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문화 유산

물 아래, 물 위의 나가르주나콘다

김미숙/ 불교대학  강사


“불교 예술의 보고(寶庫), 나가르주나콘다(Nagarjunakonda)!” 그 곳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아한 신성(神聖)이 깃들어 있는 ‘예술적 표준’이 있다. 나가르주나콘다의 장엄한 건축 예술과 섬세한 부조 작품에서 배어나는 탁월한 장인의 기풍은 보는 이라면 누구나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르주나콘다의 문화 유산은 정작 그 가치에 비해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채로 수장(水葬)되고 말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불자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여길 나가르주나콘다라는 이름이, ‘나가르주나의 언덕’이라는 뜻이며, 전무후무할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대승 보살 나가르주나(龍樹, 서기 150∼250년경 생존)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남인도의 불교 역사와 대승 불교의 발전사에서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또한, 나가르주나의 일생 자체가 마치 신화 속 이야기처럼 비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나, 이 지역 출신이었던 그가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냈다는 전설을 뒷받침해 주는 명문(銘文)이 이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여, 신화 이상의 증명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우리가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은 ‘과거로의 여행’이고 ‘신비로의 여행’이라는 말을 흔히 하고 또 듣게 되지만, 나가르주나콘다를 둘러보는 것은 참으로 ‘신화적인 과거의 신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현재,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자리한 나가르주나콘다는 인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자 남인도의 중요한 수원(水源)인 크리슈나 강의 중류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나가르주나콘다로 가기 위해서는 주 수도인 하이데라바드에서 남동쪽으로 150킬로미터 가량 더 가야 한다.

나가르주나콘다 유적은 1926년에 고고학자였던 사라스와티(A. R. Saraswathi)에 의해 처음 발견되기까지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땅이었다.

1927년에야 비로소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나가르주나콘다 지역에서는 무려 20만 년 전인 선사 시대 유적부터 다양한 역사층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초까지 융성했던 불교 문화 유적들이었다.

부처님의 일생을 묘사한 흰 대리석 조각들, 스투파와 스투파를 봉안했던 탑원(塔院), 승원(僧院)을 비롯한 불교 사원 유지(遺址), 일반 가옥 및 목욕소(沐浴所) 등등……. 크고 작은 수많은 건축물과 부조(浮彫) 작품들은 남인도 미술사상 매우 가치 있는 유산들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 예술에 공헌했던 주역은 이크슈와쿠(Iksvaku) 왕조였다. 고대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을 지배하던 사타바하나(Satavahana) 왕조를 계승한 이크슈와쿠 왕조는 4명의 왕들이 대를 이었고 겨우 200년 정도 번성했던 왕조였다. 하지만 이크슈와쿠 왕조기에 완성된 문화 유산은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인도 문화사에 오래도록 방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크슈와쿠 왕조 때 수도였던 비자야푸리(Vijayapur )는 그 당시 불교도들에게는 가히 “꿈의 도시”와 같았으며, 지형상으로도 천연 요새였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중심지였다고 전한다. 특히 이크슈와쿠 왕가의 여성들이 불교를 크게 외호하여 불교 대학도 설립하였는데, 간다라, 카슈미르, 중국, 미얀마 등지에서도 찾아올 만큼 명성 높은 대학이었고, 30여 곳이 넘는 사원이 번성하였다.

그런데 서기 7세기, 크리슈나 강 지역을 둘러보았던 현장(玄?) 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부처님께서 적멸에 드신 이래로 천 년 동안 해마다 천 명의 범부와 승려가 함께 안거에 들어갔으며, 안거를 해제하는 날, 모두가 아라한을 증득하였고 그 신통력으로 허공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 마지막 백여 년 이래로 다시는 승려들의 왕래가 없어졌다. … 그 뒤 이 곳은 사람의 자취가 끊겨 황폐해졌고 승가 대중도 살지 않아 쓸쓸한 곳으로 변하였다.”라고 하면서, 줄지어 세워진 가람들은 텅 비어 심하게 황폐한 상태라고 기록하였다. 이미 7세기경에 불교는 힌두교에 밀려서 불교 사원은 적막해지고 사람의 발길도 끊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크슈와쿠 왕조의 중심 지역도 왕조의 멸망과 함께 버려지고 흙과 잿더미에 덮여서 미스터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20세기에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나가르주나콘다가 다시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라 조명을 받은 것도 잠시였다. 크리슈나 강에는 댐이 건설되어 다시 또 수면 아래서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1950년, 관개와 수력 발전을 위해서 크리슈나 강에 세워진 댐은 높이 126미터, 길이 1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는 세계에서 3번째 가는 크기의 콘크리트 댐 건축으로서 그 위용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나가르주나사가르’라는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마치 바다를 방불케 하는 인공 호수이다.

자와하를랄 네루(Jawaharlal Nehru)는 나가르주나사가르가 바로 “현대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사원 중 하나”라고 말했는데, 사실 나가르주나콘다를 찾는 이들의 태반은 나가르주나사가르의 위용을 보기 위해서 올 것이다.

인도 정부는 이 지역이 완전히 수몰되기 직전에, 댐 아래 수장될 운명이었던 유물들을 발굴하여, 나가르주나사가르 한가운데에 인공 섬을 만들고 박물관을 세워서 유물들을 보관해 놓았다. 지금은 인도 역사상 최초의 섬 박물관이라는 유명세도 함께 누리면서 매일 관광객들을 배로 실어 나르고 있다.

물 아래 전설의 불교 사원과 똑같은 형태로 지어진 나가르주나콘다 박물관에는, 석기 시대의 도구 유물부터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 『붓다차리타』(Buddhacarita), 『디비야바다나』(Divyavadana), 『자타카』(Jatakas) 등을 소재로 하여 새겨 놓은 불교 조각 작품들로 가득하며, 마치 실사(實寫)와도 같이 생생한 장면 묘사로 보는 이들의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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