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인간사를 해명하는 네 가지 견해
윤영해/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숙명론

부처님의 가르침은 기계론적 업설[숙명론]이 아니다. 만일 인간사를 기계론적 업설로 해명하려 든다면 현재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고스란히 과거의 업에 따라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업설로는 어떠한 윤리적 체계도 건립할 수 없다. 아무리 내가 내 의지로 실천하려 한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모두 과거의 업인에 따른 결과일 뿐이고, 그것은 결국 나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아함 도경(度經)의 말씀이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인간사는 일체가 다 전생에 지은 것[宿命]이 원인이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어떤 이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조물주[自在天]가 원인이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인간사는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偶然]’고 말한다. 만일 어떤 이가 ‘인간사는 일체가 다 전생에 지은 것이 원인이다’라고 한다면, … 여러분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나는 언제나 무엇이나 전생의 업에 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의견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생에서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탐욕과 성냄과 삿된 소견을 갖는 것도 모두 전생에 지은 업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신의설

부처님은 인간사를 신의 섭리[神意說]로 해명하지 않는다. 만일 모든 인간사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신의 섭리로도 인간 세계의 윤리체계를 세울 수 없다.

“만일 어떤 이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조물주[自在天]가 원인이다’라고 한다면, … 여러분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조물주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일체는 다 조물주가 지은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도 자재천의 뜻이고, 도둑질이나 음행이나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도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우연설

부처님은 인간사를 우연으로 치부(置簿) 하지도 않는다. 만일 모든 인간사가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의 어떠한 행위나 그에 따른 결과에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이 우연히 벌어진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연설 역시 어떠한 윤리체계도 온전히 건립할 수 없다. 윤리체계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즉시 아비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인간사는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우연]’고 한다면, …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누구나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진정으로 그렇게 본다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참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잃어 버리고 바른 지혜도 없으리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고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에 인연이 없다고 한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이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 하지 않겠는가!’ …”

 

의지설

“[그러나] 만일 사문의 법대로 가르친다면 곧 이치로써 그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말하는 사문의 가르침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기계론적 업설에 독특한 요소를 가설함으로써, 인간사를 해명함에 있어 윤리적 설득력을 확보한다. 그 요소란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다. 인간사의 행과 불행은 모두 나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위 탓이다. 이 의지가 개선과 개악, 발전과 퇴행 등 모든 변화의 원인이며 윤리의 근거다. 인간만사는 조상 탓도, 운수 탓도, 하늘 탓도 아니다. 그리고 전생의 업 탓만도 아니다. 모든 것은 내 탓이요, 내 의지의 결정 탓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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