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佛心
죽주의 만선사에서 노닐며
강석근/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강사
曲澗水微咽 비탈진 계곡에는 물소리 나직하고
空巖雲自廻 텅 빈 바위 위에는 구름 홀로 맴도네
烟輕霜練靜 가벼운 연기 흰 깁처럼 깨끗하고
山 畵屛開 고운 산세는 그림병풍을 펼친 듯 하네
黃犢?童去 송아지 목동 태워 돌아가고
靑猿送客來 원숭이 길손 보내고 돌아오네
爲憐風景好 아름다운 풍경이 하도 정겨워
下馬更 徊 말에서 내려 다시 서성이네
<동국이상국집 전집 10권, 遊竹州萬善寺次板上諸學士詩韻>
이 시는 이규보의 <죽주(竹州)의 만선사(萬善寺)에서 노닐며>라는 작품이다. 죽주는 지금의 경기도 용인과 안성의 일부였던 죽산(지금의 안성)의 옛이름이다. 이 시처럼 사찰의 정경을 노래한 작품들을 사찰제영시(寺刹題詠詩)라 부른다. 농촌의 서경을 읊은 시를 흔히 목가풍(牧歌風)의 시라 하는데, 이 작품을 아름다운 목가풍의 시로 규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시의 제목에 절 이름은 들어 있지만 불교사상이나 불교정서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만선사는 자연의 또다른 모습으로만 그려질 뿐 사찰의 구체적인 윤곽은 시에 나타나 있지 않다.
기련은 산비탈에 위치한 만선사의 정경을 졸졸거리는 물소리와 한가하게 맴도는 구름으로 표현했고, 승련은 가볍게 떠도는 흰 헝겊 같은 연기의 모습과 병풍처럼 만선사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원경을 그렸다. 전련의 오가는 송아지와 원숭이의 움직임은 분명 동적인 심상을 가졌다. 앞구가 정적이기 때문에 동적인 이미지를 주는 이 구절은 시의 구조를 훨씬 탄탄하게 해준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구절에서 오히려 정적인 심상을 더 강하게 느낀다. 이 점은 우리가 완전한 정적에서 조용함을 느끼기보다는 산새들이 우는 산중에서 고요함을 실감하는 이유와 같다. 이런 원리로 인해 동적 심상이 오히려 정적으로 부각된다.
주제는 결련에서 드러난다. 만선사의 풍경에 취해 서성이는 화자가 강조된다. 이 구의 중심시어는 ‘다시[更]’인데, 시적 긴장을 극대화시켜주는 시안(詩眼)이기도 하다. ‘다시[更]’라는 시어는 시적 화자가 차마 떠나지 못하고 거듭 말에서 내릴 만큼 만선사의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 시어는 독자들의 마음을 만선사로 이끄는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이기도 하다.
자연을 노래한 맑고 건강한 이 시는 한 편의 짧은 법문이고, 만선사는 청정한 마음속의 법당이 된다. 마음을 열고 이 시를 읽으면 누구나 이 감동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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