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도량
사랑과 소유
이법산 스님/ 서울 정각원장

 

사랑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소유하고, 소유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대상을 소유해야 하며, 또 소유하고 있다고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과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진정 나는 다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가 다 소유할 수 있을까?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지 말라. 사랑은 오직 사랑할 뿐 소유하게되면 괴로워진다. 사랑하는 것을 소유하려는 것은 욕망일 뿐이다. 욕망은 괴로움을 가져온다. 욕망이 없는 사랑은 존경과 행복을 주지만, 욕망이 전제가 된 사랑을 소유하려면 시기와 질투 그리고 투쟁만 가득할 뿐이다. 만약 사랑하는 것을 소유한다면 그 순간부터 불행의 징조가 시작된다. 사랑은 주는 것일 뿐,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소유한다고 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소유라고 착각한다면 그 사랑은 결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소유한다는 생각을 낼 때부터 내 마음대로 하려는 고집과 시기 질투가 행복에서 괴로움으로 끌려 다닐 것이다. 설사 부부간이라도 서로 자기 소유라고 집착하면 상대방의 자존심은 용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평등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행복한 가정을 기대할 수가 없다. 사랑할수록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아껴주고, 보살펴 주는 대승보살도의 보시행(布施行)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이란 반드시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은 수없이 많다. 오직 유정물(有情物)만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무정물(無情物)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해서 대가를 바란다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높은 하늘, 푸른 산, 맑은 물을 보면 마음이 즐겁고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면 몸도 편안해 진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물을 더불어 나누고 편안하게 사랑하는 그 마음에 있다.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해 줄 때 그 속에 행복이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베품의 마음 이것이 참된 보시행(布施行)이다.

참으로 사랑한다면 소유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소유는 탐욕일 뿐이다. 탐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의 씨앗이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탐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탐욕의 마음이 만족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분노를 일으키고 성을 내게 된다. 성질대로 안될 때 욕설과 싸움과 파괴 등의 행패를 부리게 되고, 화를 내면 피가 거꾸로 솟구쳐 맑은 정신을 잃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탐욕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일어나며, 탐욕·분노·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어 악업(惡業)을 짓고 과보(果報)를 받으며, 악(惡)의 사슬은 더욱 심하게 괴로움의 윤회를 거듭하게 한다.

『금강경(金剛經)』에서 무상(無相)을 말하는 것은 차별하는 마음을 갖지 말고 평등심(平等心)을 갖자는 뜻이다. 남에게 보시(布施)를 하였다고 하여 마음에 상(相)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남을 아끼고 사랑함에 인색해서도 안되며, 혹은 그에 대한 대가를 바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의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의 몸도 결코 내 것이 아닌데 무엇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겠는가? 내 몸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에 누구도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아프지도 말고 죽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무상(無常)이란 변화한다는 뜻이다.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일정한 것이 없다. 어떤 대상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변화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므로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은 베풀어주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그 사물에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보시(布施)하는 것이다.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마음의 실천행위는 상대를 기쁘게 하는 보살의 희사(喜捨) 정신이다. 보살은 보시로써 상대를 기쁘게 하고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사람·가정·재산·직장·이웃·사회·국가·자연 등 어떤 것을 사랑하더라도 소유하겠다는 탐욕을 갖지 말자. 소유하면 그 시각부터 소유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또는 붙잡기 위해 괴로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소유라는 탐욕에 집착하면 자기 허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내 것이라는 소유정신으로 내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불행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더불어 나누는 마음에서 내 것이라는 개념없이 보시하면서 행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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