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심의
창 / 축원문 으뜸상 연리목처럼 간민주/
문예창작학과 3학년
부처님,
우리 자매가 손에 손을 꼭 잡은 두 나무,
연리목처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
날씨가 너처럼 눈부시더라, 아침 '빱빠'는
잘 먹고 어린이 집에 갔니? 삐삐 머리를
했는지, 아님 분홍 꽃이 달린 머리띠를
했는지, 어린이집 차를 타러 혼자서도
경찰 아저씨처럼 용감하게 뛰어갔겠지?
언니는
어제 울릉도 여행을 다녀왔단다, 가파른
성인봉을, 줄 하나만 잡고 오르는데 땅은
미끄러워 헛발질만 하게 되고 아래는 너무나
까마득해서 순간 풀썩 주저앉고 말았어.
앞에 가는 친구, 뒤에서 잡아주는 선배들이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야, 이를 어쩌나, 가슴이 철렁해져서는
눈도 못 뜨고 눈물만 주르륵 흘렸어, 그런데
어디선가 "민재 집에 놀러와, 큰언니"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우리 민재 목소리가.
5년
전 네가 태어나던 날, 병원에서 엄마는
한참 동안 깨어나지 못하셨어. 그 조그만
걸 어떻게 지우냐고, 의사선생님의 권유에도
막무가내셨어. 워낙 몸도 안 좋으신 데다가
마흔이 훨씬 넘은 무리한 노산이셨지.
콧물도 눈물처럼 쏟아내는 나를 보며,
외할머니는 말없이 안아주셨단다. 자식이
자식을 낳는 모습을 지켜보는 외할머니의
타 들어가는 심정도, 언니는 걱정할 겨를
이 없었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렇게
흥건히 피묻은 하얀 침대에서. 엄마는
깨어나셨어도 눈을 제대로 못 뜨셨다.
세 딸을 낳은 여자는 죄인이라고. 3일
동안이나 널 보러 가시지 않은 이유가
젖몸살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
난 엄마 마음은 아랑 곳 하지 않고 마냥
네가 좋았어. 엄지손가락 만한 네 발도,
아직 채 뜨지 못한 퉁퉁 부은 네 눈도,
넌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쏙 빼 닮아
있었어. 이웃 사람들이 '작은 민주'라고
널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그래서
인지 난 유독 너를 업고서, 자장가를 부르며
널 재우곤 했단다. 지린내 풍기는 기저귀를
가는 일도, 넌 내 막내 동생이니까 즐거웠어.
이제는 언니이름까지 곧잘 쓰는 민재를
보면서 큰언니로써 해 준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단다. 민재집,
큰언니 집, 민재 엄마. 큰언니 엄마. "큰언니
집에만 있지 말고 민재 집에 놀러와."
서울로 공부하러 떠나버린 큰언니의 존재가
너에게 그런 식으로 인식되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어. 민재야. 그래도 큰딸이
떠나 텅 빈 부모님의 쓸쓸한 가슴을 네가
대견하게 잘 메워줘서. 언니는 늘 고마운
마음이란다.
아니.
민재는 언니에게도 늘 힘이 되는 고마운
사람이야. 혼자서 해 먹는 꼬들꼬들한
밥, 혼자서 개어야 하는 빨래, 벌써 2년째
하는 살림인데도, 가끔씩 칼에 손을 베이고
손등에는 불그죽죽 데인 상처가 생겨서
언니는 가끔씩 쭈그려 않아 멍하니 울기도
곧 잘 한단다. 하지만 "큰언니, 내일
민재 집에 와." 하는 네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늘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와
지갑에 있는 네 사진을 볼 때마다 힘이
솟아나.
가끔
고향집에 가면, 엄마는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셔서 잠든 너를 꼭 안아 보셔야
다시 잠이 드셨어. 때론 네가 누구에게
잡혀가는 꿈을, 때론 네가 냉동창고에
갇히는 꿈을 그렇게 자주 꾸신다고. 저
조그만걸 두고서 당신은 늙지도 못 하겠다
하신 단다.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큰언니이자,
또 다른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셔.
3월부터
언니는 허브를 여덟 종류 키우고 있단다.
집 현관문을 열면, 허브의 갖가지 향기들이
꼭 니가 나에게 꼬옥 매달리듯이 웅성거리며
나를 반겨줘. 내 게으른 성격 탓에 잎이
자그마한 것 두 개가 벌써 죽었어. 그런데도
언니는 책상 앞 창문에 놓아둔 죽은 허브들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잎이 넓적한
것들은 쑥쑥 잘도 자라는데. 새끼손톱보다
작은 잎을 가진 것들은 어찌 그리 쉽게
죽어버렸을까 하는 생각에 아직도 아침마다
꼬박꼬박 물을 준단다. 그런데 민재야,
신기한 것은 처음보다 두 배나 자라버린
허브에서도 마찬가지야. 줄기가 길어지고
잎이 넓어질수록, 뿌리 쪽에 가까운 잎들은
자연스레 빛을 적게 받게 되거든. 그러면
이 잎들은 시들시들 해지다가 결국 앓아
죽게 돼. 약한 것들은, 힘없는 것들은
식물이나 사람이나 이렇게 죽게 되는 것이
세상인가보다. 네가 커서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생이
되면 알겠지만 엄마나 큰언니처럼 세상은
늘 네 편이 아니란다. 가끔은 황량하리만큼
억울한 일들이 끝없는 후렴구처럼 이어지기도
할게다. 혹여나 네가 큰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어린이집에서도 혼자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언니는 근심병에 걸린 환자처럼
네 걱정을 하고 또 한단다.
이런
세상 속에서도 서로 두 나무가 가지를
뻗어 손을 맞잡은 나무가 있다 더구나.
열 여섯 살이나 차이나는 너와 내가 자매로
만난, 이 신기한 인연처럼 서로 다른 두
나무가 하나되어 양분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대.
작은 것은 큰 것에게 밀려 죽어버리고
마는 것이 보통의 식물들인데 말이야.
언니도
연리목처럼. 민재의 손을 꼭 붙잡고서
수런거리는 작은 바람이나 엄청난 폭풍우에도
늘 지켜주고 보살펴줄게. 단 것은 큰언니나
작은 언니에게 다 빼주고 말아서. 쭈글쭈글한
거죽만 남아버린 엄마 만큼은 아니겠지만.
네가 밥 먹을 때. 놀 때. 공부할 때. 잘
때에도 언제나 네 곁에서 큰언니로. 엄마로
널 꼭 보듬어 줄게
저
밑 깊은 땅에서부터 줄기가 뻗어 나와
연못의 알 수 없는 심연을 거쳐서 물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 그 연꽃과 함께 하시는
자비로우신 부처님이라면 언니의 기도를
꼭 들어 주실거야. 네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부처님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언니가 늘 함께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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