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해외 성지 순례의 길

동남아시아의 불교 성지

임승택/ 불교문화연구원 연구 교수


동남아시아 불교의 개요

일반적으로 불교는 남방의 상좌부(Therav da)와 북방의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로 구분된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동남아시아권 불교는 전자의 남방 상좌부에 속한다. 중심부에 위치한 태국 혹은 미얀마 사람들은 그들의 불교가 상좌부의 전통을 잇는다고 생각한다. 그곳은 예로부터 황금의 땅(Suvannabh umi)으로 불렀으며,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아쇼카(Asoka) 대왕의 전법사로서 소나(Sona)와 웃따라(Uttara) 장노가 파견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의 일이며, 인도차이나 반도에 상좌부 불교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훨씬 후대인 11세기 무렵이다. 이때 맨 처음 스리랑카에 연원을 둔 상좌부 불교가 미얀마에 공식적으로 전래되었고, 이후 타이·캄보디아·라오스 방면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당시 인도차이나의 종교 상황은 혼전 양상을 띠었는데 이것은 15세기까지 지속된다. 즉 상좌부 전통과 더불어, 힌두교·대승불교·딴뜨리즘(Tantrism)이 혼재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 또한 다양한 종파적 특징을 지닌다.   

10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형성된 인도차이나 반도의 왕조들은 불교의 법왕(dhammar ja)이라는 이상을 왕권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다. 미얀마의 파간(Pagan) 왕조라든가 태국의 아유티아(Ayuthia) 왕조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들의 번영과 함께 스리랑카에 기원을 둔 상좌부는 점차 주도적인 위치를 확립해 나갔고,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지역을 석권하였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지역이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에 편입된 것도 그 무렵이다. 또한 대중적인 정령숭배(animism) 및 무속신앙도 여전하였다.

스리랑카를 기점으로 하는 남방불교의 상좌부는 23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지닌다. 이점은 세계의 종교사를 통틀어 유례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방불교 국가에서 사찰은 전통적으로 교육과 사회복지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태국의 붓다다사(Buddhadasa), 베트남의 틱낫한(Thich Nhat Hahn),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와 같은 걸출한 선각자들이 등장하여 자국은 물론 서구사회에까지 널리 불교를 선양하고 있다.

 

성지 순례시의 유의 사항

남방 상좌부의 전통을 따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교도는 전체 국민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태국이나 미얀마 등에서 남자는 일생에 한번 정도 출가를 하는 것이 관례이며, 스님들은 국민적인 귀의와 공경의 대상이다. 아침 일찍 길거리에 늘어서는 탁발 행렬은 매일 장관을 이루며, 보시를 위해 대기하는 재가자들의 얼굴에는 평화로움과 경건함이 스며있다.

2500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이어져 왔을 이 탁발 의례야말로 살아있는 남방불교의 진면모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지역을 순방하는 여행자들은 불교가 단순한 유적이나 유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사원을 비롯한 수행처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그들의 예법에 맞추어 경건한 몸가짐으로 참배에 임해야 한다.  

남방불교 대부분의 국가에는 높이 솟은 황금빛 파고다와 사원들이 도처에 산재한다. 그러한 파고다와 사원은 예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곳 사람들의 정신적 귀의처가 된다. 관광객들은 사원의 한 귀퉁이에 앉아 몇 시간씩 명상에 잠겼다가 돌아가는 재가 불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진지한 모습은 수많은 역사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불교의 생명력을 말해준다.

그러나 현재 동남아시아권 불교 국가들의 내부 사정은 그리 원만하지 못하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오랜 내전의 여파로 인해 교단조직이 매우 위축되어 있다. 태국의 불교는 급속도로 확장되는 산업화와 더불어 전통적인 색채를 잃어가고 있다. 또한 스리랑카에서는 인종갈등 문제와 같이 정치적 불안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최근에 유입되는 기독교 세력은 국민 정서를 이간시키는 역할마저 하고 있다. 바로 이 일에 한국의 기독교가 최전방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곳의 성지를 방문하는 불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도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의 주요 성지

동남아시아의 불교 유적과 성지에 관해서는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몇몇 여행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주요 성지로 꼽을 수 있는 곳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와 캔디(Kandy), 미얀마의 파간(Pagan)과 만달레이(Mandalay), 태국의 수코타이(Sukhothai)와 아유티아(Ayuthia), 캄보디아의 앙코르(Ankor), 라오스의 루앙 프라방(Ruang Prabang), 인도네시아의 자바(Java) 등이다. 이 글에서는 그들 중에서 종교적으로 혹은 문화사적으로 의미를 지닌 몇 곳을 소개한다.

먼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는 약 1200년에 걸친 세월 동안 정치적·종교적 수도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다. 이곳 유적지에는 줄지어 늘어선 선 돌기둥들이 즐비한데, 이들은 그곳이 예전의 궁전 터와 승원 터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곳에서 유독 주목되는 것은 보리수 한 그루이다. 이 나무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었던 자리에 그늘을 드리웠던 바로 그 보리수에서 가지를 쳐 온 것이라고 한다.

한편 캔디의 불치사(佛齒寺, Dalada Malgawa, Temple of the Tooth)는 캔디 호반의 차분한 풍취를 보여 주는 스리랑카의 대표적 사찰이다. 이곳에 봉안되어 있는 부처님의 치아 사리는 4세기경 인도의 카링가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들여온 것으로, 수도를 옮길 때마다 함께 이동했을 정도로 역대 왕조들의 숭배 대상이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지금도 한결같이 이 치아 사리를 나라에서 제일가는 보물로 여긴다.

미얀마의 파간(Pagan)은 불교의 영광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파고다의 도시이다. 거기에는 2천5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파고다가 사라져간 파간 왕조의 열렬했던 불교 신앙을 말해준다. 파간은 1287년 몽고 침입으로 많은 건축물과 문화재가 파괴되었고, 그 후로도 영국 식민지 시절의 문화재 약탈과, 1975년의 대지진 등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파간의 유적은 미얀마 사람들의 잠재된 힘을 느끼게 해주는 상징이다.

한편 만달레이(Mandalay)는 미얀마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부처님의 예언에 의해 세워졌다는 마하무니(Mahamuni) 파고다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지가 있다. 이들 중에서도 쿠도도 파고다(Kuthodaw Pagoda)는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 유명하다. 1857년 민돈(Mindon) 왕은 2천 5백명의 비구가 참여한 대규모 불전 교열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이 때 결집된 삼장을 729매의 대리석 판에 새겼는데, 미얀마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그와 같이 부른다.

캄보디아 앙코르(Ankor)의 유적은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와트가 중심을 이룬다. 전자에 속한 바이욘(Bayon) 사원은 50개의 탑에 4면으로 조각된 216개의 보살상으로 유명하다. 한편 후자의 앙코르 와트는 동서로 1천 40m, 남북으로 8백 2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입구에는 2백 35m에 달하는 탑문이 있는데 그 석벽에는 매혹적인 미소를 머금은 천녀상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외벽을 둘러 싼 인공호수는 그 폭만도 260m에 이르고 전체 길이는 5.5㎞이다.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Borobudur)는 42m 높이의 피라미드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방형의 최하단은 둘레가 1백24m에 이르며 모두 10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층은 건물의 외각을 감싸고 올라가는 폭 2m의 회랑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회랑 좌우 벽면에는 부처님 일대기가 부조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이 유적에 사용된 벽돌을 자그만치 1백만개에 이르며, 부조에 새겨진 등장 인물은 1만명이 넘는다. 이 보로부드르의 파고다와 함께 미얀마의 파간 그리고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는 세계 3대 불교 파고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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