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도량

오유지족(吾唯知足)

이법산 스님/ 서울 정각원장


행복은 그 크든 작든 만족에서 온다. 매사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괴로울 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만족을 모른다. 그런데 이 만족이란 것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불행은 지나친 탐욕에서 온다. 이 세상 누구인들 욕심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 욕심이 능력을 지나칠 때는 반드시 부작용이 오게 되어 있다. 전기도 용량을 초과해서 사용하게 되면 전선이나 용기에 열이 나면서 과부하 현상으로 파열되어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 항상 적당량을 잘 조절하여 사용하면 안전하고 편리하여 활용도를 향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탐욕심은 꼭 성냄을 불러오게 한다. 욕심이 실현되지 않아 화를 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다한 욕심을 내다가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면 피가 솟구치고 눈에 충혈이 되면서 눈앞이 캄캄하여 하는 일이나 보이는 대상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실수하게 된다. 어리석음이란 곧 성냄이 원인이 되고 성냄은 곧 탐욕심이 원인이 된다.

이 세상에 탐욕만큼 무서운 불길도 없다. 탐욕의 불길은 우주의 물질과 인간의 정신계까지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탐욕심은 지혜의 종자를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에 탐욕이 넘치면 이성적인 판단이 없어진다. 오직 모함과 시기와 질투로 투쟁과 파괴만이 해결사로 등장하기 때문에 탐욕은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온갖 괴로움의 원인을 살펴보면 탐욕이 근본이 된다. 따라서, 탐욕을 없앤다면 괴로움이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중생의 마음에서 탐욕을 조절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수행이다. 그러나 그 이글거리는 탐욕의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면 생의 괴로움은 결코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경전에서 마음의 세 가지 독(毒)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고 하였다. 수행은 곧 이 삼독심(三毒心)을 닦아 없애는 것이다. 이 삼독심의 뿌리는 깊고 깊어서 참으로 없애기 어렵고, 또 이것으로 인하여 괴로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것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이 열반이며, 이것이 마음에서 완전히 제거되어 버리면 마음은 항상 즐겁고 생활은 행복하게 되어 이를 극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복의 길은 스스로 이 삼독심을 다스려 삼독심의 가장 큰 원인인 탐욕심을 줄여 가는 것이다.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탐욕을 지니고서는 해탈하기 어렵다. 탐욕을 떠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출가라 할 수 있다. 탐욕을 내지 않아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게 되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탐욕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

출가는 해탈을 위한 행위이다. 진정한 출가의 의미는 삶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탐욕을 떠나는 수행을 하는 자이다.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 절에 사는 것만이 출가가 아니다. 사원은 이러한 수행을 위한 전문 수련도량일 뿐이다. 설사 절에 살더라도 탐욕을 떠나는 수행을 하지 못하고 욕심내고 성질부리고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출가 의미는 없는 것이다. 사는 곳이 어디거나 탐욕을 버리는 수행을 하며 성질 나는 것을 참고 어리석은 짓을 줄여 가면 탐욕심이 줄어들고, 이 탐욕심이 줄어가는 것만큼 행복의 수치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활습관을 변화시켜 간다면 극락으로 가는 행복의 길은 날로 가까워질 것이다.

이 세상 누구나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자기 분수에 맞게 욕심을 내어야지 분수 넘치게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용량이 초과되어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분수에 맞게 산다는 것은 자기의 능력에 맞게 사는 것이다. 즉, 업(業)대로 사는 것을 말하지만, 이 업은 짓는 대로 가는 것이다. 업은 마음의 지식과 몸의 기능으로 익히는 것이다. 정당한 지식을 익히고 몸의 행동을 고쳐나가면 지혜로운 마음에 품위있는 생활 습관을 길러 자연히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현재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자기 위치를 확인하며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팔대인각경(八大人覺經)에 있는 말씀이다.

“사람이 만족할 줄 모른다면 오직 더 많은 것을 구해서 죄악만 키우는 결과가 된다.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늘 만족하고자 염(念)하고 가난하여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지켜 오직 지혜를 닦는 일에만 정진해야 할 것을 안다.”

만족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권력이 있고 부자라고 자만해 하지 않고, 가난하다고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자만해지면 그 때부터 기울게 된다. 마치 ‘달도 차면 기울 듯이’ 그에게 더 이상의 권력과 부는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가난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는 열린공간이기에 펼쳐나아 갈 수 있는 행복의 공간은 한없이 많다.

행복은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대한 탐욕을 부리지 말고 작은 희망으로 열심히 지혜를 닦고 노력하면 행복은 분명 나에게로 찾아 올 것이다. 봄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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