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도량
애민섭수(哀愍攝受)
이법산 스님/ 서울 정각원장

 

상생(相生)이란 더불어 산다는 말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혼자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모든 생명은 자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는 곧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도 귀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자기가 세상의 모든 것과 더불어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 속에 일체가 있으니 여럿은 곧 하나이며, 하나의 티끌 가운데에도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다.'(一中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는 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생명이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태어난 것은 없다. 모두가 서로 의지하여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즉 상의상존(相依相存)하며 상관(相關)되는 연기(緣起)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상부상조하며 상생상존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한 사회를 가꾸어 가는 가장 품위있는 삶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애민(哀愍)이란 아껴주는 거룩한 마음이다. 연민의 정(情)으로 다른 생명을 아껴주는 것이 대비심(大悲心)이며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은 대비심을 일으켜 생명의 귀중함을 느끼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광석보리심론(廣釋菩提心論)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보살은 한 중생에게도 친우라는 생각을 갖지 않음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차별 없는 자비심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중생을 두루 살펴본 끝에 한 중생이라도 괴로움을 지닌 자를 보았을 때는, 자식같이 사랑하여 대신해 괴로움을 받음으로써 그 중생이 괴로움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해 준다. 이런 비심(悲心)이 작용하는 까닭에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고, 대비(大悲)의 뛰어난 보살행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신행은 보살행의 실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행(信行)하는 자는 모두가 보살이다. 보살이 되어야 모든 생명을 같이 살아가는 친구 즉 도반(道伴)으로 함께하며 서로를 아껴 주는 대비심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의 아픔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보살의 비심(悲心)이다.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은 모든 생명을 보기를 자기 자식처럼 보니까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 아픔을 대신 받으려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을 염(念)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에서 이러한 대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이다. 고통받는 생명이 어떤 상대이든 그 생명은 본래 나의 생명처럼 귀중한 것이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소리를 듣고 연민의 안타까운 생각을 일으켜 그 생명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주는(拔苦與樂)' 마음과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는 마음은 우리들의 현실 사회에서도 느껴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 중생의 마음에 본래 보살의 대비심(大悲心)이 잠재해 있다는 의미이다. 살다보면 아무리 악하고 나쁜 사람이라 하드라도 어디엔가 양심(良心)이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성품이 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양심을 드러내면 나쁜 일을 하지 못 할 것이며 양심이 있는 사람은 과다한 욕심을 부려 남을 욕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미워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가.

남을 미워하고 욕한다는 것은 대단히 괴로운 일이다. 미워하고 욕하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마음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할 수 있는 업(業)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있는 이러한 업을 지워버리면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여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에는 남을 미워하고 욕하는 업(業)이 없기 때문에 인연이 없는 어떤 생명이라도 고통 밭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을 일으켜 자비심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도 부처님 같은 마음을 갖는다면 남을 미워하거나 욕하지 않을 것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 상불경보살은 모든 이를 부처님 같이 공경한다고 함은 열반경(涅槃經)에서의 일체 중생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성품이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남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나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남을 미워할 때 상대방도 나를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찌 감히 남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미워하고 욕함은 사랑하고 아껴줌과 상반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도 갖지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면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면 괴롭기 때문이다. 우리 중생은 사랑이나 미움 어느 한쪽에 치우쳐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혹시 나의 곁에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를 안타깝게 여기고 아껴 줄 수 있다면, 우선은 그렇게 하기가 괴롭겠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내가 과연 잘했구나 할 수 있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애민섭수를 바라는 마음은 곧 나의 발원이요 이의 실천은 곧 나의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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