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발장 속의 보물
이호연/ 경주 정각원 조교
막 중학교에 들어간 해 설 전날 아버지 운전을 해 주시던 아저씨께서 늦은 밤에 집으로 불쑥 찾아오셨다. 잠옷을 입고 있던 나는 불청객 같은 생각에 짜증이 나면서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늦은 밤에 남의 집을 찾았는지 궁금해서 살며시 아버지 옆에 앉았다. 갑자기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얼어붙은 손으로 조그마한 꿀 병 하나를 내미시는 아저씨는 나를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아저씨는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였는데, 명절이 되니 재능도 하나 없고 고아인 자신을 믿고 선뜻 일자리를 주시고 부모님처럼 따뜻하게 잘 대해주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분을 존경하기 시작한 것이.
그러다 나의 대학 생활 2년이 끝나갈 즈음, 여러 가지 이유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 큰 규모의 사업이었기에 손해의 규모 또한 감당하기 힘든 정도였다. 워낙 씩씩한 성격이라 덤덤한 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남들보다 더 활기차게 대학생활을 했지만, 결국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따금씩 그때는 아마 참는데 한계를 느꼈던 모양이었다고 스스로 변명같은 위안을 삼기도 한다. 힘든 현실만큼이나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한 자존심과 불편함으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 반듯하시던 분께서 약주를 드시고는 전화를 하셔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목소리에 아르바이트를 하다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고 말았다. 남들보다 넉넉한 살림 덕에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지내왔던 옛날에 대한 고마움 따윈 잊고 힘든 현실을 아버지 탓에 돌리고는 원망하며 미워하기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법당에 앉아 울면서 기도를 하면서도 부끄러워 부처님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리석고 한심한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 무릎이 닳도록 절만 하다 쓰러졌다. 그러다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은 부처님의 인자하신 미소에 반해 그날 그렇게 법당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돈이 많은 것은 자랑도 아니며 돈이 없다는 것은 조금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것도 아니니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아래로 봐선 안된다던 말씀도, 초등학교부터 다른 친구를 위해 무겁게 도시락을 항상 두개씩 챙겨주시던 엄마도, 매달 식구들 각자 통장을 모아서 억지로 따라가기만 하던 고아원도 법당에 쓰러져 펑펑 울던 그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절을 한 무릎이 아픈 것이 아니고, 그런 부모님의 가르침을 기껏 이렇게 밖에 소화해내지 못했던 부끄러움에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고작 이런 생각으로 부처님 공부를 한다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존경’이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타격으로 아직은 힘든 생활이 이어지는 우리 집에는 나만의 보물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신발장에서 아버지의 구두를 보고 나는 가슴이 미어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구두 안이 물에 젖어 잉크가 번진 채 엉망으로 굳어져있는 신문지로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 의아한 생각에 뻣뻣하게 굳어있는 신문지를 들춰보니 구두가 닳아서 밑창까지 구멍이 뚫려선 신문지를 대고 신고 다니신 거였다. 워낙에 근검절약 하시는 꼿꼿한 분이셨지만, 지금은 형편상 새 구두는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당신이셨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상품권이 생겨서 아버지와 같이 구두를 사러 가는데, 표현은 안 하시지만 어린 아이마냥 들뜬 표정이 역력하셨다. 그런데 새 구두는 신발장에 넣어 두기만 하시고, 그 헌 구두만 매일 밖에 나와 있는 것이다. 이상해서 구두 안을 보니 신문지를 빼고 수선집에서 밑창만 바꿔 오신 것이었다. 그때도 또 한 걸음 쳐져 아버지의 마음을 따라간 것이었다.
그러고 며칠 후 아버지께서 당신은 필요 없으시다며 형태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꼬깃꼬깃 접힌 상품권을 한 장 주시는 거였다. 그 상품권이 아버지 지갑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되어 왔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품권을 내미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거절하지 않고 받아서는 아껴놓을까 하다 금방 생각을 바꿨다. 아버지께 선물이나 용돈을 받았던 적이 그리웠기에 꼭 아버지가 주신 것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가선 나도 구두를 한 켤레 샀다. 그리고 신발장 아버지 구두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부처님의 깊고 넓은 진리의 바다는 다함없는 자비로 채워져 있기에 만 중생의 만가지 쓰임에도 한 방울 줄어듬이 없듯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너무 헌신적이기에 그 욕망은 아귀도에 떨어진 사람과 같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경’이라는 단어를 알게 해주신 분,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주신 분, 불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고 깨우치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분, 베품을 알게 해 주신 분, 난 그 분을 너무나 당연히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한없는 사랑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으로 의심하면서 말이다.
탐욕·성냄·어리석음 이 세 가지는 죽음에 이르는 독약이라는 것을 늘 어린 불자들에게 가르치면서도 나 스스로는 어리석음을 내어 결국 그 어리석음이 나 스스로를 태운 것이다.
가끔씩 난 신발장을 열어 나란히 놓여진 구두 두 켤레를 보며 미소 짓는다. 신고 싶은 마음이 날 때면 옆에 놓여진 아버지 구두를 보면서 그냥 그 자리에 두고는, 아버지의 헌 구두를 본다. 그렇게 우리 집 신발장 속에는 마음 가득 미소를 주는 나만의 값진 보물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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