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축원문 아차상
아카시아 꽃, 당신
김수정/ 문예창작학과 3학년

 

신록과 녹음 사이. 오늘도 행복한 단잠을 꿈꾸고 있을 당신께 글을 띄웁니다.

 

당신의 꿈속에는 누가 들어있는 걸까요? 누가 당신의 볼우물을 그리도 깊게 파 놓는 걸까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이 제가 될 수도 있는 거겠죠?

올해도 당신이 만들어 놓은 연등에, 쪼르르 적혀있는 이름들…. 그 속에 물론 저도 있습니다. 항상 바라고 또 바라건대, 무엇을 또 바라시는지 항시 가족들만 생각하는 당신, 나의 어머니. 자신의 이름은 써 놓지도 않고는 애써 태연하게, 혹은 수줍은 미소로 일관하시는 모습에 제 가슴이 아파 왔습니다. 항상 뒤에서 보듬어주시고, 달래 주시는 당신의 손길…. 압니다. 저는 압니다.

어릴 적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입학을 했던 꼬마, 지금 그 꼬마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습니다. 맹랑했던 아이의 주먹은 어느 새 풀렸지만, 마음속에 자리한 고집스러움은 그대로겠죠. 때로는 그 고집스러움이 당신의 여린 가슴을 갉고, 뭉그러지게도 했었습니다. 기억나세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 가지 않아 발버둥쳤던 저를. 매일 아침, 전쟁과도 같은 나날 속에서 늘 빨간 도시락을 움켜주시던 당신의 손. 그러나 그것을 뿌리치고 달음박질쳤던 아이. 아이가 박차고 나설 때면 뒤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눈물 소리가 아직도 들려옵니다. 마냥 볼을 타는 눈물도 소리는 있나 봅니다. 그 소리에, 잠깐 뒤를 돌다가도 이내 달려가 버리는 아니, 가슴이 터질 만큼 소리 내뱉던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접니다.

제 나이, 벌써 스물 둘입니다. 딸은 자라면서 어머니와 친구가 되고, 어머니를 이해하는 수호천사가 된다 하였거늘, 저는 이리도 못날 수 없습니다. 쉽게 속을 털어놓지도 않을 뿐더러, 남들이 다 부린다는 애교도 당신께는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살갑게 맞이하는 딸로서의 모습…. 이제 제 품에 당신을 안을 차례지만, 아직도 저는 부족한가 봅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는지요, 아버지와 오빠, 저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당신의 마음을 멍들게 하지 않은 이가 없었죠. 초롱초롱한 젊은 시절의 눈망울은 이제 묽게 젖어드는데, 그 누구도 따스한 말을 건네지 않았던 날들. 그 외로움 속에서도 견디고 또 견뎠던 당신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묽게 젖어든 눈망울은 이내 제것이 됩니다.

아카시아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그래서 아카시아가 피는 5월이면, 마당에 나가 마냥 향기를 맡던 당신의 그림자. 밤의 향기가 더 진하다며, 제 손을 억지로 붙잡고 나섰던 당신의 발걸음. 애잔하게 끓는 향기는 과연 당신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하얗게 반짝이는 꽃잎들은 당신의 눈을 닮았고, 동실동실한 잎사귀는 당신의 코를 닮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아카시아 꽃입니다. 그러면 저는 당신의 꿀벌이 되겠습니다. 항시 당신 곁에 놀러와, 달콤한 꿀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아카시아만을 위해 꿀을 만드는 부지런한 꿀벌이 되어. 벌집 사이사이에 녹아드는 달달함을 내 드릴 거예요. 그것이 당신께 드리는 제 마음입니다.

5월 26일. 올해는 저도 연등을 하나 만들까 합니다. 누구도 당신을 빌어주는 사람이 없기에, 제가 빌어드릴까 합니다. 오직 당신, 어머니만을 위한 연등을 만들어, 그 속에 그동안 마음에만 담아둔 제 사랑을 넣어드릴까 합니다. 또한 모질게 대했던 지난날의 상처도 담고, 차가웠던 지난날의 기억도 담고, 애달픈 제 눈물도 담을 겁니다. 이런 과거들을 차곡히 담고 나서, 새로이 피어날 수 있도록 제 사랑을 담아낼 겁니다. 보드라운 양탄자 같은 마음과, 서툴지만 진실한 반성과, 바르게 볼 줄 아는 거울을 담을 겁니다. 봉오리가 필 때면 그것들은 한데 어우러져 저를 새롭게 할 테고, 어쩌면 밀려오는 후회의 나날들에 쓰러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연등을 밝힐 제면, 은은한 등불 속에서 앞으로의 나날들이 밝혀질 겁니다. 그래서 당신만을 위한, 연등을 하나 마련할까 합니다.

오늘도 단꿈을 꾸셨을 당신. 이제 제가 당신의 꿈을 꾸어드릴 차례입니다. 제 꿈에 나타나시어, 푸른 풀숲을 세차게 걸으시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마음껏 취해보세요. 지금껏 가져온 나쁜 기억들은 훌훌 털어내시고, 당신만의 위한 날들, 어머니만을 위한 날들을 사세요. 그런 꿈을 코 흘리던 당신의 꼬마가, 밉살맞던 당신의 아이가, 곱게 자란 당신의 딸이, 그리고 제 가……꾸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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