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도량

자유 평등 평화 그리고

이도업 스님/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지금 이 시간 지구촌의 현실은 암담하다. 분열과 불신, 투쟁 내지는 전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나라 밖에서는 이라크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과 노인들과 죄 없는 어린 아이들까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나라 안으로는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의 폐지 내지 개정으로 여야가 대립·갈등하더니 급기야 충청권으로의 수도 이전 문제가 헌재에서 제동이 걸림으로써 여와 야, 보수와 진보, 수도권과 충청권 등이 철천지 원수마냥 대립하고 있다. 과학과 민주주의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은 수준에 와 있다고 하는 오늘날, 그 어느 때 보다도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은총으로’를 부르짖는 소리가 큰 지구촌의 이같은 현실은 왜 이럴까? 과학의 발전도 민주주의 이론도 종교의 부르짖음도 이 말세적인 현상을 치유할 수는 없단 말인가.

법화경에 오탁악세(五濁惡世)라는 말이 있다. 다섯 가지로 혼탁되고 악성화 된 세계라는 뜻이다. 오탁(五濁)의 두 번째가 견탁(見濁)인데 사상의 혼탁, 보는 견해의 혼탁이란 뜻이다. 견해가 각기 혼탁되어 있기 때문에 분열하고 대립하고 투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왜 같은 사안을 놓고 보는 견해들이 그렇게도 다를까. 부처님께서는 벗어나라고 가르치신다. 지금까지 지어온 인간 개개인의 업(業)과 욕망 때문이니 그 업과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그 업(業)과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갈등과 불신, 불안과 분열의 벽을 넘어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있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생의 눈에서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의 눈으로 현실을 봐야한다. 중생의 육안(肉眼)으로 보면 이 세계는 천차만별로 달라서 악의 축이 있고, 선의 신(神)이 있는 듯하지만 깨달음의 심안(心眼)으로 보면 그것들은 손등과 손바닥과 같은 양면성일 뿐이다. 손등이 필요 없다고 깎아 없애면 손바닥도 없어진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둘째,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화엄경 제1장 1절의 이름이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다. 세상의 주인들이 참으로 묘하게 이 세계를 장엄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주인들은 무엇인가. 하늘과 땅, 나무와 바위, 산과 들, 새와 물고기,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물 한 방울, 모래알 하나 그리고 인간, 이 모두가 그대로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세계를 이루는 수많은 구성인자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잘못된 서양인의 인식은 인간을 오만하게 했고,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급기야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다른 인간을 악의 축으로 몰아 도륙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화엄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대로 인식을 다시 해야 한다. 화엄경의 가르침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한 구성인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의 일부분이다. 나무도 산도 들도 꽃도 돼지도 물도 모래도 지구의 일부분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산과 나무와 꽃과 풀과 물 한 방울과 모래 알 하나도 이 지구의 일부분이며, 내 몸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오염되면 물이 썩고, 물이 썩으면 나무가 죽고, 나무가 죽으면 우리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연과 한 몸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 지구상의 만물은 절대 평등함을 알아야 한다. 이 지구상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모든 구성인자들은 인간의 육안이 아닌 깨달음의 불안(佛眼)으로 보면 모두가 절대 가치를 가지고 있어 평등하다는 것이 화엄경의 가르침이다. 평등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영역, 분을 지켜 서로 침범하거나 넘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자연계의 법칙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화다. 그런데 인간이란 괴물이 이 지구상에 나타나서 자연계의 자유와 평화를 깨뜨리고 있다. 백인과 흑인의 차별을 만들고 선과 악의 축을 만들어 갈등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그 주범이다. 끝없는 욕망 때문에 땅에 금을 그어 자기 것이라고 등기를 하는 것은 인간뿐이며, 먹어 배가 차도 양이 차지 않아서 더 많이 모으려고 하는 것도 인간뿐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를 부르짖으며 무한 경쟁을 만들어 신음하는 것이 인간이다.

눈을 뜨자. 그리고 바로 보자.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를 저어가자. 험한 파도 물결 건너 저편언덕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한 곳 희망의 나라로”. 이것은 어느 가곡의 가사다. 자유·평등·평화 그리고 행복이 가득한 세상은 무한 경쟁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이 지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만물을 지배하는 영장이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인식할 때 가능한 것이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는 서로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손등과 손바닥임을 자각해야 한다. 만물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사는 세상이 화장장엄의 세계며 그것은 저 건너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이미 펼쳐져 있다고 하는 것이 화엄의 세계관이다. 욕망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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