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부처님 마음
혜총 스님/ 감로사 주지

이 글을 통해 벗으로서 지켜야 될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죄악을 짓는 것을 보면 조용한 곳으로 혼자 찾아가 깨우쳐 주고 꾸짖어 그치게 하는 것이더라. 이 말씀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아부하기는 쉬워도 바른 말 해주기는 힘이 듭니다.

두 번째, 다급한 일이 있을 때 달려가 도와주며, 친구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 어려울 때 내가 그 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세 번째,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 남에게 말하지 않음이다. 부부간에도 친구한테도 말할 수 있는데, 그 친구한테 말한 것을 제 삼자한테 말해서 발설을 한다든지 해서 상대방을 모욕 주는 그런 일은 없어야겠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네 번째,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친구와 친구를 유지하려면 처음 보듯이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처음 보는 자세로 상대방을 존경하면 그 친구는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사랑을 한다든지, 친구를 사귈 때 이익을 바라고 하는 쪽도 있을 수 있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존경하는 그러한 친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지니고 있는 물건이 있으면 다소간에 나누어주는 것이더라. 이것에 불교의 큰 뜻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물심양면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도 그렇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도 그렇습니다. 아내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남편을 봉양해야 하고, 남편은 그것을 인해서 충분히 아내의 건강과 용돈을 다 챙겨야 합니다. 마음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항상 마음이 쏠리는 곳에 물질이 가야하고, 물질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야합니다. 그러니까 마음과 물질은 두 개가 아닌 것입니다. 돼지는 열 두 달 주인에게 의지해서 밥을 얻어먹습니다. 주인에게 얻어먹기 때문에 갚을 것이 없기에 육체를 보시하면 그 주인은 남김없이 그 돼지를 다 취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양은 살아있을 때 주인을 위해서 양털을 보시하고, 젖을 보시하고, 죽어서는 양가죽을 남기고, 고기를 주어서 소시지를 만들도록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헌신할 수 있는 힘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서른까지는 배우기 바쁘고, 마흔부터 칠십까지 보시를 베푼다고 하면 그 세월이 40년입니다. 40년이 지나면 그때는 또 받아야 하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겨우 삼 사십 년에 불과한데, 거기서 좌우를 돌아보며 아웅다웅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찮은 돼지까지도 신세를 졌기 때문에 육체로서 보시를 하고, 양도 살아있을 때도 보시하고 죽어서도 보시하는데 하물며 우리 육체는 죽어봐야 이 몸 장례 지내고 하면 돈만 많이 듭니다. 이걸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어린 동자로서 소꿉장난 하다가 지나가시는 부처님께 모래 밥을 대접한 그 인연공덕으로 인해서 이백여 년 후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으로 태어났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베풀지 않고는 받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를 쓸 만큼 쓰다가 놔두고 다음 생으로 이사갑니다. 이사가는데 이 세상에서 보시하지 않고 죽으면 다음 생에 이 몸을 받을 때 재물이 없기 때문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빈곤한 곳에 태어나서 육체도 빈곤하지만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생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을 부처님을 통해서 알 따름이지, 부처님이 안 계셨다 하면 이런 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업이 많기 때문에 한 생만 바꾸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생에 이 진리를 알고 저축한 자는 다음 생에 태어난다고 하면 먹을 것이 풍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기쁨이 두 개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기쁨이 많지만 받는 기쁨이냐, 주는 기쁨이냐 이 두 가지입니다. 남편이 나를 알아주고, 아내가 나를 알아줄 때 사람이, 친구가, 이웃이 나를 알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습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알아주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받는 기쁨은 어차피 빚입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태양 빛을 하루도 안 받으면 못살지만 태양이 우리에게 빛을 줄 때 대가를 바라고 주는 태양은 아닙니다. 우리는 받기를 좋아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해서 주려고 노력하는 자, 그자가 승리자입니다. 그래서 극락세계는 왜 가려고 하느냐. 극락세계는 그런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위해서 뭘 도와드릴까요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그러면서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연기법 이 모든 진리를 알아서 부처님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살면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뜻을 가지고 상대방을 위할 때 바로 그것이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모든 것은 자작자수라는 생각을 하면서 깊이 맡은 바 부처님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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