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佛心

다시 북산에 노닐며

강석근/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강사

 


俯仰頻驚歲屢更          흘러가는 세월 돌아보다 자주 놀라는데

十年猶是一書生           나는 십 년 동안 한결같이 서생이로다

偶來古寺尋陳迹          우연히 옛절에 와서 묵은 자취를 찾아보고

却對高僧話舊情          고승과 마주 앉아 옛이야기 주고받네

半壁夕陽飛鳥影          석양의 벽에는 날아가는 새 그림자 드리워지고

滿山秋月冷猿聲          산 가득한 가을 달에 원숭이 슬피 우네

幽懷壹鬱殊難寫          하나로 엉킨 복잡한 회포 풀어낼 길이 없어

時下中庭信步行          때때로 뜰로 나아가 발 가는 데로 서성이네

                                                                                                         <동국이상국집 전집 1권, 重遊北山, 두 수 중 첫 수>


이 시는 이규보의 ‘다시 북산에 노닐며’라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실의에 빠진 젊은 시인의 불평스러운 심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시의 배경인 북산은 개경의 천마산(天磨山)으로 그가 24세 때 부친상을 당한 뒤 은거했던 곳이다. 그는 22세에 사마시(司馬試)에 장원하고 23세에 예부시(禮部試)에 합격한 장래가 촉망되던 인물이었고 천마산은 그가 유유자적하게 독서와 시창작으로 호연지기를 키워가던 곳이었다. 그러나 10년 후 이곳을 다시 찾은 이규보는 이미 패기만만한 젊은이는 아니었다. 세파에 부대끼다가 절망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9년간의 낭인 생활을 청산하고 32세 때 처음 전라도 전주부의 하급 서기에 임용되었지만 모함으로 다음 해에 파직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 시는 그의 좌절감이 극에 달했던 33세 무렵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 시의 주제는 기련과 결련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문학적인 명성은 무성했지만 정작 세상에 쓰이지 못한 자의 자괴감과 고통이 짙게 묻어 있다. 시적 화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실타래처럼 엉킨 울분을 달랠 길이 없어 산사를 배회하고 있다. 문학으로 세상을 뒤흔들던 자신의 능력을 생각할수록 자신의 처지는 더욱 초라했을 것이다. 아픔으로 몸서리치던 그에게 북산과 사찰은 지친 영혼과 피곤한 육신을 감싸주는 안식처였고, 자신의 속내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이고 벼슬도 정승급인 평장사(平章事)에까지 오른 유명한 사대부였지만, 중년때까지 그는 일개 서생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위의 시를 쓴 이후에도 그는 7년 동안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40세 때 최충헌에게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한림(翰林)에 임용될 때까지 그는 현실 정치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선비였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대부이자 시인이 된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많은 이들은 그의 두드러진 업적에서 천재성을 읽어내지만, 17년 간이나 계속된 뼈아픈 좌절과 고통스러운 자기 반성을 통해 그의 업적은 이룩된 것이다. 이같이 바닥을 치는 철저한 아픔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그의 삶과 문학은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새 봄에 피는 꽃은 더욱 아름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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