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말씀

반야 바라밀다의 길

조용길/ 불교대학 학장


우리는 현재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가르쳐 주신 인연의 연기적(緣起的) 세계에 살고 있다. 이 인연이라는 연기의 상대적인 세계는 자연과의 인연 세계와 인간의 인위조작적인 인연 세계로 구별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자연과의 세계는 무작위의 존재의 힘의 작용과 반작용에 의한 순연(順緣)의 세계로, 여기에는 자연의 생멸 관계가 있는 그대로인 자연 그것으로 윤회,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연인과와 인연에 순응해 오다가 마음이라는 인연을 일으켜서 그 마음을 천지 자연과 우주 만유에 인간의 이기적인 욕탐으로 말미암아 평화 자유의 질서를 무질서로 전환시켜 정신 문화와 물질 문명을 복잡하게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자연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너무 과다한 생각과 욕심, 성냄과 어리석음을 쓰고 물질적 욕구의 무한한 추구로 인해 극락정토같은 이 우주세계 자연에 6도 윤회의 어렵고 힘든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백지에 엉망진창인 문화와 문명을 쌓고 부수고 전쟁하고 또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5욕락(慾樂)에 빠지고 탐진치의 3독심(毒心)으로 인해 이 세계는 그 끝없는 윤회의 세계를 돌고 있는 현실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세계의 길흉화복, 우비고뇌, 생노병사의 근본 원인은 무명(無明)이라고 직시하셨고 이 모든 것들의 생성과 소멸은 자연 인과에다 인간 마음 인연의 조작에 의한 끝없는 생멸의 인과 작용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원래 낮과 밤은 없지만 밝음과 어둠은 고정적으로 있다. 이 세상에 보이는 세계- 즉 관념적이든 개념적이든 눈으로만 파악된 객관세계는 낮은 낮이고 밤은 밤으로, 밝음은 밝음이고 어둠은 어둠으로 착각되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은 밝은 기운과 어두운 기운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상대성의 세계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그 밝은 태양과 같은 밝은 기운과 그 밝은 빛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기운을 각기 쓰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일체 삼라만상은 밝은 마음의 인연과 어두운 마음의 인연으로 그 생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있는 그대로의 인연의 세계를 직시하고, 그 자유로움과 그 평등한 본성인 해탈과 열반의 무애자재(無碍自在)한 무아성(無我性)과 공성(空性) 그대로인 밝은 쪽의 마음의 인연대로, 긍정적 적극적 열정적인 태도로 6바라밀과 10바라밀의 서원을 세워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밝은 마음의 인연을 성취하는 공부며 수행인 것이다.


55 이상의 밝은 마음의 인연은 45 이하의 어두운 마음의 인연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이 세상 우주의 기운이 100이라면 70 이상의 맑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즉  밝고 맑은 우주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쓰기 위해서는 늘 심성의 정화를 통해 3학(學)인 계(戒), 정(定), 혜(慧)를 유지시켜야 한다. 이것은 계와 정을 유지시키므로서 직관할 수 있는 깊고 넓은 통찰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깊고 넓은 통찰력이 깨달음의 길이고, 나와 남을 살리는 길이고, 자타가 성불을 다 같이 누리는 길이다. 이러한 내용의 터득을 무명, 즉 어두운 기운을 물리친 반야 바라밀다의 길이라고 한다.


인생은 짧고 힘든 것이라고들 하지만 부처님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아와 공과 이를 성취한 반야의 세계에서는 인생은 길고 긴 것이며, 할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며, 희열과 환희의 해탈·열반의 길이 탄탄대로 열려 있는 세계이다.

 이 무한대의 세계는 발견되기도 하고 깨닫게 되기도 하는 세계이며 그러므로 세계가 세계가 아니고 인생이 인생이 아닌 동체대비의 생명의 가치가 약동하는 정토(淨土)의 세계가 바로 현재 이곳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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