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우리는 연기론적 존재다
이도업 스님/ 경주캠퍼스 정각원장

이번에 객원교수로 일년간 외국에 있다 왔습니다. 많은 나라 중에서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을 선택한 것은 찰스 다윈과 아이작 뉴턴이 영국에서 태어났고, 그들의 유물이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곳의 수도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다윈과 뉴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발견한 법칙이나 이론이 부처님께서 자각하신 연기의 법칙과 일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들이 발견한 법칙이나 이론이 부처님께서 자각(自覺)하신 연기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론화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해 준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윈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의 나이 20이 되었을 때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만물은 신(神)이 창조했다는 창조설에 대한 의문이었답니다. 그러다 뉴턴은 22살 때 남아메리카 해안 브라질의 원시림 남태평양 연안을 5년 동안이나 탐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긴긴 항해에서 돌아온 그는 생물의 진화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환경의 조건에 의해서 멸종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형태로 변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럽사회는 철저하게 기독교 사상에 지배되고 있었기 때문에 신의 창조설을 부정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서 진화된 생물체라고 주장했다가는 신성 모독죄로 멸문의 화를 피할 수 없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자신의 이론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시 확인한 후 1859년 그의 나이 50세가 되던 해에 다윈은 『종의 기원』, 즉 모든 종자의 기원은 무엇인가라고 하는 책을 냈습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윈 저놈이 신의 창조설을 부정하고 있다,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 인간의 선조를 원숭이라 말하고 있다, 저자를 파문시켜라.’ 라고  하는 비난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그런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62세 때 『인간의 유래』, 즉 인간은 어떻게 진화되어왔는가 라고 하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는 교회로부터 파문되었다가 127년 만인 1992년에 복권되었습니다. 무서운 탄압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던 다윈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의 용기 있는 주장과 이론에 의해서 만물의 신의 창조설은 부정되었습니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환경의 조건에 의해서 변화되어진 생물체라고 하는 것이 지금 유럽에서는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한국에서는 신의 창조설을 앵무새처럼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저 아연할 뿐입니다. 다윈이 체계화한 진화론은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도 역시 케임브리지 출신입니다. 그는 어느 날 칠판에 글을 쓰다가 분필이 부러져 떨어지는 것을 보고 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 왜 떨어질까? 모든 물질은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순간부터 그는 ‘왜? 왜?’라고 하는 화두일념에 살다가 어느 날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활연대오했다는 것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 법칙에 의해서 지구와 달과 수많은 유성들은 저렇게 자전공전 하면서 떠 있다 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연기의 법칙의 일부를 본 것입니다. 상호 인력(引力)에 의해서 돌아가고 있는, 상호연관 관계에 의해서 생멸변화(生滅變化)하고 있는 법칙이 연기법입니다.

잡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그 누가 만든 것도 아니다. 법계에 상주하는 법칙인데 그 법칙을 깨달아서 나는 여래가 되었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연기의 법칙에 의해서 만물은 생(生)하기도 하며 멸(滅)하기도 합니다. 연기의 법칙에 의해서 서로 의지 하면서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연기론적 존재입니다. 인연의 법칙에 의해서 행과 불행이 주어지는 것이지 신의 뜻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뉴턴은 연기법의 일부를 재발견한 위대한 선지식이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께서 영국에 가시게 되면 두 곳만은 꼭 둘러보십시오. 한 곳은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입니다. 그 곳에 다윈관이 있고, 생물의 진화과정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한곳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의 렌(Wren) 도서관입니다. 그 곳에는 뉴턴의 유물, 그가 쓴 친필 노트, 그의 머리카락, 말년에 짚고 다녔다는 지팡이 등이 실물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옥스퍼드 대학에 간 또 하나의 이유는 전통적인 카톨릭 수도원의 생활을 체험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2주간 머물렀던 곳은 Benedictine 계통의 DOUAI abbey church였는데, 그 곳 신부들의 생활은 우리 스님들의 그것과 흡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남방불교 스님들의 생활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발우공양 모습과 독송 의식은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양물이 다르고 독송하는 내용과 언어의 표현이 다를 뿐 그 형식은 대단히 유사해서 한 뿌리에서 연기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온 인류와 만 생명은 생활상의 지역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자라온 과정이 달라서 천차만별의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며 동일한 불성생명체입니다. 만 생명체는 연기론적 존재로서 생멸변화하고 있고 서로 의지하면서 상호존재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자각하신 연기의 법칙을 중세유럽의 뉴턴과 다윈에 대해 과학으로 증명되고 재확인되었음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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