찰로는 보제사(普濟寺), 법우사(法雨寺), 혜제사(慧濟寺) 등이 있다. 보타산의 풍광은 바다와 산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흔히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西湖)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桂林)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표현하며, 또한 ‘남해의 불교왕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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