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
지율 스님이 숲에서 나온 까닭은
장영길/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 해 여름 어느 날, 부산 시청 앞 아스팔트 광장에는 불법 천막이 하나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단아한 법의 차림의 비구니 스님 한 분이 45일간의 긴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지율 스님, 그 분은 누구인가. 스님께서는 경부고속전철의 천성산 관통을 맨 몸으로 막으며 천성산 뭇 생명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산문을 박차고 속세로 내려오셨다 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중생들의 삶을 담보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지율 스님의 거룩한 보살행은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만인의 가슴속에 깊은 메아리를 남겼다.

인류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시공의 개념이 한도 없이 좁아진 지구촌에서 요즘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류의 내일이 유쾌하게만 전개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특히 동서 문명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중동지역의 현실을 보면, 인류가 어떻게 종교나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화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하는 과제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류의 평화를 얘기하고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공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나 또는 우리라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위배되면 그야말로 상대와 사생결단을 내려한다.

거시적으로 우리는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서 그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 이라크인들이 쿠웨이트인들에게 저지른 만행과, 현금의 미국인들이 이라크인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인권유린은 그 사태의 본질적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모든 사단의 단초야말로 집단이기주의 그 자체이다.

한편 미시적으로 볼 때, 요즘 언론매체에서 자주 회자되는 핵가족의 붕괴는 우리들의 앞날을 더욱 암울하게 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이미 한 목소리로 강조해 왔거니와,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현금의 작태는 옛 성현들까지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나 보다. 우리 사회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참으로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해마다 결혼한 부부의 이혼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의 현실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수십 수백의 하객 앞에서 주례를 세우고 거룩한 혼인서약에 소리 높여 동의한 그들이 조그마한 불편을 참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이나 편의를 쫓아 온갖 핑계를 대어가며 자식을 버리고, 아내는 남편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씹던 껌 뱉듯 버린다. 참으로 요즘의 결혼 풍속도를 보고 있노라면 결혼서약이야말로 이기주의에 물들어 50%도 지켜질 수 없는 절반의 사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각하면 인류역사상 수많은 사상가와 종교인들이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해 역설했고 그들의 가르침이 종교의 형태든 교육의 형태든 간에 끊임없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며 인류를 선도해 왔건만, 현금의 인류는 왜 아직도 머나먼 이상향을 그리며 좌절하고 있는가. 결단코, 현금의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과 그리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묘안은 없는 것인가.

해마다 오월이 오면 우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정각원 앞 숲 속에서는 백색의 향연이 전개된다. 작년 가을에 강남으로 나들이 갔던 백로와 왜가리들이 올 봄에도 어김없이 우리 캠퍼스를 되찾아와 묵은 보금자리를 보수하고 새 식구를 엄청나게 불리어 더불어 사는 참된 삶의 모습을 우리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새 생명의 잉태와 출산 그리고 안전한 양육을 위하여 머나먼 남쪽나라에서 우리 캠퍼스까지 목숨 걸고 비행해 왔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둥지를 틀고 열심히 새 생명을 양육하고 있다. 오월의 따가운 햇볕아래 꼼짝 않고 알을 품는 어미 백로의 거룩한 모습, 무더운 여름 내내 형산강을 오가며 먹이를 물어다 나르느라 몸집이 날씬해진 어미 백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해마다 그렇게 많은 자녀들을 길거리에 내버릴 수가 있는가 하는 분노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인간이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한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아 기르고 위로는 부모를 받들며 인간답게 조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정신을 우리는 차라리 저 백로들의 삶을 통해 배워야겠다.

해마다 맞이하는 부처님 오신 날이지만, 올해 따라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가까이는 내 가정에서 시작하여 머나먼 타 대륙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단들의 근본적인 치유책을 아직도 우리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의 단초가 그러하듯이 시작은 아주 작은 데서부터 비롯된다.

우리가 한 가정을 조화롭게 만들고 인류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가꾸며, 나아가 자연 속에서 인간이 도롱룡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근본정신은 바로 지율 스님이 부산시청 앞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한 여름 내내 단식하면서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그 보살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랜 뙤약볕 단식으로 가뜩이나 휑하니 커진 스님의 눈망울 속에서 우리가 차라리 통곡하고 싶도록 서늘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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