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길
사경(寫經) 기도
이법산 스님/ 서울 정각원장
사경(寫經)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經典)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베껴 쓰는 일은 신앙, 수행, 포교적인 면에서 큰 공덕이 있다. 그러므로 금강경이나 화엄경 법화경 등 모든 경전에서 신행(信行)과 유통(流通)에 관하여 사경공덕을 크게 찬탄하고 있다. 사경의 역사는 경전이 결집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으며 초기 결집 당시에는 종이와 붓이 없으니까 암송으로 마음에 새기고 부처님을 믿는 마음을 다지고 의미를 실천수행하며 남에게 전해주는 포교를 하였겠지만, 문자를 익히고 글자를 표방하고 나뭇잎이나 돌에 경전을 쓰거나 새겨서 남에게 전하거나 후손에 전달하면서 사경의 의미와 공덕은 크게 칭송되었다.
첫째, 사경을 하면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신심을 굳게 하며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이 세상에 정신이든 물질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하기 때문에 모두가 괴로워 하지만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행복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경전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종이에 베껴 쓰면서 부처님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밝아짐을 느낄 수 있다. 사경을 하면서 동시에 그 경의 변상도(變相圖)를 그리기도 한다. 경전에는 그 경이 설해지는 때와 장소와 청중과 환경이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그 경전의 성립을 확신하게 함이다. 사경을 할 때는 반드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예를 올리고 경전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사경지(寫經紙)에 쓰기도 하지만 한자 쓰고 절 한번 하는 일자일배(一字一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사경기도는 먼저 신심을 돈독하게 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큰 효능이 있다.
둘째, 사경은 경전의 글자를 익히고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수행에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전의 글자는 부처님 말씀의 상징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금강경(金剛經)』을 사경할 때는 금강경의 의미를 마음에 담고 『화엄경(華嚴經)』을 사경할 때는 화엄경의 말씀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경전 속의 부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실현하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아 실천하면 할수록 부처님 같이 우리의 마음도 닮아 가게 될 것이다.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 마음 같이 되어 버리면 번뇌망상이 없이 밝은 지혜가 충만한 부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경은 깨달음 즉 부처로 가는 수행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사경하는 것은 나의 수행이기도 하지만 경전을 베껴 써서 남에게 전하여 불교를 가르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법포교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경전을 마음대로 인쇄하여 널리 유포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사경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고 전달하며 후손들에게 남겼기 때문에 사경하는 공덕은 지금보다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경전을 많이 인쇄하여 널리 유포하면 경전 한 권 모시고 공부하는 것이 부처님 한 분 모시고 수행하는 공덕과 같으므로 부처님의 법문을 남에게 보시하는 법공양(法供養)은 성불로 가는 큰 공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거나 읽고 수행하면 번뇌망상의 괴로움을 벗어나 걱정근심이 없는 즐거움의 나라 즉 극락세계로 가는 발심을 하게됨으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도 불경을 베껴써서 보시하는 공덕을 크게 찬탄하고 있다.
옛날 인도에서 종이가 없었을 때는 패다라나무 잎에 경전을 새겼기 때문에 패엽경(貝葉經)아라 하였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범어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 중국에 많은 사경이 널리 수용되었다. 돈황(敦煌)의 막고굴(莫古窟)에서 수(隋), 당(唐) 시대의 사경이 많이 발견되었다. 나무에 새겨 탁본하여 제작하는 목판 대장경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경으로 경전을 제작하여 유통시켰으므로 불교 포교적인 면에서 사경공덕은 크게 찬양되었다. 물론 신앙과 수행적인 면이 훨신 더 무한의 종교적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포교가 없이는 종교의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볼 때 불경(佛經)의 광선유포(廣宣流布)라는 목적은 부처님이나 보살의 원력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 권43과 많은 국보 보물급 사경이 있다. 고려 중엽 대장경목판 불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역시 사경으로 경전을 공부하고 유통하였으므로 사경공덕은 불교포교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억불 아래서도 사경기도는 지속되어 오늘에 이러기까지 불교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근래 각 사찰에서 사경기도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 사경기도는 정신을 집중시키고 잡념을 제어할 수 있는 마음을 선전의 경계로 인도하는 참으로 좋은 수행방법이다. 특히 먹을 갈아서 묵향(墨香)에 젖으며 부처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하얀 종이에 그리며 가만히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말할 수 없는 행복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은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 지장경, 화엄경 등의 사경지가 제작되어 불교용품점에나 사찰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틈틈이 사경기도를 할 수 있고, 또 사경한 작품을 병풍이나 액자로 제작하여 생활문화의 예술로 활용하기도 하고 차곡차곡 쌓인 사경지를 모아 사경탑을 조성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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