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인연의 끈, 기도의 힘
허남결/ 윤리문화학과 전임강사
오랫동안 무늬로만(?) 불자로 살아오다가 지난 봄 어느 날부터 개인적인 일 때문에 부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동국대학교에서 전임교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고 관련서류를 제출하고 난 뒤 갑자기 신심 깊은 불자(?)가 되었던 것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특별히 할 일도 없어 주변의 권유로 우선 삼칠일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일산에서 (사)한국불교연구원 법당이 있는 종로의 창덕궁 앞까지 매일 새벽길을 달려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피곤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차선이 안 보일 정도로 장대비가 내린 적이 많아 교통사고의 불안에 떤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문득 사람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 하나 잘되기를 빌기 위해 평소에 타력신앙 운운하며 곱지 않게 보았던 기도 정진을 내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하게 될 줄이야!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나의 소원성취(?) 기도는 이런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경주시 인근의 감포읍이다. 당시는 월성군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때에는 기림사나 골굴암으로 소풍을 다녔고, 중학교 수학여행은 쌀이 든 봉지를 들고 석굴암으로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수욕은 대왕암 앞바다에서 했고, 동급내기 여학생들과는 오어사나 보경사로 곧잘 어울려 다녔다. 허물어진 감은사지에서는 텐트를 치고 뜻도 모르는 유행가 가사를 읊으며 속절없는 감상에 젖기도 했다. 내가 새삼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꺼내는 것은 그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은 곳에서 성장과정을 거쳤다는 내 삶의 한 자락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정서적으로 이미 불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지역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불교신자로서 딱히 신행생활을 제대로 한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그러던 내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불상 앞에 무릎을 꿇고, 그 분의 거룩한 명호를 간절하게 되뇌게 되다니! 불심 깊었던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아마도 가증스럽게(?)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절에 다니라고 했을 때에는 듣는 척도 하지 않더니, 하시면서 말이다.
본격적인 심사가 진행되면서 마음 졸여야 할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정말 불가사의하게도(?) 일은 좋은 쪽으로 잘 풀려 나갔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기도에 매달렸다. 삼칠일 기도가 끝나면 다시 사십구일 기도에 들어가는 식으로. 그러던 중 백일기도 회향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무더운 여름날 오후, 드디어 임용이 확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작년 여름 피안으로 건너가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두 눈가가 뜨거워졌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나는 조용히 법당으로 들어가 촛불을 밝히고 부처님 앞에 머리를 숙였다. 잠시 침묵의 정적이 흘렀다. 사람의 정성이 기도의 영험으로 증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기도정진을 이끌어 주셨던 불교연구원의 도반들 얼굴이 하나 둘 눈앞에 아른 거렸다. 모두들 자기 일처럼 새벽과 오전으로 나누어 하루도 빠짐없이 진심으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보살들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그 기도의 공덕을 회향할 일들만 남았다.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일,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돌봐 주신 주위의 많은 어른들과 그동안 애태운 가족을 성심성의껏 보살피는 일 등이 모두 나의 과제가 되었다. 물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응용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을 작정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불연 깊은 곳에서 태어나고 우여곡절 끝에 동국대학교에 들어와 지금까지 불법과 함께 살 수 있는 일대사인연을 누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보이지 않는 인연의 그물망 속에 갇혀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념에 잠기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얼마나 미성숙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어떤 점에서는 이제 서야 비로소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기도의 영험만, 그것도 나 개인의 이익을 염원한 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흐르고 말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한번쯤 독특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게 마련이며, 이 때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키는가가 나머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불자라면 기도의 공덕만 믿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밤새워 기도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법음은 제대로 듣고 올바로 실천할 때, 그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 차게 되는 이치를 갖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게 더 큰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그 방편으로 나의 조그만 소원을 들어 주셨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 할 길이 더욱 멀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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