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논단


마음의 병과 원인


이만/ 불교문화대학 교수


본래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백 살 이상을 살게 되어 있지만, 살아가면서 각 종의 질병과 전쟁 및 스트레스 등으로 말미암아 수명이 단축되어서 현재와 같은 단명의 일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의학의 발달로 그 기간이 점점 길어져서 백 살 내지는 120살 이상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하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옛날에는 주위의 환경이 불결해서 생기는 질병에 의한 죽음이 그 주된 원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한다. 따라서 만수무강하려면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는 것이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는 그 발생이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는 등의 육체적인 요인보다는 정신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음만 잘 다스리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지만 ‘마음의 종교’라고도 말하는 것과 같이 거의 모든 교의가 마음의 기능과 그 역할 등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식의 주체인 마음을 심왕법(心王法)이라 하고, 이와 더불어 활동하는 심리작용인 잔 마음을 심왕소유법(心王所有法 ; 心所法)이라고 하는데, 심왕법인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그에 따라서 활동하는 잔 마음인 심소법도 역시 좋지 않은 심리가 이에 동반하게 되는데, 이 때에 일어나는 심리를 번뇌 심소법이라고 하며, 근본번뇌로 취급한다.

이러한 근본번뇌에는 탐욕스러운 심리[貪]·성내는 심리[瞋]·어리석은 심리[痴]·뽐내는 심리[慢], 의심하는 심리[疑] 및 좋지 않은 견해[惡見] 등 6가지가 있다. 또한 이 근본번뇌가 일어날 때에 부수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심리작용을 수번뇌(隨煩惱) 심소법이라고 하는데, 이에는 분개하는 심리[忿]·원한을 갖는 심리[恨]·지혜를 가리는 심리[覆]·번뇌스러운 심리[惱] 및 질투하는 심리[嫉] 등 20가지가 있다. 한마디로 이러한 심리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결과로 항상 마음이 복잡하고 수명 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근본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하면, 중생들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말나식(末那識)인 자아의식으로서, 이것은 항상 4종의 심층적인 번뇌인 아치(我癡)인 무지한 마음, 아견(我見)인 그릇된 견해, 아만(我慢)인 뽐내는 마음 및 아애(我愛)인 자기에 대한 애착 등과 함께 하는 주관의식을 말한다. 이 4가지의 번뇌가 주관의식인 말나식과 활동해서 6가지의 근본번뇌를 일으키고, 이 근본번뇌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20가지의 심리적인 증상이 수번뇌인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마음에 자주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바로 수번뇌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병적인 증상인 것이다.

이 6가지의 근본번뇌에 관해서 보면, ①탐욕스러운 심리[貪]란,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에 대하여 탐익하며, 능히 탐욕치 않으려는 마음을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번뇌의 결과로 생사고락의 과보, 즉 위로는 색계, 무색계의 수승한 과보로부터 아래로는 지옥, 아귀의 추악한 곳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든지 각 개인들의 탐익한 마음에 기인되지 않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②성내는 심리[瞋]란, “고통스러움과 그 원인에 대하여 분개하는 마음을 갖고, 성내지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불안과 악행을 일으키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3고의 인과관계에서 괴로운 감정이 느껴지는데, 이 때에 일어나는 것이 성냄이다. 즉, 성냄은 증오와 화냄을 그 본성으로 하고, 이에 의하여 몸과 마음이 열뇌 당하는 것이 불안한 심리이며, 이 불안한 상태에서 업을 짓는 것이 악행이라는 것이다.

③어리석은 심리[癡]란, “모든 이치에 대하여 우매함이 그 본성이고, 우치하지 않음을 충동하여 일체 잡념법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한다. 말하자면 지혜롭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의심과 삿된 결정 및 탐욕 등의 마음을 일으켜서 다음 생의 잡념법을 초래한다”라고 한 바와 같이, 의심이라는 것은 곧 무명을 가리키는데, 이 무명은 진정한 이치와 사실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갖지 못하게 하며, 일체 잡념법이 모두 이 무명에 의지함을 말한다.

④뽐내는 심리[慢]란, “자신을 과신하여 남 보다 높이는 것이 본성이며, 자만치 않음을 충동하여 고통을 낳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해석한 바와 같이,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어서 배타적으로 높게 행동하는 마음이 그 본성이고, 자만치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고통을 낳는 것이 활동이다. 왜 자만심이 고통을 낳는가 하면, 만약 자만심이 있으면 수승한 법과 유덕한 성자에 대하여 겸하하고 순종할 기회를 상실함으로서 생사의 바다에 윤전하여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⑤의심하는 심리[疑]란, “모든 진리에 대하여 결정을 미루는 것을 그 본성으로 하고, 의심치 않으려는 것을 충동하는 것이 활동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는 유예하여 결정치 못하는 것을 의심이라고 한다. 무엇에 대하여 결정을 미루는가 하면, 구체적으로는 4성제의 이치를 유예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그 본성인 것이요, 의심치 않아도 좋은 것을 충동하는 것이 활동이다.

⑥좋지 못한 견해(惡見)란, “진리에 대하여 뒤바꾸고 분별해서 지혜를 오염케 하는 것이 본성이며, 훌륭한 견해를 충동하여 고통을 초래케 하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해석한다. 여기에서 견해라는 것은 추리의 의미로 지적인 것을 말하며, 인과의 도리를 모르고 진리에 대하여 전도된 견해를 추구하는 것이 본성이며, 선견을 장애하여 고과를 초래하는 것이 그 활동이다.

이상 6종이 법뇌 심소법인 바, 최후의 악견을 더 세분하여 5견[살가야견, 변견, 사견, 견취견 및 계금취견]으로 한 것을 합하면 10종의 근본번뇌가 된다. 이 근본번뇌들 중에서도 처음의 탐욕과 성냄과 우치함의 3종은 모든 번뇌의 최대 근본이 된다는 점에서 이것을 3독심 또는 3박(縛)이라 하고, 또한 무탐 등을 3선근이라 함에 대하여 3불선근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10종의 번뇌는 선천적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인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의심과 5견 중에서 뒤의 세 가지, 즉 사견·견취견·계금취견은 후천적으로 삿된 교육과 사상에 의하여 일어난다고 하여 이것을 분별기의 번뇌라고 하며, 탐·진·치·만과 5견 중의 살가야견과 변견은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후에 삿된 교육과 사상에 의하여 일어나기도 하는 등 양쪽에 다 통하기 때문에 이것을 구생기와 분별기의 번뇌라고 한다.

이와 같은 근본번뇌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심리적인 증상인 20가지의 수번뇌 중에서 처음의 5가지만을 살펴보면, 먼저 ①분개하는 심리[忿]란, “눈앞의 것이 자기에게 유익치 못함을 대면함으로서 분노하는 것을 본성으로 삼고, 화내지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몽둥이를 들게 하는 활동이 그 본업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현전의 경계에 대하여 분노하는 것이 그 본성이며, 이러한 분노로 말미암아 몽둥이를 들게끔 폭악한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그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번뇌인 성냄[瞋]의 일부로서 성내지 않으면 자연히 사라지는 부수적인 심리활동이다.

②원한을 갖는 심리[恨]란, “화내는 것을 우선으로 악심을 품고 버리지 않아 원한을 맺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원망치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열뇌케 하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화냄에 의하여 원한을 갖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열뇌케 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성냄[瞋]의 일부로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③지혜를 가리는 심리[覆]란, “자신의 비윤리적인 행위로 이익과 명예를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감추려는 것을 본성으로 삼고 감추지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후회케 되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자기가 지은 죄과가 밖으로 드러날 때에 명예의 손실을 두려워하여 감추는 것이 그 본성으로서 이와 같이 감춤에 따라서 마음이 불안하고, 또한 불안함에 따라서 후회하는 것이 그 활동이다. 이것도 근본번뇌인 탐욕[貪]과 우치함[癡]의 일부이지 별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④번뇌스러운 심리[惱]란, “화냄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칠게 다투어 그릇되게 함이 본성이며, 고뇌치 않으려는 것을 충동하여 지네가 쏘는 것 같이 활동함이 그 본업이다.” 즉, 화냄과 원한에 의하여 지나간 악심을 되살려서 현재의 좋지 않는 인연에 폭열하고 다투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타인을 해치는 것을 그 활동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성냄[瞋]의 일부로서 별체가 없다.

⑤질투하는 심리[嫉]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나치게 구하여 타인의 영화에질투, 시기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질투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충동하여 근심케 하는 것이 그 활동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자신의 명예와 이익에 탐익하여 다른 사람의 영달을 질투하는 심리가 본성이요 마음에 깊은 우울함이 있게 되는 것이 그 활동이다. 이것도 또한 성냄의 일부이지 별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지혜와 복덕을 갖추지 못하여 수시로 느끼는 증상인 스트레스는 일종의 마음의 병으로서 진리에 대한 무지와 그 후유증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증상을 없애려면 냉정한 자기성찰과 지혜에 관한 끊임없는 추구만이 가능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윤리·도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에서 교설되는 번뇌관이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어떤 창조주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것으로서, 각 개인이 평소에 지은 선악 업의 결과에 따라서 그대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업을 짓지 않아서 마음 속에 선악 업의 종자를 함유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강조되지만, 중생들은 우선 집착과 무지 등으로 그 마음이 선점(先占)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업을 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악 업에 의하여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실천덕목인 수행이 필요한데, 그것이 다름 아닌 유가(瑜伽 ; Yoga)나 참선·염불 등인 것이며, 이러한 것이 완전한 인격자로 나아가는 먼 길이자 바로 가까운 수행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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