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문화 유산


간다라 미술 속의 그리스 신들


심재관/ 불교대학 강사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이다. 동서양의 교역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오래전,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은 그 도시를 떠나 아프카니스칸과 파키스탄, 인도 북서부 등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아테나 여신은 이 여행에 헤라클레스나 트리톤, 아틀라스, 켄타우르 등도 동반했었다. 

간다라 미술(또는 박티리아-간다라 미술)이라 말하면, 흔히 그리스-로만 양식의 영향을 받은 초기 불상조성 양식을 떠올리지만, 불상 외에 간다라 미술 속에는 상당히 많은 그리이스 계열의 신들도 함께 조성되었다는 점은 쉽게 지나친다. 이는 대체로 불상 연구에 연구자들의 관심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부 이 그리이스 신들의 도상은 그 형태와 장식적 모티브에 있어, 인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다라 미술은 그 후기까지(대략4-7세기) 인도의 미술양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보자. 헤라클레스의 모습은 인도의 신 인드라(Indra), 또는 바즈라빠니(Vajrapani ‘바즈라를 들고 있는 자’)에 덧씌워진다. 바즈라빠니는 흔히 집금강(執金剛)이라고도 부르는데, 초기 불전부조나 불경을 통해 부처님을 가까이 수행하는 수호신으로 빈번히 등장한다. 불전에 등장하는 바즈라빠니가 누구인가는 아직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붓다고샤(Buddhaghosa)가 그를 인드라로 해석했던 점으로 미루어 인드라의 흔적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이 불교의 수호신장이 박트리아-간다라 지역에서는 빈번히 헤라클레스의 외모를 하고 나타난다. 특히 헤라클레스가 네메아에서 맨손으로 때려잡았던 사자 껍질을 뒤집어쓰고 바즈라(인도유럽피언 母語로는 “몽둥이”를 의미한다)를 든 모습은 바즈라빠니의 단골 의상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아프카니스탄의 핫다(Hadda) 근처 타파-쇼토르(Tapa-shotor) 감실에서 잘 나타난다. 타파-쇼토르 감실의 바즈라빠니는 동양적인 냄새는 거의 풍기지 않는 지중해 헤라클레스의 모습 거의 그대로이다. 머리는 곱슬머리를 하고 있으며, 구렛나루와 턱수염이 가득하다. 한 쪽 어깨에는 사자가죽을 걸치고 있으며 무릎 위에 바즈라를 세워서 팔을 얹은 모습으로 불상 옆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 바즈라빠니가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빌려 표현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바즈라빠니는 헤라클레스 뿐만 아니라,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그리이스 신들의 모습을 차용해 표현하기도 했지만,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바즈라빠니의 이미지에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씌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고전 신화 속에서 갖았던 역할과 기능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최근 박트리아의 그리이스 도시였던 아프카니스탄의 아이 카눔(Ai Khanum)에서 헤라클레스 청동상이 발견되었는데, 이 동상도 양손에 사자껍질과 바즈라를 들고 있다. 이 바즈라는 그리이스 토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인도의 바즈라 형태가 아니라 긴 몽둥이 형태의 바즈라이다. 이러한 동방의 헤라클레스의 모습은 그리이스 미술과 간다라미술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중간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이러한 아프칸 유물의 발견은 도굴과 비체계적인 발굴의 결과에 의한 것이 많은데, 현재 아프카니스탄의 많은 유적지는 형편없이 파괴되고 있다. 특히 카불 박물관의 유물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화나 은화가 특히 많이 소실되었다.


여신 아테나(Athena)도 박트리아-간다라 미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리이스의 여신이다. 박트리아의 그리이스 왕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동전 앞 쪽에 남겼는데, 그 동전의 뒷면은 대개 여러 여러 신들의 모습을 새겼다. 아테나 여신은 이때부터 파르티아 시대의 화폐와 쿠샨 왕조의 유물 속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파르티아의 그리이스 왕이었던 아제스 왕의 은화에 아테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전투의 여신으로서의 면모가 나타난다. 동전 앞면은 말을 탄 왕의 모습을 그리이스 문자와 카로슈티 문자로 각각 “왕중의 왕 아제스(Azes) 대왕”이라는 문구가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표현방식은 이 당시 동전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뒷면에는 신들을 새겨 넣었는데, 여기에 아테나 여신을 새겨넣었다. 여신은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또 한 손에는 번개를 처들어 던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역시 쿠샨왕조 당시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아프카니스탄 카불 위쪽에 위치한 베그람(Begram)의 쿠샨 왕궁터에서 아테나 여신의 흉상으로 빚은 몇 개의 추들이 발견되었다.  

그리이스의 신 트리톤(Triton)도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 모두 널게 퍼져있다. 돌이나 흙을 재료하여 주로 소벽장식으로 부조된 것이 많지만, 상아조각의 트리톤도 발견된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은 상체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하반신이 긴 물고기형상의 꼬리를 갖는다. 그리이스-로마 미술에서는 두 하반신이 두 다리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감겨올라간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간다라 미술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손에는 주로 악기를 들고 있거나 꽃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그림 . 이크튀오켄타우로스의 부조. 계단 옆면을 장식하던 패널 가운데 하나이며 높이는 대략 20센티 정도이다.

트리톤은 후에 반인반어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이크튀오켄타우로스의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신은 건물의 특정 모서리 부분을 장식하는 곳에 새겨지곤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해수신의 장식적 형태가 인도의 건축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인도의 신화적 동물인 마까라(Makara)는 이크튀오켄타우로스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모두 변형동물인 동시에 해수신(海獸神)이라는 점이다. 마까라는 대체로 상체가 코끼리의 코와 악어의 입으로 되어 있다.

인도미술사에서 마까라는 비하르에 있는 로마슈 리쉬의 석굴(대략 기원전 3세기) 입구를 장식하는 문양으로 부조되어 처음 나타나는데, 이크튀오겐타우로스의 꼬리와 같이, 긴 꼬리 끝이 모서리 부분을 처리하고 있다. 마까라의 흔적은 그 다음 바르후트의 토라나 장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트리톤이 그리이스 계통의 해수신이고, 마까라는 흔히 강가 여신이 올라타는 인도 고유의 해수신이라 할지라도 이들 둘의 장식적 특성들을 고려해보는 것도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박트리아-간다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다른 그리이스 신으로 아틀라스를 들 수 있다. 간다라 아틀라스의 특징은 그 날개에 있는데, 고전 그리이스의 아틀라스가 날개없이 두 팔을 들어 건물의 지붕이나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간다라 아틀라스는 대부분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한쪽 발의 무릎을 접어 세우고 다른 한쪽은 접어 내려서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은데, 두 팔은 다리쪽에 내리거나, 또는 한쪽 팔을 치켜든 것이다.

이 아틀라스 상들도 트리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숭배의 형태가 아니라, 건축의 장식적 표현물로 많이 사용되었다. 건물의 계단이나 기단부의 몰딩부분에 새겨져 마치 건물의 일부를 떠받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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